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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일배단이 6일 국회의사당을 향해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
ⓒ 정현미
“핵은 죽음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죽음의 식탁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걸음 피땀 흘려 여기까지 왔다.”

염원을 담은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또 다시 발을 맞춰 세 걸음을 걷는다. 아주 천천한 걸음이지만 결코 뒷걸음질이란 없다. 부안투쟁을 닮은 삼보일배는 어느새 국회가 코앞에 보이는 서강대교를 넘고 있었다.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 삼보일배단’ 50여 명은 6일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부터 여의도 국회까지 가는 3일간 여정의 두 번째 날을 맞았다. 삼보일배는 7일 오전까지 계속된다.

2008년 핵폐기물이 포화상태에 달한다는 이유 등으로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따로 떼 재검토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비판하며,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에 대한 백지화를 확답 받겠다는 의지로 출발한 삼보일배다.

ⓒ 정현미
15세 중학생부터 75세 할머니까지 모두 한 가지 염원으로 절을 하는 삼보일배단을 따라 기자도 서강대교를 넘으며 그들의 땀과 희생을 목격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들 사이로 노란 티셔츠에 노란모자를 쓴 삼보일배단은 북소리에 맞춰 수천 번 절을 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다 헤어진 무릎보호대와 물집 잡힌 발가락 그리고 땀에 젖은 티셔츠 목덜미는 이들의 희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 정현미
여러 투쟁 방법 중에서 삼보일배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이현민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소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이하 핵폐기장 대책위) 정책실장은 “각자 스스로의 각오로 하는 가장 평화적인 투쟁방법이 삼보일배”라며 “끈기를 가지고 오랜 인내를 견뎌내야 하는 삼보일배를 통해 생명과 평화의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문정현 신부는 “단식 다음으로 제일 순수하고 자기희생적인 투쟁방식이 삼보일배인 것 같다”며 “이렇게 가혹한 삼보일배를 함께할수록 내 가슴은 찡한데 정치인들의 눈에는 그 순수성이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라고 혀를 찼다.

▲ 삼보일배단원이 아스팔트에 무릎을 다쳐 치료받고 있다.
ⓒ 정현미
아침부터 시작된 삼보일배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5시를 향해가는 동안 무릎에 부상을 당한 사람도 발생했고, 몇 분간 주어지는 휴식시간을 이용해 도로에 쓰러지다시피 누운 사람들도 많았다.

발이 아파 운동화에 10원짜리 몇 개를 넣어 신고 다니는 김동명(39)씨는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우리 땅 부안을 살리기 위해서는 더한 것도 할 수 있다”며 흘린 땀을 닦았다.

한창 수확 시기인 10월, 전어 잡이가 한창일 10월에 부안 군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서강대교 꼭대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안심시켜 놓더니만 잠잠해 지니 뒤통수를 치나?”

핵폐기장 대책위는 “국민들은 이미 부안 핵폐기장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다”며 “지난 9월 16일 정부의 사실상 백지화 선언을 믿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정부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부안 군민은 핵폐기장 유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통해 90%가 넘는 반대의사를 밝혔고 주민들의 반발과 핵폐기장 부지선정 유치 신청지역이 없자, 이희범 산업자원부(산자부) 장관도 핵폐기장 부지 선정 절차를 사실상 포기했었다는 이야기다. 이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부안의 경우 부안주민, 자치단체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법을 10월 중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산자부, 총리실, 행정자치부 등 관계 장관회의에서 고준위 폐기물과 중·저준위폐기물을 나눠 2008년까지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기로 결론 내린 것이 지난 3일 언론에 밝혀졌다.

▲ 문정현 신부가 삼보일배단 최고령자 이금순(75) 할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있다.
ⓒ 정현미
이와 관련 삼보일배에 참여한 김병의(42)씨는 “우리가 투쟁으로 막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재검토 한다는 것은 말만 바꿔 우리의 투쟁결과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지금의 정부라면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장을 건설한 후 주민들이 무신경해져 잠잠해질 때쯤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까지 따라 세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삼보일배단은 이번 투쟁을 통해 “부안 핵폐기장 문제를 백지화 하고 정부,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하는 확실한 결론을 내자”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상경한 삼보일배단의 운영비는 노점상 할머니의 꼬깃꼬깃한 돈과 중학생의 용돈까지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마련한 것.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되는 삼보일배에 지친 몸을 뉘일 곳은 따로 없다. 조계종 절과 경기대학교에서 하룻밤씩 새우잠을 잔 삼보일배단이 6일 묵을 곳은 한강 시민공원 다리 밑이었다. 이들은 공용화장실의 작은 세면대와 수돗가에서 손발을 씻고 다리 밑에 비닐로 된 천막을 쳤다.

▲ 한강 시민공원 다리 밑에 만든 천막. 스티로폼 한 겹을 깔고 잔다.
ⓒ 정현미


"관계부처·전문학자들 무엇하고 있나"
[인터뷰] 이현민 반핵국민행동 정책실장

-지난 4일 국무총리에게 핵폐기장 백지화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전달한 후 정부의 반응은?
"정부의 어떠한 대응도 없다. 7일 관계 장관들이 이 문제와 관련한 회의를 한다고 하니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백지화 될 것으로 믿는다."

-사실상 백지화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시 부안군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된 계기는.
"지난 9월 16일 산자부 장관의 부지선정 철차 포기선언으로 많은 이들이 사실상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류에 서명도 하지 않고 질질 끌기에 매듭지으려고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3일 원전센터 부지를 2곳으로 나눠 재검토 한다는 발표까지 나와 부안 군민이 다시 들고 일어나게 된 것이다."

- 정부가 주장하는 2008년 핵폐기물 포화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포화설은 정부가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997년부터 임시저장고를 건설했고, 초고압 압축기술 도입으로 각 발전소별 저장기한이 13~15년 늘어났다. 그러나 1999년부터 다시 핵폐기장 추진이 시작되면서, 정부는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해도 임시저장고는 짓지 않고 2008년 포화설 주장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용화 되고 있는 초고압축기술을 이용하거나 2007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유리고형화 기술을 적용할 경우 예상 포화년도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늘어난다. 500평짜리 임시저장고 하나만 추가해도 실제 포화년도는 수십 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협의기구도 구체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정부 돈 받는 관계 관료들과 전문가, 충분한 지식을 쌓은 관련 분야 교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관련 업종에서 이런 연구와 대안을 제시해야지 시민단체가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하라는 것은 무리지 않느냐. 시민단체가 대안까지 마련하면 산업자원부 직원들이나 관련 직종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하느냐. "

- 사회적 협의기구가 설립된다면 무엇을 기대하는가.
" 지난 18년간 핵폐기장 문제는 유령처럼 전국 곳곳을 떠돌아 다녔다. 한번이라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 가능성이 야기된 지역은 거의 모두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피해를 봤다. 공동체적 주민 화합이 파괴된 곳도 있다. 주민들은 국가폭력으로부터의 희생양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에 대한 보상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핵에너지 정책도 선진국처럼 재고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관리와 핵관련 자료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밟는 등 정부의 개선의지를 보여야 국민들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

-부안 군민 생활(생업)에 지장은 없나.
" 지난 15개월 동안 부안 주민들은 생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모두 한 마음으로 투쟁에 열을 올렸고, 지금도 매주 목요일 촛불집회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 요즘 경기가 안 좋은데다가 부안의 경제상황은 더 심각하다. 핵폐기장 논란으로 부안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아져 계약 성사가 잘 되지 않거나, 원산지 표시를 만류하기 때문이다. 또 관광객의 수도 바닥으로 떨어졌고, 핵폐기장 건설된다고 하니 다른 건설업체에서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부안의 경기가 좋지 않으니 가게들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지고, 사업실패로 좌절하고 술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

-위도주민과의 갈등은 해결되었나.
"아직은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투쟁에 여념이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위도 주민들과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 핵폐기장 백지화 시 군민들이 우선적으로 할일을 설문조사한 부안독립신문에 따르면 부안의 경제복원(약 30%)보다도 주민화합(50%)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투쟁 방식 중 삼보일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로 인해 부안에 화염병도 날라 다니고,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었지만, 가장 평화적인 투쟁방법이 삼보일배라고 생각했다.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위한 투쟁이기에 선택한 삼보일배는 오랜 인내와 끈기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의 각오가 대단히 중요하다."

/ 정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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