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의 도덕적 해이. 그 끝은 어디인가.
건설교통부 산하 공기업들이 퇴직 임원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고액 연봉을 보장해 주는 구태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건교부 산하 공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면 노후 생계까지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
건교부 및 산하기관 국정감사 자료를 종합해 보면, 건교부 산하 공기업 임원들은 건교부 장관의 2∼3배에 해당되는 연봉을 받으며, 퇴직한 뒤에는 공기업이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의 고위직으로 추천 임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토지공사 사장의 연봉은 7000만원. 하지만 업무추진비를 합치면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감사·부사장의 한해 급여수준은 8100만원, 관리본부장·택지사업본부장·단지사업본부장·사업개발본부장·토지연구원장 7600만원의 순이다. 참고로 건교부 장관의 연봉은 8300만원이다.
토공, 4개 공동출자 부동산 PF회사 대표이사 '싹쓸이'
하지만 '전관예우' 만큼은 확실했다. 토공은 최근 민간과 공동출자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을 위한 부동산개발회사 4곳을 설립했다. 토공의 지분은 각 회사별로 따져봐야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4개 회사의 대표이사직은 전직 토공 출신 인사들이 독식했다. 뿐만 아니라 4개 회사 전체 직원 86명 가운데 토공 출신 인사는 16명으로 18.6%나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수익 창출 지원에도 적극 개입했다.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은 "토지공사가 4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을 통해 민간회사에 토지를 저가에 매각함으로써 1160억원의 특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민간회사에 불과한 이들 4개 업체에 토지를 저가에 수의계약 형태로 공급함으로써 '배 불리기'를 측면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김진호 사장은 6일 국감에서 "민간에게만 맡겨 놓으면 수익성 위주로만 사업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최초 계획대로 사업이 안 된다"는 이유를 대며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토공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토공 출신 임원을 민간업체에 취직시키고 수익을 보장해 줬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의 땅을 강제수용한 땅으로 수익을 올린 제 식구 배불리기에만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고액 퇴직금 받은 도로공사 퇴직자, 고액연봉 외주영업소 사장으로 '영전'
한국도로공사와 대한주택공사도 사정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98년 이후 400여명의 명예퇴직자에게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지급하고도 외주영업소 운영권을 주는 방법 등을 통해 매년 5000만원 내외의 연봉을 지급해 온 것을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확인됐다.
현재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외주사업소(요금소)는 203곳. 203곳 사장은 전부 도공 퇴직자이거나 명예퇴직 희망자로 채워졌다. 외주영업소 운영회사 사장들은 도공과 용역계약을 맺어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까지 매년 5000만원 내외의 연봉을 보장받고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게다가 한국도로공사는 정부가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근속포상제도(10년~25년 이상 근무자에게 기본급대비 50%~200%를 지급)를 계속 실시하면서 매년 20여억원의 급여를 추가로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김 의원은 밝혔다.
또한 도공은 올해 8월말 현재 총 자산 31조5720억원의 46% 가량인 14조6683억원을 부채로 갖고 있지만 연봉만큼은 타 산하기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인기 의원과 윤호중 의원의 국감자료를 보면 임원 평균연봉이 1억3300만원, 1급 8700만원, 2급갑 7500만원으로 공기업 가운데 상급에 속했다.
주공도 '전관예우'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의 국감자료에 따르면, 주공 자회사인 주택관리공단 소속 임대아파트 관리소장 260명 가운데 247명이 주공 출신인 것으로 조사됐다. 퇴직자를 자회사 소속 관리소장으로 보내, 노후 생계를 보장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관리소장 90% 이상이 주공 출신...연봉은 민간의 두배
문제는 이 가운데 주택관리사 자격 등 전문성을 갖춘 소장은 54명에 불과하다는 것. 그럼에도 이들이 받는 평균 연봉은 민간 관리소장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4000만∼5000만원이라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퇴직자에 대한 전관예우 차원에서 퇴직후 일자리와 고액 연봉을 보장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주공 적자의 절반 가량이 주택관리공단이라는 자회사 지원금 때문에 발생한다며 주공의 도덕적 해이를 거세게 질타했다. 주공은 이들 관리소장의 고액연봉을 보장하기 위해 주공 직원의 1/4 가량인 600여명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왔다고 김 의원은 주장했다.
김 의원은 "임금 착취와 비정규직 양산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러한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며 시정을 요구했고, 강동석 장관도 "같은 생각"이라며 공감을 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