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보는 신문 잡지엔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아이들은 원래 자기 또래 이야기를 곧 자기 일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른바 '근접성의 원리'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나온 <소년조선일보>도 그랬다. 이 신문에 표현된 일제시대 아이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일제시대 아이들이 칭찬 받은 까닭은?
1940년 1월 28일치 2면엔 "칭찬 받을 충남 소년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순진한 가슴 깊이 우러나는 애국열성"이라며 다음처럼 모범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놨다.
"충청남도 내 각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작년 삼월에 첫 번으로 자동차 청음기, 고사포 등을 사서 병기 헌납식을 거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매일 학교를 마친 후에는 한 시간씩 들에 나가 노동 일을 계속했답니다. …이 돈을 가지고 오는 이월 십일일 헌납식을 거행하도록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의 전투 병기를 사기 위해 고사리 손들이 노동에 동원되기도 했다. 기사는 이 노동에 끌려나간 아이들을 '칭찬 받을 학생들, 순진한 가슴 깊이 우러나는 애국열성'으로 추켜세운 것.
이 뿐만이 아니다. 이 신문 37년 9월 5일치를 펴보면, "품팔아 모은 돈을 황군 위문금으로"란 제목의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럼 품을 팔은 사람은 누구일까. 다름 아닌 코흘리개 고아원 학생들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제생원의 어린이들이 총후의 정성을 다해서 관계되는 각 방면으로 하여금 감격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감격의 내용은 "재생원생 60여 명이 농사를 하는 틈틈으로 철도공사를 거들어서 동회사로부터 받은 보수금 12원 60전을 황군위문금으로 헌금한 갸륵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 이 신문은 기사 끝 부분에서 이 노동에 참여한 아이의 말을 다음처럼 소개했다.
"우리는 앞으로 더 일치협력해서 이번에는 국방비를 헌금하겠세요."
"나도 일본군으로서 전쟁에 나가겠습니다"
<소년조선>은 전쟁에 참여해 죽거나 부상당한 조선 청년의 모습을 적지 않게 보도했다. 왜 자꾸 이런 보도를 했을까.
39년 7월 23일치 신문엔 "성전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는 지원병"이란 제목의 기사가 크게 걸려 있다. "나도 일본군으로서 전쟁에 나가겠습니다"란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기사는 전사한 조선인을 소개한 뒤 다음처럼 소리 높인다.
"여러분! 모두 맘으로 모자를 벗고 이 훌륭한 어른에게 경례를 하십시오. 얼마나 모범할만한 분입니까."
지원병에 대한 기사는 이 것 말고도 "동양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황군"(39년 4월 2일), "동경에 간 지원병, 가는 곳마다 환영"(39년 11월 12일), "제 3회 지원병 희망자 8만3080명"(40년 2월 18일) 등 신문 곳곳에 널려 있다.
이런 부류의 기사들은 '동양평화를 위해 싸우는 황군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으며 품이라도 팔아서 대포를 헌납하자'와 같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황군의 활약상을 계속 보여줌으로써 이들에 대한 경의와 찬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39년 7월 9일치 <소년조선> 1면 전체에 걸쳐 실린 '사변2주년 화보특집'은 그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기사의 제목은 "무적황군의 이 모양 저 모양". 화보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기사 내용은 원고지 다섯 장 분량밖에 되지 않는데 느낌표(!)가 무척 많다.
느낌표가 몰려 있는 곳만 떼어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끝없이 쭈욱 뻗어있는 벌판! 그 벌판 위로 달리는 용감무쌍의 우리의 황군 용사들! 보십시오! 그들의 씩씩한 얼굴에는 어지러운 홍아의 대륙을 평정하려는 억센 패기가 있음을."
"공군의 위력!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히 울리는 대륙은 벌써 우리 황군의 위력 아래에 항복의 깃발을 든 지가 오래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황군을 '무적의 용사, 마징가 제트' 정도로 나타낸 셈이다. 이 당시 조선의 어린 영혼들은 이런 기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제 70년 뒤인 오늘날로 눈을 돌려보자. 현대판 '무적의 용사, 마징가 제트'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적 미사일은 공중에서 파괴…미국을 철벽 요새로”. 2001년 3월 9일치 <소년조선> 2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NMD(국가 방어 미사일) 문제를 다룬 위 제목을 보고 미국 어린이신문이라 착각하지 마시라. 그 내용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공화당 출신의 부시 대통령은 힘센 미국을 부르짖고 나왔어요. 힘이 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력한 군대와 무기를 가져야 하겠죠? ‘NMD’는 이런 목적에서 나온 거예요. …누구라도 미사일을 쏘면, 미사일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박살내겠다는 것이지요. 자기 나라를 지키겠다니 당연한 일이죠.”
아직도 이런 신문 기사를 아침자습에 집단 활용하는 초등학교가 많다.
일부 교원단체에서 '화해평화교육'을 하려고 할 때마다 조준 사격을 하는 <조선일보사>. 그들은 과거 조선의 아이들에게 퍼부은 '일본 왕을 위한 전쟁놀음'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 | "반민족 행위를 하고도 기뻐하게 된다" | | | 어린이문화 전문가들이 본 일제시대 <소년조선>의 문제 | | | | "반민족 행위를 하고도 기뻐하게 되는 것이지."
'일제시대 <소년조선>을 본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됐을까' 하는 물음에 이주영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이 곧바로 내놓은 답변이다. 수년 째 어린이 도서연구 활동을 이끌어온 이 이사장은 "비판적 사고가 형성되기 전에 특정 내용의 서적이나 신문을 계속 접한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생각이 굳어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7일 전화 통화에서 "<소년조선>이 일제시대 일본 왕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아이들 정서를 조작한 것은 큰 문제였다"면서 "이런 내용을 읽은 아이들이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초등교사 양성 대학인 부산교대의 심성보 교수(교육학)도 "일제시대 <소년조선>식 친일 반민족 내용을 담은 신문과 잡지를 읽은 아이들은 정형화된 복종형 인간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해방 이후 민주주의보다는 전체주의, 다양화보다는 획일적 모습, 통일보다는 분단을 추구한 분위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