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지독한 그리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열한번째 사과나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소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순애보식의 이 소설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겉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라는 문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열한번째 사과나무> 1권을 읽어 내려가며 참 많은 생각을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 책을 읽는 데는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권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책장을 덮기도 전에 책 한 권 더 사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 소설은 '나'와 '상은'이라는 남녀의 만남, 엇갈림, 질투, 재회 그리고 죽음에 관한 너무나 낯익은 인생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뻔하고 낯익은 이 연애소설이 저에게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갈 시간이 남아 있을 때 깨달았어야 했네
사랑은 양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랑하니까 잊어야 한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걸
- 이용범의 <열한번째 사과나무> 중에서
'사랑은 양보하는 게 아니라는' 그 몇 마디의 말을 작가에게 듣기 위해 저는 몇 시간 동안 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 했나 봅니다. 어쩌면 이 말이 잠들어있는 남성 독자가 책을 펴게 하고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라서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저는 두 권짜리 장편소설을 읽으며 20대 어느 해 가을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첫 사랑'으로 자리 잡은 여자에게서 결혼 소식을 들은 뒤로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결혼식과 그 사람의 근황, 출산 소식까지도 전해 듣기도 했지만요.
지난 해 초겨울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그 후 서너 통 메일이 오갔습니다. 연락을 주고 받으면 안 되는 것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목도 없던 마지막 메일을 통해 "사귀던 사람이 아니고 그냥 친구였다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을 남긴 그녀는 영원히 '첫 사랑'이란 이름으로 제 기억 속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그녀는 저에게 처음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지독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을 때 읽은 책이 이용범의 <열한번째 사과나무> 입니다. 그 책을 통해 그저 '사랑'이 아닌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양보가 아닌 그 시간에 충실한 마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 가을이 무르 익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첫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 사람의 생일이 다가옵니다. 이 기사의 한 자리를 빌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사람에게 '너의 스물 아홉 번째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여러분의 첫 사랑은 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