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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표지
ⓒ 아름다운인연
도법스님이 회초리를 들었다. 매섭게 들었다. 당신 스스로에게도 매질을 하고 수행자들에게도 거침없이 매질을 한다. 그 회초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에 담겨 있는 '부처님의 참모습'이요, 그 매질은 어지러운 세상에 던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사회적 혼란과 대중들의 고통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불교의 모순과 세속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수행자의 불성실과 무력함, 회의와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천년 전 수행자들처럼 온몸으로 물음을 던지는 것 말고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다.'

도법스님은 책을 펴내면서 말했다.

'이 책은 천년 전 참선 수행자들의 문제의식에 뿌리가 닿아 있다. 심장이 찢기는 아픔으로 쏟아낸 수행자의 절절한 신앙고백이다. 숨막히는 답답함을 어찌하지 못하여 토해낸 한국불교의 하소연이다.'

심장이 찢기는 아픔으로 우리 앞에 신앙고백을 쏟아낸 도법스님은 누구인가?

바로,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과 1998년 종단이 어지러운 분규에 휩쓸렸을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분규를 마무리짓고 미련 없이 훌쩍 산중으로 돌아간 스님이다. 깨끗한 처신과 지도력으로 불교계 안팎에서 '수행과 실천이 일치하는 스님'으로 존경과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제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8세에 월주스님을 은사로 금산사로 출가하여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10년간 수행했으며, 한때 금산사 부주지를 맡기도 했다.

1990년대 초 불교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고, 실상사 주지직을 맡으면서 '화엄학림'을 통해 불교사상과 전통을 재정립하고, 귀농학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 등을 통해 대안적 세계관을 내놓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실상사 주지직도 내놓고, 길 위의 3년을 기약하며 '생명평화 민족화해'를 화두로 한반도 구석구석을 탁발순례 중이다.

'벌써 십 수년 전 일이다.

불교 잘 해보자는 뜻으로 도반들이 만났다. 중 노릇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대중결사 운동인 선우도량이 만들어졌다.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들이 모여 첫 문을 연 일이 좌선정진과 부처님 생애의 공부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좌선하는 여가 여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부처님 생애를 주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수행을 시작했다.

처음 하는 일이어서 의도한 만큼 잘 되지 않았다. 세월과 함께 흐지부지 되어 갔다. 어느 날 돌아보니 혼자 남아 있었다. 짐을 내려 놓고 싶었지만 왠지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처님 생애라는 주제를 짊어지고 끙끙거리며 오늘까지 왔다.

인연이 성숙했음인지 책을 만들게 되었다.'


절밥 먹고 살아온 세월이 삼십여 년을 훌쩍 넘어선 도법스님은 지난 세월을 되짚어 보았다. 가슴 한 구석의 허전함, 무언가 부족하고 안타까운 회한이 남는다. '첫걸음을 잘못 내디뎠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부처의 길을 따라가겠노라고 나섰지만 정작 부처님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기초 작업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불교사상과 정신의 근본 뿌리이다. 부처님을 떠난 불교는 있을 수 없다. 부처님과 무관하게 따로 논할 수 있는 불교란 존재할 수 없다. 부처님을 모르는 채 불교수행을 하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를 가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이달 초 '생명평화 민족화해'를 화두로 탁발순례 중, 지리산 실상사에 잠시 들러 기자들을 만나고 있는 도법스님
ⓒ 아름다운인연
부처님의 세계와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한국불교와 수행자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가고 있는 이 책은 '싯다르타의 탄생, 발심, 출가, 수행, 깨달음, 전법, 계율, 교단, 이부승가, 입멸', 이렇게 총 10장으로 짜여져 있다.

'제1장 싯다르타의 탄생'에서는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등 싯다르타의 탄생에 깃든 불교적 사고를 설명하였으며, '부처님의 탄생은 태어남 자체가 모든 생명을 위한 가능성이요 희망'이라고 역설하였다.

'제2장 발심'에서는 오로지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사고로 수행과 깨달음만을 앞세우는 한국불교의 수행풍토 문제점을 꾸짖었다. 가령 '소림굴에서 면벽한 달마와 천촌만락을 누비고 다닌 원효는 서로 상반된 모습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인류 역사의 문제와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대비원력의 문제의식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고통을 자기 아픔으로 삼는 대비원력의 문제의식 확립을 우선 가치로 여기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3장 출가'에서는 '기존의 낡은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출가정신은 문제아의 기질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문제의식의 기질은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주어진 숙제는 '이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인 문제의식의 기질을 창조적으로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제4장 수행'에서는 '부처님은 기존의 수행 방법은 자타를 이롭게 하는 깨달음의 길이 아니므로 단호히 버렸다'는 체험을 들어, 오로지 6년 고행을 본받으려는 수행 풍토에서 벗어나 '생활 자체가 수행이 되고 수행이 생활로 온전히 드러나게 하는 전인적 수행풍토를 형성하기 위한 모색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곧 '승가 안에서의 수행과 생활의 이원화 현상'을 꾸짖은 것이다.

'제5장 깨달음'에서는 이렇게 묻고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중략) 깨달음 이전이든 이후이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감동을 주고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도법스님은 '그 힘은 존재의 근원에 대한 원초적인 문제의식과 중생을 향한 뜨거운 연민심이다. 대비원력에 입각한 진실함과 성실함'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은 부처님 생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역대 선사(先師) 스님들의 자취 속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내 이름 듣는 자 삼악도 면하고, 내 모습 보는 자 깨달음 얻어지이다'라고 한 나옹 선사의 발원처럼.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신념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위험한 사고이니, '진정한 장사는 범 잡는 데 쓰는 힘을 잠자리 날개 찢는 데도 똑같이 사용한다'는 말을 빌려 '크고 작음을 구분하지 않고 전심전력하는 성실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초발심의 문제의식에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강조했다.

'청정·지혜·자비로 충만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제6장 전법'에서는 부처님 생애를 통해 전법을 살펴보면서 부처님 생애 그 자체가 전법이라는 점, 부처님의 생애를 전법의 꽃으로 피어나게 한 근원적 힘은 바로 '대비원력의 발심'임을 강조했다.

깨달음 이후 전법에 생애를 바쳐 헌신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성찰의 수행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부처님을 잊어서는 안 되며, '나는 산중에서 홀로 수행에 전념하고 있지만, 일찍이 한순간도 고통받는 중생의 아픔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하신 가르침을 깊이 되새겨볼 것을 권고했다.

'제7장 계율'에서는 법이 쇠퇴하지 않고 나날이 발전하는 길을 제시한 내용 중에 계율과 관계된 부분만을 옮겨놓았으며, '주목되는 것은 법을 융성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덕목으로 화합을 들고 있음'이라고 강조했다.

'계율은 화합이 생명이다. 승단, 역사대중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화합해야 한다. 화합을 위해 필요하다면 소소한 계는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게 조절되어야 한다. 단 계율의 기본정신과 입장을 지키면서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조절하지 않으면 계율은 오히려 불화의 원인이 된다. 나아가 마침내는 죽은 형식으로만 남게 된다.'

'제8장 교단' 편에 보면 이런 쓴 소리가 나온다.

'출가생활 삼십여 년 동안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매우 씁쓸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스님들 사이에는 "삭발염의가 부끄러워 옷을 벗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말들이 자주 오고간다. 승단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마치 몹쓸 짓을 하는 집단의 일원인 것처럼 느껴져 교단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중략) 재가불자들도 불교인이라는 것이 창피하여 스스로 불교인임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승단의 일원으로서, 불교인으로서 자신감과 긍지를 갖지 못하고 있다. (중략) 많은 역사대중들도 불교교단을 불신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체감케 하고 있다.

이런 점들은 불교집단을 상징하는 총무원과 사찰에 대한 역사대중의 인식을 한두 가지만 살펴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종단을 대표하는 곳인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는 원장과 주지 자리 등 감투 다툼하는 곳으로 여긴다. 혹은 국민적 바람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호국불교의 이름 아래 정부 정책에 무조건 추종하고 권력에 아부하는 '의식 없는 집단'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승단이 반성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제8장 교단'에서 다섯 가지로 들어 설명하였다.

'정법만이 승가의 생명임을 주목하지 않았다.

승단을 통해서만 정법이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인식하지 못했다.

승단의 존재 의미는 구세(救世)의 실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승단이 영원한 이상적 사회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승가의 이념과 규율을 가르치고 배우게 함으로써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다섯 가지 항목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담아내는 승단이 되어야만, 수도자들은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뿌듯할 것'이요, '어떤 역사적 도전이나 시련이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제9장 이부승가'에서는 '탄생, 발심, 출가, 전법 등 큰 사건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다시 한 번 짚어' 보았는데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한 대자대비의 삶이었다'고 말하며, 이부승가를 구성한 목적에 대해서도 '부처님의 모든 삶이 그렇듯이 승가를 형성한 목적도 정법으로 세상을 구제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팔경법은 이렇다.

'①승납이 백년된 비구니일지라도 비구를 대할 때면 언제나 먼저 합당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②비구니는 비구에 대하여 비판하거나 질책해서는 안 된다.

③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문제삼거나 비구를 가르치지 못한다.

④비구니 구족계는 식차마나의 계를 배운 다음에 비구대중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⑤상가바세사 죄를 범한 비구니는 반드시 이부승 가운데서 보름 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한다.

⑥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들에게 교수해 주기를 청해야 한다.

⑦비구니는 비구도량에 의지하여 안거를 해야 한다.

⑧비구니 대중은 안거를 마치고 비구 대중 가운데서 보고, 듣고, 의심나는 것에 대한 자자를 해야 한다.

<사분율>'


한국불교 조계종단의 현실에서 불평등 구조로 이루어진 이부승가의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므로, '불평등 구조의 이부승가 문제를 위시하여 승가의 제반 문제를 온전히 드러내고 공론화하여 정리하고 처리하도록 하는 데 승가가 발벗고 나서야만 승단의 미래, 한국불교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0장 입멸'에서는 '향나무는 뿌리와 가지 어느 하나도 향나무 아닌 것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일생 중 그 무엇도 부처님 일생 아닌 것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진리를 이야기하며 '입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법스님은, 불교이론은 화려한데 사회적 고통과 중생들의 신음 소리는 절절하고, 수행론은 무수한데 수행자와 대중들의 회의와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막다른 골목에서 한 수행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화두를 던졌다.

"조실 스님, 지금 매우 답답합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참된 진리란 어떤 것입니까?"

도법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진리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나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볼 수 있고 실현되고 증명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관념화된 불교, 추상적인 불교 해석을 통렬하게 꾸짖는' 책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 한국불교와 승단에 던지는 도법 스님의 절절한 신앙고백

도법 지음, 아름다운인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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