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을 분이 없다면 나라도 하겠다고 나섰다. 부담은 되지만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청산을 제대로 해야 '열심히 살면 대접받고 땀흘린 만큼 돌아온다'는 가르침을 자식들에게 현실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개판이 아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오는 15일 열리는 조선일보 친일반민족행위 민간법정(이하 민간법정)의 판사를 맡은 이덕우(법무법인 창조) 변호사의 소감이다. 지난 2002년 민간법정의 재판장은 지금 국정원장이 된 고영구 변호사가 맡은 바 있다.
이 변호사는 11일 민간법정 헌장 발표 및 기소장 전달을 위한 기자회견이 열리기 1시간 전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이번 민간법정의 배경과 의미를 밝혔다.
이 변호사는 "현실제도 한계로 현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사건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는 게 민간법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조선일보 민간법정을 '민간차원의 과거사 청산'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그것도 신문사를 상대로 민간법정이 열리는 이례적 사건에 대해 그는 "조선일보가 한번의 민간법정으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전혀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결국 이 얘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우리가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라며 "친일신문으로 활동했던 조선일보가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만 됐더라도 민간법정 대상이 되지 않았을 텐데, 스스로 '밤의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공룡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민간법정이라고 하더라도 100년 뒤 후손이 보더라도 법률적으로 제대로 된 판결이었다는 평가를 받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간법정이 왜 열리는지 조선일보 구성원들이 의문을 가져봤으면 한다"면서 "조선일보는 민간법정에 참여해 정정당당하게 변론을 펼치고 자료도 제출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제대로 한 판결이라는 평가받겠다"
| | | 이덕우 변호사는 누구? | | | | 1957년 서울 출생. 보성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90년 사법연수원 수료와 함께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참여해 활동해 왔으며, 92년 민변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특히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인권위원장, 변협 인권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밖에 1987년 홍콩에서 한국 여성 수지김(본명 김옥분)이 살해되자 안기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그를 북한 공작원으로 조작하여 해외 상사원 납치 공작으로 조작한 사건인 이른바 '수지김 사건'의 변론을 맡아 이를 승소로 이끌었으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 사건'을 공동변호하기도 했다. | | | | |
- 민간법정의 의미부터 설명해달라.
"사실 현실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다면 굳이 민간법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그게 안되니까 민간법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법정은 대학의 모의법정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모의법정은 대학생이 공부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민간법정은 역사적 평가를 해야 하는 일에 대해 현실제도의 한계로 못할 때 하는 것이다.
4년 정도 된 듯한데 미국에서는 전 법무부 장관 등 법조인이 참여해서 한국전쟁을 포함한 미국의 전쟁행위에 대해 민간법정을 열기도 했다. 실제 처벌할 권리는 없지만 민간법정의 판결은 역사적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그동안 '안티조선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는데, 민간법정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과거청산의 일환으로써 조선일보 친일반민족행위 민간법정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에는 구경만 했는데, 이번에는 맡을 분이 없다면 나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부담은 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니까 나섰다. 과거청산을 제대로 해야지 우리가 자식에게 하는 얘기를 현실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정직하게 살아라, 남한테 피해 안 입히고 열심히 살면 대접받고 땀흘리는 만큼 돌아온다'라고 가르치는데 그걸 현실로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세상은 개판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과거청산은 제대로 돼야 한다."
- 과거사 청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과거사 청산을 반대하는 논조를 펼치고 있는데.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의 주장처럼 과거사 청산과 민생문제, 경제문제는 별개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이들은 '국민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과거청산한다고 해서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며 민생문제와 관련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법정에 대한 태도도 그럴 것이다. 일면 일리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사람이 밥만 먹고 사느냐, 빵만 필요한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해방 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이 됐다고 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상징되는 친일 독재자와 친미 독재군인들이 호위호식하고 살았을까. 과거청산이 안됐기 때문에 친일파들이 정치·경제·사회 등에서 친미파로 계승됐고 돈과 지식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독점할 수 있었다. 특히 박정희 같은 청산의 대상이 역으로 반공을 내세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세상을 사는 게 옳은 것인가. 과거청산이 안됨으로써 우리 국민들은 이런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과거청산의 일부로써 조선일보 민간법정을 여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 언론의 과거사 청산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프랑스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나치에 적극 협조하고,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있는대로 깔아뭉갰던 언론인들이 1만여명 넘게 처벌을 받았다. 독재자와 여기에 빌붙은 사람도 문제지만,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이 '먹물' 지식인들이다.
이승만 정권 때도 친일했던 대학교수들이 부당한 개헌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줬다. 박정희 정권 때도 반공, 사회정의, 재건대 등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했다. 유신헌법을 기초했던 사람들도 법조인, 대학교수, 언론인 등이 대부분이다. 전두환 정권 때도 마찬가지다. 국보입법회의에 현직판사, 언론인들이 참여했고 나중에 출세가도를 달렸다.
역사적으로 깡패라고 할 수 있는 독재자 집단도 문제지만 거기에 기생하는 먹물들이 더 큰 책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의 친일행위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고 변명하고 넘어갈 사건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치자면 일제의 정신대 문제도 그냥 넘어갈 것인가? 한센병 환자를 소록도에 강제 격리시켜서 생체실험한 것, 강제징용한 것, 난징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 등을 다 묻어두고 갈 것인가.
조선일보 민간법정은 민간차원의 과거사 청산이다. 지금까지 반성할 줄 모르고 친일행위를 강변하면서 이제는 경품까지 돌리는 등 불법행위를 하는 신문사의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과거사 청산은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국민 총의를 모아 하면 되는 것이고."
"독재자 집단도 문제지만 거기 기생하는 '먹물'들이 더 큰 문제"
- 과거사 청산이 조선일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한나라당, 자민련까지도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공표하고 있다. 정당이라는 정당은 다 서민의 정당이라고 얘기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 기득권층인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으로 바로 서야 한다. 조선일보도 건전한 보수신문이 되려면 어떠한 극우의 유혹이 있어도 잘라내고 제대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일보도 죽는다.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가 어딘지 정확하게 해놔야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참여정부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의 개혁방향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과서대로 순진하게 세상 살다가는 망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 60년을 지배해오지 않았는가."
- 언론사를 상대로 한 민간법정은 조선일보가 유일한 듯하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2년 이어 두번째로 민간법정 대상이 됐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기형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신문사를 상대로 민간법정 한다는 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민간법정을 한번 했어도 충분한 일인데 두번째로 열리다니. 그 한번으로도 조선일보가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우리가 과거청산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이다.
물론 조선일보는 '왜 우리만 그러는가, 그 시대에 동아일보는 안 그랬는가, 친일 문인이 한둘이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치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친일신문으로 열심히 활동했다고 하더라도 청산돼서 없어졌으면 민간법정을 열 필요가 없다. 명맥만 유지한 정도가 됐어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정권과 결탁이 돼서 스스로 '밤의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다.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공룡이 됐다. 그리고도 전혀 반성이 없었다. 어찌보면 조선일보가 아무리 자신의 입장을 강변한다고 하더라도 신문의 영향력은 독자들이 안보면 줄어들고 광고도 떨어져 나간다. 박정희 정권이 그걸 아니까 74년 광고해약으로 동아일보를 탄압한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진보적인 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박정희식으로 광고를 강제로 끊을 수 없다. 따라서 언론문제는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민간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 이번에 조선일보의 친일혐의를 규명할 새로운 자료가 꽤 나왔다고 하던데.
"그렇게 들었는데 재판을 해봐야 한다. 추가 자료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조선일보의 친일혐의에 대한 역사적 규명에 도움이 크게 될 것이다. 오늘 검사단에서 기소장이 나왔으니 변호인단에서 열심히 변론을 준비할 듯하다."
- 조선일보는 친일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불가피성을 반론으로 펼친다. 일제의 강권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라는 것인데, 면책이 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서 총독부에서 어떤어떤 내용을 보도하라고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보도한 것과, 자발적으로 천황을 신격화시켰다던가 모금운동을 했다던가 징용·징병 나가도록 독려한 것은 질적 차이가 있다. 헌법에 보면 강요된 행위라는 게 있다. 정당방위는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방어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상대방을 죽였다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다른 것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긴급피난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친일행위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강요를 당했다 정도에 해당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행위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전쟁에서 소대장이 부하들에게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보자. 전시상태에서 장교가 명령을 내렸고 이행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위법한 명령은 면책되지 않는다. 실제 전범재판에서도 그렇게 적용한다."
"조선, 꼭 나오길 바란다"
- 조선일보는 또 친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애족 애국 등 민족적 활동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수 있게 조선일보가 자료를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주겠다. 조선일보가 당당하고 실제 그렇다면 민간법정에 나와서 변론을 해라."
- 그럼 조선일보에 직접 변론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아직 응답이 없다. 2002년에도 조선일보는 직접 변론할 기회가 있었는데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조선일보 논리대로 친일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면 민간법정에 참여해서 정정당당하게 주장을 펼치고 자료도 제출해라. 꼭 나오길 바란다."
- 이번 법정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가.
"민간법정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법률적인 요건을 최대한 갖출 것이다. 100년 뒤 후손이 보더라도 선입견 갖고 그랬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정말 제대로 된 판결이었다는 평가받도록 노력할 것이다. 저를 비롯해 배심원들 모두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왜 조선일보에 대해 민간법정을 여는지 의문을 가져봐라. 그리고 조선일보는 자신의 논리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일을 강요받았다면 민간법정에 참여해서 정정당당하게 주장을 펼치고 자료도 제출해라. 길게 봐서 인류역사상 영원한 권력은 없었다. 언론권력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