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을 맡고있는 정수장학회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열린우리당이 정수장학회의 <경향신문> 부지(서울 정동) 보유과정에 대한 의혹을 집중 제기하자, 한나라당은 "야당대표를 겨냥한 정략적 공세"라고 반발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날 오후 방송문화진흥회 국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65년 경향 사장을 간첩사건으로 묶어서 구속시킨 후 금융권을 앞세워 경향을 강제 매각했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가 <경향> 부지 소유하게 된 과정
이승만 정권시절 대표적인 야당지로 이름을 떨쳤던 경향은 61년 5·16 쿠데타 이후에도 군사정권에 비판적인 논조를 펴 정권 실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정경유착 실태와 농민과 도시서민들의 곤궁한 삶을 대비시킨 연재기사 '허기진 군상' 등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도 몇차례 불쾌감을 표출했다고 한다.
민 의원은 "박 대통령이 대노한 후 신직수 검찰총장,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경향을 손보기로 작정했다"고 주장했다.
64년 6·3 계엄을 선포한 뒤 군·경은 이준구 당시 사장과 손충무 기자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이로 인해 경향은 6월 24일자에 "본의 아닌 혐의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고를 게재해야 했다.
65년 4월 8일에는 중앙정보부가 "이향백 경향 체육부장 등 3명을 언론기관의 배후조종을 기도한 간첩이라고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이준구 사장은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난 뒤 같은 해 5월 8일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두 달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제일·한일 등 3개 시중은행이 경향에 회사의 채무액(총 4727만원)을 일시에 상환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당시 금융권이 이같은 조치를 내리는 과정에서 정권이 개입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 민 의원의 생각이다.
경향이 일시상환에 응하지 못하자 3개 은행은 9월 7일 서울민사지법에 경향의 사옥과 대지, 윤전기 등에 대한 경매를 신청했다. 중앙정보부가 경매에 반발하는 이 사장 부인 등 임직원 10여명을 연행한 가운데 이듬해 1월 25일 실시된 경매에서 경향은 2억1807만원에 단독 응찰한 기아산업에 넘어갔다.
65년 11월 반공법 및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사장은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66년 4월 28일 이 전 사장은 신병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떠났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김철호 기아산업 사장이 경향의 새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전 사장은 김대중 정부시절에 신문사 반환을 꾀했으나 이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현재 심한 중풍으로 와병중이다.)
경향은 69년 1월 신진자동차로 소유주가 바뀐 뒤 74년 11월 MBC와 통합됐다. 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MBC와 경향의 통합을 직접 지시했다는 설도 제기된다.
80년 경향이 MBC와 분리된 뒤에도 경향 건물이 들어선 정동부지(728평)는 정수장학회의 몫으로 남았다.
열린우리당, 박근혜 대표의 이사장직 사퇴 강력 촉구
정수장학회는 더 나아가 지난 30년 동안 경향으로부터 부지사용에 따른 임대료를 챙겨왔다. 최근 경향의 경영악화로 임대료를 체납하자 정수장학회는 "당초 계약한 사용기간 30년이 지났으니 건물을 비워달라"고 독촉하고 있다. 경향이 자구책 차원에서 2003년 "부지를 150억원에 사겠다"고 제의했지만 박근혜 이사장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의원은 "강도가 어떤 집을 강탈한 뒤 본래 집주인을 쪽방으로 쫓아낸 뒤 방세를 받아 챙기다가 계약 끝났으니 나가라고 못살게 구는 형국"이라며 "정수장학회가 경향을 퇴거시킨 뒤 건물을 리모델링하면 엄청난 개발이익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정수장학회는 66년부터 정동부지를 소유해왔는데, 당시 장학회가 어떤 힘과 재력으로 도심 한복판에 금싸라기 땅을 가지게 됐는지, 80년 건물과 윤전기·시설물이 경향으로 다시 넘어간 후에도 건물부지 만큼은 정수장학회 소유로 남은 이유 등 밝혀내야 할 의문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날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MBC의 대주주인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박 대표의 이사장직 사퇴와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포기를 촉구했다.
김재홍 의원은 "어느 장학재단에서 이사장에게 1500만원의 많은 활동비나 수당을 줄 수 있나? 정치인이 방송사 대주주 노릇을 할 수 있는지 문화방송과 방송문화진흥회가 입장을 밝혀라"고 추궁했다.
윤원호 의원도 "오늘(11일) 국감에서는 정수장학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수장학회가 중앙정보부의 강압으로 국가에 '헌납'된 부일장학회를 근거로 설립된 만큼 장학회의 MBC 주식지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질의에 이상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정수장학회 설립이 강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 사회 환원이 되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주문했다.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도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방어 나서는 한나라당
반면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은 "정수장학회가 문제가 있다면 20여년전 강제로 통폐합된 신문·방송·통신의 문제도 함께 제기하는게 일관성과 형평성이 있는 게 아닌가? 이 문제만을 계속 얘기하는 것은 정략적 접근"이라고 반박했다.
열린우리당이 정수장학회에 공세를 집중시키자 한나라당은 MBC 보도와 토지보유를 집중 공격했다. 정 의원은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 MBC 보유토지가 가장 많은데 '공장 대신 땅 장사'라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며 "MBC가 일산에 방송센터를 지으면서 오피스텔을 분양하는데 이게 땅 투기가 아니고 뭐냐?"고 물었다.
같은 당 이재오 의원도 "MBC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다른 방송에 비해 두 배 가량 높다"고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뒤 "드라마 아일랜드는 주인공들이 남매로 밝혀졌는데도 남매간의 사랑을 그렸고, 소설극장 빙점은 불륜·유괴·살인·자살을 다루고 있다"며 일부 프로그램의 비윤리성을 문제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