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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놓은 창문 안으로 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 좀 쌀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느새 가을의 중심에 접어든 것이다. 도시에도 가을은 온다. 도시의 가을밤이라고 하니 왠지 시원함보다는 칙칙한 파스텔톤으로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다. '도시'라는 어휘가 주는 어감 때문일까.

도시의 사전적 의미부터가 그렇다.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및 행정, 문화, 교통망, 편의시설 따위의 중심지가 되며, 인구가 집중하여 그 밀도가 현저하게 높은 지역. '상공업'이니, '경제'니, '행정'이니, '교통망'이니, '중심지'니, '인구 집중'이니, '밀도'니 하는 낱말들 가운데서 산뜻한 느낌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도시의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울지도 못하는 '바퀴벌레'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도시에도 도시 나름대로의 정서는 있다. 그것이 비록 칙칙한 파스텔톤일망정, 바로 그 공간에서 내가 살고 있고 우리 이웃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1960~1970년대 초,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처자들이 고향을 떠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5∙16 군사 정부에 의해 공업 근대화가 물결치고 있었고, 먹고 살길을 찾는 많은 처자들이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때는 그것이 '유행'이었다.

그 처자들은 도시에서 시집갈 때까지 생산직 여사원('여공'이라 부르다 못해 '공순이'라고 낮춰 부르는 게 유행이었지만)으로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도시의 부잣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식모'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요즘은 사회복지단체에서 한글을 배우는 40대 주부들이 많다고 한다. 이는 배움이 필요했을 당시 생활고에 시달려 초등학교를 그만두거나 겨우 졸업만 하고 무작정 상경하여 공장에서 일했기에 생겨난 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공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던 그 시절에 오히려 그보다 더 급격히 늘어나던 하층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윤락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여공들과 상경 이전에는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도시로 진출한 이후에 생계를 유지해 가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다.

무작정 상경한 처자들은 역전에서 취직을 미끼로 유인하는 이들의 속임에 넘어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직업소개소를 통하여 돈에 팔려 넘어갔다. 또 어떤 처자는 얼마 되지 않는 여공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스스로 룸살롱 호스티스 등으로 진로를 바꾸었다가, 술에 지쳐 아예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했던 경우도 있었다.

▲ <영자의 전성시대>의 전편격인 <지사총> 문고판 표지
ⓒ 범우사
월남전 파병이 있었던 그 시절의 도시 사창가를 이야기한 대표적인 연작 단편소설를 꼽자면 조선작의 <지사총>과 <영자의 전성시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두 편 다 멋부리지 않는 소탈한 문체가 특색인데, 후편격인 <영자의 전성시대>는 외팔이 창녀 영자가 전농동 588번지에서 불에 타 시체로 발견되는 비극적인 종말을 고한다.

월남전 파병 용사 출신인 '나'의 사랑은 그렇게 공업 만능 시대의 황폐한 도시 서울에서 밀려 떠나가 버렸다. 영자는 '나'가 용접공으로 일하던 철공장 주인집에서 일하던 식모였다.

그 집의 식모인 영자는 '나'에게 아주 쌀쌀맞아서 좀처럼 가까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둘이 신경전을 펼치고는 있지만 사실은 그만한 지식 수준의 남녀에게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랑의 신호 주고받기인 셈이다.

내가 삽시간에 상 위에 차려놓은 음식을 다 먹어치우자 주인 마누라는 영자에게 국이라도 더 가져다 주라고 지시했는데, 영자는 마치 내가 뭐라도 잘못한 곳처럼 눈깔을 홀딱 까뒤집고 국대접을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그 꼬락서니가 하도 아니꼬와서 나는 자꾸만 국을 청해 네 그릇이나 받아 먹었다. 국을 가져올 때마다 부린 영자의 심술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긴다. 빌어먹을 식모년이 사람을 얕봐, 하고 나는 생각하며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략)

내가 대문을 나오자 영자가 문을 잠그기 위해서 문간으로 나왔는데, 그때 나는 "영자, 너 이따 나하고 극장 안 갈래"하고 정말 얼토당토 않은 막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아침부터 스타일 확 구기는 짓이었다.

물론 영자는 "네까짓 것하고? 안 가"하고 쏘아붙였는데 더러워서, 그런 대답을 들을 거라고 왜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가. 참으로 분통할 일이었다.


'나'는 월남전에서 돌아와 목욕탕 때밀이로 취직하게 되는데, 어느 날 전농동 588번지에서 다시 만나게 된 영자는 직업이 식모에서 외팔이 창녀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극진한 사랑은 영자에게로 한없이 쏟아지고, 무심하게도 하늘은 끝내 영자를 죽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두 하층민의 가식없는 사랑을 한순간에 외면해 버린다. 매정한 도시의 생리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영자는 분명히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지만 그 이름은 본명이 위장된 철저한 익명의 대변체(代辯體)이다. 그녀들에게도 물론 고향이 있고 낳아준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공순이'에서 '식순이(식모)'를 거쳐 매춘녀로 전락하게 되는 동안, 자신들의 고향이며 부모를 철저히 위장해 버린 채 식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밤늦도록 일만 하고서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 영자라는 이름의 매춘녀는 살기 어려운 시대가 만들어 놓은 희생양이다. 그러나 영자는 자신을 주검으로 만듦으로써 그 동안 그녀가 감당해 온 불행과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마치 지금 이 시대에 발표된 소설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2004년의 슬픈 빈곤(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의 현실을 대리하듯이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지긋지긋하게 배고프던, 여성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대하던 그 시절과는 매춘에 뛰어드는 모양이 다르지만 신용카드 빚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위장한 채 '익명의 여성'으로 허물어져 버린 여성들이 급격하게 늘어나 버린 것이 요즘 형편이다.

'낙엽도 야위어 간다'는 느낌이 들 만큼 서민 살림들이 지극히 어려운 이 가을밤, 집창촌을 무대로 한 조선작의 소설 두 편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들을 행복의 자리로 가도록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방법은, 보다 평등한 여성의 일자리 마련이 우선 아니겠는가'

송영 조해일 조선작

송영.조해일.조선작 지음, 창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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