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짊어진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이다. TV 뉴스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총격전과 폭탄 테러전 등을 거의 매일처럼 보도하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전쟁터에 있지 않은 사람도 언제 핵전쟁의 제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으며, 위력적인 각종 테러의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안심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 집단적 목적을 위해 일어나는 집단적 살인으로 인해, 20세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1000만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 5000만명 등 총 6000만명이 죽고 말았다. 1945년 이후에도 벌써 5000만명이 죽고 말았다. 왜 선량한 목숨들이 아무 죄도 없이 살해당해야 하는가?

▲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표지
ⓒ 지호
마침, 짧지만 꼭 읽어둘 필요가 있는 '전쟁'을 화두로 풀어간 책이 나왔다. 저명한 전쟁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의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왕립군사학교의 샌드허스트에서 수년간 군사역사학을 강의한 존 키건은 <전쟁의 얼굴> <세계 전쟁사>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해전> <역사를 위한 전투> <이라크 전쟁> 등 전쟁 관련 연구와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전쟁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영국 BBC의 초대 회장을 지낸 존 리스(John Reith)의 업적과 유지를 기념하기 위해 1948년에 시작된 라디오 강연 '리스 렉처'에서 존 키건이 1998년에 강연한 내용을 묶은 이 책은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전쟁의 기원' '전쟁과 국가' '전쟁과 개인' '전쟁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이렇게 총 5장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살아 있는 군사역사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더프 쿠퍼상 수상작인 그의 저서 <세계 전쟁사>가 한국어판으로 나왔을 때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한 바 있는 존 키건.

그는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원제:War and Our World, The Reith Lecture 1998)>에 실린 강연을 통하여 '20세기 전쟁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 대규모 산업국가들의 총력전에서부터 민족적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저강도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쟁의 모습, 인간 본성과 역사에 비추어 본 전쟁의 기원, 국가가 정책 수단으로 전쟁을 동원하는 문제, 개인과 집단의 전쟁 경험과 전쟁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전쟁 없는 세상의 가능성' 등을 검토하였다.

'서론'에서 '왜 전쟁을 하는가?'라고 말문을 연 존 키건은, 다양한 고찰을 통하여 강연을 진행해 나가다가, 마지막 장인 '전쟁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에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전쟁은 그리스의 신 프로테우스와 같은 활동이다. 자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형태를 바꾼다는 말이다. (중략) 전쟁은 어떤 집단적 목적을 위해 행하는 집단적 살인이다. (중략) 제2차 세계대전은 소위 최후의 무기라고 하는 무기의 개발로 절정을 이루었다. 이 무기는 집단적 살인 행위에서 그 어떠한 논리적 목적도 박탈해버릴 요량으로 개발되었다. 핵무기는 정말이지 최후의 해독제처럼 보였고, 적어도 현재까지는 스스로에게 맞서는 동종 요법의 해독제임을 입증해 왔다. 핵무기가 히로시마 이후 전쟁이 취한 여러 가지 형태들에서 다른 무기의 사용을 막을 수 있는 해독제임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어떤 해독 해독제에 의존해야 할까? 자기 방어와 유엔 제재를 제외하면 이제 모든 전쟁은 불법이며 따라서 국제법을 정교하게 다듬어 전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중략)

"폭력은 거의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 한다"는 말은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언이다. 이 말은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군인인 전직 참모총장이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 먹히지 않을 때 오로지 폭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폭력은 법의 지배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수단이다. 만약 우리가 전쟁을 종식하기 원한다면 지금까지 언급한 전쟁의 원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우리는 폭력이 사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두꺼운 책만이 능사는 아니다. '존 키건의 책은 살아 있는 군사역사학자들의 책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재미있다'고 한 <뉴욕타임즈>의 평가처럼, 16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짧지만 가장 알찬 책이 이런 것'이라는 모델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국제 뉴스를 전달하는 웹 페이지(다음 카페 sumbolon의 국제정치 평론) 운영자인 저널리스트 정병선씨가 번역했다. 지호에서는 현재 정씨가 번역하고 있는 존 키건의 <전쟁의 얼굴>을 오는 12월에 펴낼 예정이다.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존 키건 지음, 정병선 옮김, 지호(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