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녘을 지키는 허수아비. 바람에 흔들거리며 손짓하는 코스모스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목을 붙든다.
쟁기질 연습하는 허수아비 아저씨, 마음도 급하기도 하시지. 벼도 베내지 않는 논두렁에서 벌써 보리 갈려고 몸을 풀고 있네.
‘이라, 자라’
하늘엔 뭉게구름. 땅 위엔 코스모스. 삼천리 금수강산에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다.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고개 들어 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면 물감으로 색칠을 해 놓은 듯 불타는 저녁 노을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저녁 노을을 한 번쯤은 바라보고 살자.
노을 속에 농부가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다. 들녘엔 벼를 베는 농부들 손길 바쁘고, 노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나그네 마음은 가을 속으로,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벼를 베고 난 논이나 베지 않는 논이나 노을빛 비치면 모두 다 황금물결. 소슬바람에 억새도 덩달아 춤을 추며 황금물결 일렁이고 있다.
외로운 기러기 한 마리, 어디로 날아가는 건지 황혼빛 물든 창공을 홀로 훨훨 날아가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에 반해 한 번 날아보는 건지, 아님 가족 품으로 날아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황혼빛 물든 하늘이 황홀하기만 하다.
순천만 와온마을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붉게 타오르는 노을 앞에 서 있다. 오늘 하루 나는 남을 위해 무엇을 베풀며, 무엇을 배려하며 살았는가. 오늘 하루 나는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해주려고 노력했는가. 오늘 하루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찬란한 노을을 남기고 사라져 가 버린 해를 바라본다.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들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을 하늘이 참 좋다. 바쁜 일상이지만 손에 잡힐 듯 맑고 푸른 가을하늘을 잠깐이라도 보며 살자. 피로에 지친 흐릿한 눈동자, 말갛게 씻겨주는 '노을잔치'를 한 번쯤 바라보며 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