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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원실에 놓인 야전침대. 평소같으면 철야를 하더라도 낮엔 야전침대를 치워놓지만, 3주간 계속되는 국감기간이면 붙박이 침대처럼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한 의원실에 놓인 야전침대. 평소같으면 철야를 하더라도 낮엔 야전침대를 치워놓지만, 3주간 계속되는 국감기간이면 붙박이 침대처럼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정감사 기간, 의원회관과 본청 사이를 오가는 특별한 '이동수단'이 있다. 바로 보도자료와 정책자료집을 실은 손수레. 보좌관들은 밤새 작성한 보도자료를 이 손수레에 싣고 본청 기자실로 나른다.

매일 오전 8시 전후, 이른 경우 전날 밤 해당 피감기관 국감 관련 고발내용이나 의원질의가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데, 그 양은 매일 수백 건에 달한다. 어떤 의원실 것은 금방 동이 나지만 내용이 부실한 자료의 경우 줄어들 기미가 없다.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셈.

초선의원으로 대거 물갈이가 된 17대 첫 국감. 보도자료의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달라졌다. 의원 개인플레이가 중요한 국감이니만큼 보도자료 상단은 당 마크가 아닌 의원 캐릭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보도자료의 첫 장은 전체 내용의 핵심이 친절하게 요약정리되어 있다. 수많은 보도자료를 검토하는 기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첫장에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

국정감사 기간, 의원만큼이나 고생하는 숨은 주역들이 바로 보좌관들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코피가 터졌고,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식의 한 보좌관은 회의테이블 위에서 자다가 떨어져 팔에 상처가 났다. 반면 박진 의원실의 한 베테랑 보좌관은 오히려 평상심으로 국감을 핸들링하는 모습이다.

보좌관 1명 3일 꼬박 새야 1꼭지 질의안 나와

추석연휴를 고스란히 반납하는 것은 물론, 일주일의 절반은 철야가 다반사. 최규식(행정자치위) 열린우리당 의원실의 박정서 보좌관은 집이 다리만 건너면 되는 마포인데도 의원실 회의테이블 위에 모포를 깔고 자다가 떨어져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야전침상이 두 개나 있지만 서너 명이 동시에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아 한 명은 테이블을 침대 삼아야 한다. 박 보좌관은 "1명의 보좌관이 1꼭지의 주제를 생산하는데 3일은 족히 밤을 새야 가능하다"고 토로한다.

국감기관이 되면 의원실과 보좌관실의 경계는 무너진다. 의원실 바닥엔 주제별로 자료들이 쌓여 있고, 손님접대용 소파 위에도 포스트잇이 덕지덕지한 회의자료가 즐비하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피감기관의 취재원을 맞기도 한다. 점심은 국회 밖 식당에 가는 것은 엄두도 못내고 의원회관 식당에 내려가는 시간마저 아까워 도시락을 시켜먹는다.

그 결과 몇가지 히트작을 냈다. 강남북 격차를 조사한 정책자료집과 대기업의 '유령집회' 실태, 국가보안법 위반 감정업무를 하는 공안문제연구소를 공론화 시킨 것이 대표적.

박정서 보좌관은 "의원회관에 299명의 의원실이 있지만 국감기간엔 마치 299개 벤처기업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한다. 최 의원실 보좌관들은 대부분 처음 맞는 국감이지만 피감기관들이 내놓는 자료에 휘둘리지 않고 공세적인 이슈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의제설정을 우선시한 덕이라고 자평한다.

사회 각 분야 주요현안이 무엇인지 우선 추리고, 그 중에 행자위 산하 피감기관에 해당하는 이슈가 무엇인지 정리한다. 그런 다음 관련 소스를 피감기관에 요구하는 순.

수시로 의원과의 회의를 통해 질의를 만들어가고 그 최종결과가 상임위 현장에서 의원 입을 통해 제기되는 것. 가령 국회의 감사를 받은 적이 없는 공안문제연구소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도, 국가보안법의 기소율은 날로 줄어드는데 공안인력은 줄지 않고 있다는 의제를 설정한 뒤 발견하게 된 소재.

심상정 의원실 보좌관들의 '7·13 펀드조성'

아침이면 의원회관에서 국회 본청으로 보도자료를 전달하기위해 보좌관들이 온다.
아침이면 의원회관에서 국회 본청으로 보도자료를 전달하기위해 보좌관들이 온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노동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심상정(재경위) 의원. 특히 심 의원의 경우 노회한 피감기관 수장들과 각당 베테랑 경제통들이 모여 있다는 재경위 소속으로 그 부담은 훨씬 컸다. 하지만 국세청 국감에서 '삼성의 1조5천억 탈세 의혹'과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노무현 캠프 불법정치자금의 소득세·증여세 포탈 문제를 제기, 반향이 컸다. 또한 "재경부가 국민연금을 멋대로 갖다 쓰는 바람에 2조원대의 이자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으로 재경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특히 정보망이 탁월한 삼성조차도 심 의원의 문제제기는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단병호 의원의 '삼성SDI 직원위치추적' 문제에 신경 쓰다가 심 의원에게 뒷통수를 맞은 셈. 그도 그럴 것이 국민연금과 삼성 문제의 경우 피감기관의 도움은 거의 필요치 않았다. 의회 진입 전부터 민주노동당 내 숙성된 이슈를 제기한 성과다.

또 하나 '관점'을 달리해 참신한 접근을 한 경우도 있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을 따질 때, 계급·계층적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점과 재경부의 통계정책에 대해서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만 많고 빈부격차 등 삶의 질에 관한 통계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심 의원실 보좌관들은 의원과의 호흡을 첫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6월말 상임위 배정이 확정된 뒤, 의원과 보좌관은 주 2회 정기적으로 세미나와 전문가 강의 등 '과외공부'를 충실히 해왔다.

피감기관 공무원도 회의중에는 문전박대가 예사다. 논쟁적인 이슈가 많은 재경위니 만큼 토론을 통해 논리를 개발하고 근거자료를 충실히 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심 의원의 날카로운 질의는 바로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 밤샘 회의와 세미나에는 일가견이 있는 운동권 출신이다 보니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루 13~14시간 근무중인 손낙구 보좌관은 "지금은 사실 따라잡기 바쁘지만, 이대로 연말까지 모든 피감기관을 돌면 감이 잡히고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한다.

심 의원실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7·13 펀드조성'이라는 말이 돈다. 나름대로 각 분야 이론과 현장통이 보좌관으로 들어왔지만 주식 한번 사본 경험이 없어 실물경제의 감이 떨어진다는 위기의식에 따라 "쌈지돈을 털어 공동명의로 삼성 주식 한 주라고 매입해 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말. 앞으로는 좀더 피부에 와닿고 대안이 있는 국감을 준비하겠다는 것이 6명 보좌관들의 일관된 각오다.

보수·진보 막론한 전문가들로부터 크로스체킹

국회 본청 기자실 앞 복도에 놓인 보도자료들. 아침이면 보좌관들이 상임위별로 보도자료를 올려놓는다. 자신의 보도자료를 올려놓은 뒤 다른 의원실에서는 무슨 보도자료를 냈나보기위해 한부씩 챙겨가는 보좌관들도 있다.
국회 본청 기자실 앞 복도에 놓인 보도자료들. 아침이면 보좌관들이 상임위별로 보도자료를 올려놓는다. 자신의 보도자료를 올려놓은 뒤 다른 의원실에서는 무슨 보도자료를 냈나보기위해 한부씩 챙겨가는 보좌관들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진(국방위)한나라당 의원실. 민주당·국민회의 시절부터 보좌관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8년차인 이성환 보좌관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한다"고 여유를 보인다. 이 보좌관은 초선이 많아진 17대 첫 국감에 대해 조금 비판적이다.

국회의원 연구단체가 3배로 늘고 12시까지 의원회관 불이 켜져 있는 등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피감기관을 상태로 폐부를 찌르는 질의나 답변을 얻어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 경험의 문제도 있지만 국회의 권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 결과 '솜방망이 국감'이 된다는 것.

"윽박지르고 목소리만 큰 것은 문제지만 겸손의 미덕이 지나치게 강조되다보니 국회의 권위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기 센 장관이 피감기관의 수장인 경우 장관이 '위트'로 답변을 피하거나 공무원들이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몰라서 지나치고 구태로 찍힐까봐 추가질의를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당이 다수당이 되고, 초선의원들이 많아지면서 피감기관들이 무시하는 태도가 보인다. 재선, 3선들이 많던 시절에는 그런 태도로는 버티지 못했다."

그는 서울시장의 경우 등을 예로 꼽으며 "피감기관의 국회 무시 행태는 여야를 가리지 말고 공동대응해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의 권위가 사라지면 행정부 견제기능은 사라지고 정부의 일방 독주만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것.

기밀누설 논란도 국회 권위를 무시한 정략적 접근이라는 입장이다. 이 보좌관은 "국방위의 가장 큰 현안인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와 관련, 한미동맹 변화에 따른 안보대책을 추궁하는 것이 본질이었다"며 "이를 기밀누설 논란으로 몰아간 것은 아픈 질의를 못하도록 국회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유난히 외교안보 고급정보들이 많이 '고인다'는 박진 의원실의 노하우는 의외로 평범했다. 이 보좌관이 강조하는 것은 정보를 보는 눈과 크로스 체킹. 그는 "정보들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며 "그 의미화 과정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판단하는 것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가치판단능력에 대한 강조였다.

초선의원들일수록 튀는 국감을 위해 국감 자체보다 언론보도에 신경 쓰는 풍토에 대한 지적이기도 했다.

국정감사기간인 15일 밤 의원회관 사무실의 불이 환히 밝혀 있다.
국정감사기간인 15일 밤 의원회관 사무실의 불이 환히 밝혀 있다. ⓒ 이종호

"일을 확실히 많이 하긴 하는데…" 우려반 기대반
수위, 기자 등 '국회 사람들'이 말하는 17대 첫 국감

"합의정신이 지켜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관계자의 17대 국감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증인채택으로 여야 대립이 심한 상임위 중 대표적인 정무위에서 이번만큼은 합의에 따라 증인채택이 이뤄졌다는 점을 꼽았다. 물론 이헌재 부총리, 전윤철 감사원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막판 표결에 부쳐지기는 했지만 그 역시 '표결을 하자'는 여야 합의에 따른 것.

또한 재선 이상 중진급들의 질의태도도 성실했다고 평한다. 두루뭉수리한 질의로 윽박지르거나 자기 질의순서가 아니면 자리를 뜨기 십상이었다. 특히 행자부 장관 출신의 초선 이근식 열린우리당 의원과 3선의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이 "열심히 한 흔적이 보였다"고 평했다.

이진섭 국회 공보관은 좀 비판적이다. 그는 "팩트 파이팅(fact fighting)에는 여야가 없다"며 "하지만 인천시 국감에서 한나라당은 무조건 감싸기, 열린우리당은 무조건 몰아부치기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국회의원들은 몇 천 원짜리 점심식사도 피감기관과 더치패이를 할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고 말하면서도 "스타일은 바뀌었는데 본질은 바뀌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11대 국회부터 국회 곳곳의 출입구를 지켜온 한 고참 경위는 "국감기관 100∼150명 정도 철야를 신청한다"며 "30명 수준이던 과거에 비해 확실히 일은 많이 하긴 하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변화는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국감 중간, 정부여당이 새로운 이슈를 제기해 소위 '국감 물타기'를 하고, 야당은 반대안으로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는 국감의 오래된 관행"이라고 일갈한다.

기자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정치부 경력 10년차인 동아일보 윤영찬 기자는 "국감 초기 정치공방이 있기는 했지만 두 번째주 들어서면서 차분하게 정책, 대안 중심으로 가고 있다"며 특히 "초선들의 의욕이 넘친다"고 평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자료를 그대로 베끼는 등 이슈를 재탕 삼탕하는 구태는 남아 있다"며 전문성을 지적했다. 초선의원들 중에 학계 출신들이 많기는 하지만 현실감각과 경험부족의 문제가 있다.

이어 윤 기자는 '상시 국감'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국정감사는 정부의 실정을 고발하고 권력형 비리를 폭로하는 장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은 상임위 활동을 통해 일상적으로 국정을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상임위에서 이미 제기된 이슈가 국정감사에서 반복되는 문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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