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의 초ㆍ중등학교에서 오신 교장ㆍ교감선생님들과 교육 관계자, 학교 운영위원등 약 130여 분들은 장소를 옮겨 본격적인(?) 보고를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국민의례를 마친 후, 경영 보고를 담당한 송남초등학교 이원훈 교장선생님은 “장소가 너무 좁고 불편하실 텐데 많은 양해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애초부터 보고회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 전에 이뤄진 재량활동 수업을 지켜보면서도 왠지 모를 불편함을 계속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구 수업에 대한 안 좋은 기억
아주 오래된 일을 추억해 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1년에 몇 번씩 있는, 장학사들이 초청돼 진행되는 ‘발표수업’인지 ‘연구수업’인지 때문에 며칠 전부터 학교가 난리였다.
아예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청소용 손걸레를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하셨고, 유리 청소에 교실바닥은 왁스 청소까지, 무슨 사찰단이라도 나오는양 우리들은 학교 가꾸기에 매달려야 했다. 청소는 그렇다 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수업이었다.
연구수업 때문에 다급해진 담임선생님은 며칠 전부터 행사 당일의 수업 내용에 대해 반복해서 강조하셨고, 그 과목은 산수였다. 지금에 와선 농담반 진담반으로 ‘수학만 잘 했으면 일류대 갔다’라며 한탄을 늘어놓지만, 그 당시에 나는 수학경시대회를 나갈 정도로 나름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수업 내용 중 가장 핵심은 두 자리가 넘어가는 숫자끼리의 곱셈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100×100을 계산한다면 ‘0’이 몇 개인지 세보고 그 개수를 그대로 적으면 된다. 그래서 ‘10000’이 되는 거야. 알겠지?”라며 사전 조율을 시도하셨다.
행사 당일, 여지없이 장학사들은 우리 반 교실 뒤를 서성이며 우리들을 감시했고, 그분들의 평가에 따라 담임선생님의 칭찬 혹은 벌이 준비돼 있다는 사실을 그 간의 경험에 의해 알고 있던 우리들은 바짝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도 긴장된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몇 차례 반복된 수업이라서 이해하는데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숨 막히는 순간이 펼쳐졌다.
선생님께서 “자 여러분! 100×10000을 계산하기 위해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고,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예상 했지만 우리 외의 다른 분들이 우리를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용기 있게 연출된 대사를 발표할 용기가 그 누구에게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약 10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린 마음에 등에는 식은 땀이 흘러내리면서, 누군가는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이 밀려왔고, 담임선생님도 쭈뼛쭈뼛하며 괜한 질문을 했다는 듯 애처롭게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다.
“선생님!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마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자신 있게 발표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장학사들은 아마 그 누구도 우리의 사전조율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일 때문인지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장학사와 발표수업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거산분교의 산증인, 드디어 촬영에 성공하다
아이들의 발표 때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보노보노’라는 녀석을 찾기 위해 운동장 옆 동물원으로 향했다.
현장 검증을 하니 아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햇살’이는 초가삼간도 없이 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 속에서 몸을 떨고 있었고, 그 위의 토끼들이 떨어뜨린 배설물과 풀들은 햇살이 옆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옆, 그물로 우리를 만든 울타리 속에는 거위와 닭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노보노’라고 추측되는 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토끼장 옆에 텅 빈 채로 잠겨 있는 문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곳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진 몇 장을 찍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걷다가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번 거산분교 탐방기에서 ‘거산분교의 산증인’이라고 얘기했던 6학년 혜원이를 다시 만난 것이다.
“잘 지냈니? 아저씨 알아보겠어?”
“얘 안녕하세요?”
“아까 너희들 발표할 때 보노보노라는 동물 얘기하던데 혹시 지금 볼 수 있니?”
“그럼요, 저를 따라 오세요”
혜원이는 역시 거산분교의 ‘산증인’이었다. 방문객들을 위해 친절하게 안내 역할까지 해 주는….
그런데 혜원이도 ‘보노보노’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 갔지?”
“그런데 ‘보노보노’가 어떤 동물이니?
“강아지예요. (허걱) 워낙 까불거려서 자기가 집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요.”
‘아 그렇구나, 강아지였구나!’ 그러고 보니 ‘햇살’이 옆에 그럴듯하게 들어선 강아지 집이 빈 채로 놓여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엔 지난번 탐방에서 못 이룬 혜원이를 촬영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지난번 기사에서도 거산분교의 산증인 혜원이를 찍지 못해 많이 아쉬웠고, 혹시 독자들도 이런 아쉬움을 느꼈을 수도 있을 테니.
“혜원아! 이번엔 네 사진 좀 찍자!”
“절대 안 돼요.”
냉정하기도 하지.
“제발 부탁인데 한번만 찍자!”
“다른 사람도 많은 데요. 뭘!”
다시 운동장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수차례 부탁을 했지만 결국엔 거절당했다.
“그럼 좋아. 아까 넌 어떤 동물에 대해 발표했는지, 그 내용을 말해 줄래?”
“닭에 대해 발표했어요. 닭장에서 살아서 주위가 지저분하고 먹이도 사료만 주니까 안 좋고, 아이들이 청소할 때에는 닭장 안에까지 들어와야 하는데 신발에 묻을 것을 걱정해서 제대로 청소를 안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닭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토론을 하다보니 생각이 바뀌게 됐어요. 야생에서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되니까요. 자유가 우선이긴 하지만, 우선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잠시 후 혜원이의 친구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나는 혜원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진촬영을 부탁했다. 다행히 혜원이는 친구와 함께 찍는 것을 조건으로 허락했다.
사진을 찍고 다시 운동장으로 오는 길에 ‘안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혜원이에게 물었다.
“너희들 아까 발표한 거 있잖아. 혹시 사전에 선생님하고 짜고, 누구누구 발표하는 순서까지 정한 것 아니니?”
“전혀 아니예요. 하루 전 선생님께서 동물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해오라고 했을 뿐, 사전에 발표 순서를 정하거나 선생님과 짠 건 아니예요.”
“어 그렇구나.”
조금 민망해진 나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다시 보고회장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진지한 모습으로 시범학교 운영 보고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른들은 평가를 너무 좋아해
시범학교 운영보고회를 마치고 잠시 동안의 휴식과 다과 시간이 마련됐다. 한쪽 교실에서는 거산분교와 송남초등학교, 송남중학교까지 참여해서 작성한 환경교육 체험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잠시 후 송남초등학교 이원훈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교장선생님은 이 행사에 대해 말했다.
"이런 행사를 갖게 되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참여해 주신 분들도 ‘좋은 교육 내용이었다’며 격려해 주시고 있습니다. 뜻있는 교사들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자연과 생태적 조건이 알맞은 거산분교를 환경체험교육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충남지역에서 100명 미만인 초등학교가 40%에 달합니다. 거산분교는 초등생 129명, 유치원생 21명으로 큰 규모의 학교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오신 많은 교장선생님들이 ‘거산분교를 본교로 승격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92년부터 분교로 결정 되면서, 10년 이상 통폐합 예상 학교로 예산지원이 열악한 상황입니다.
공교육의 불신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외국으로 조기유학을 가는 상황에서 개방형 학구제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현재는 학부모님들이 아산과 천안지역에서부터 여기까지 통학시키기 때문에 사실상 현 학구제 하에서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잠시 후 환경교육 실천사례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가을 오후를 달리면서 두 달 전 기억이 생각났다. ‘거산분교 탐방기’ 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당시에는 태어나지 않았던 나의 아이가 ‘이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9월 7일 드디어 예쁜 공주님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잠을 워낙 안 자는 녀석이라 장인 장모님의 어려움이 많지만, 눈에 넣어도 어디 아프겠는가?
오늘 거산분교에서의 보고회를 보면서 한편 씁쓸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그 간의 활동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자연스럽게 지켜보았다면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쩌면 어른들은 꼭 평가를 하고 확인을 해 봐야 할까?
아이들이 지금까지 거산분교 선생님과 함께 배운 살아 있는 교육은 누구에게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물론, 아직까지 거산분교의 체험학습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알리고 홍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언제쯤이면 거산분교와 같은 모습이 전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는 시기가 올까? 고교등급제 논란으로 가뜩이나 복잡해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언제쯤 변하게 될까? 우리의 아이들은 입시라는 지옥에서 과연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주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아이가 다 자랐을 때는 꼭 그런 세상이 만들어 져야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