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화번호 없이 대성이발관이라는 상호만 덩그러니 쓰여진 이발관
전화번호 없이 대성이발관이라는 상호만 덩그러니 쓰여진 이발관 ⓒ 서정일
순천시 인제동에 가면 인자하게 생기신 박종효(69)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이용원이 있다. 상호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으로 군더더기 없이 대성이용원이란 글자만 쓰여져 있다. 그러나 간판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없다.

영업집에 전화기가 없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이상한 주인이라 혀를 끌끌 찰 일이지만 박 할아버지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없는 게 더 편하다면서 있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한다.

15살 때부터 이용일을 하게 되었다는 박 할아버지의 스승은 다름 아닌 일본에서 이용기술을 배워오신 작은아버지. 엄하신 작은아버지 밑에서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이용기술을 탄탄하게 배웠다는 박 할아버지는 나이는 들었지만 지금도 이용기술에선 최고라고 큰 자부하고 있다.

손잡이 아래 닳아진 부분이 30여년의 대성이발관 역사라 강조한다.
손잡이 아래 닳아진 부분이 30여년의 대성이발관 역사라 강조한다. ⓒ 서정일
"김재규라고 알어? 안기부장 있잖아 내가 그 사람 머리해 줬어. 한 세 번인가 될 거야, 처가가 요 근천데 그때 돈으로 머리 자르는데, 300원인가 했을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한번 자르면 세 번 자르는 비용을 줬지. 그때 두부가 11환인가, 얼만가. 아무튼 그 사람 얼굴 세 번 봤지. 그 후 박대통령이 불러 서울로 갔는데…."

전혀 뜻밖의 얘기였다. 전화번호가 없는 이용원도 다 있을까? 라는 의문점으로 찾아온 이곳에서 그런 얘기를 듣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을 덮어두시고자 했는지 화제를 돌려 옷장 얘기를 하시는 박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내가 이 자리에서 한 30년 했나? 그때부터 사용하던 옷장인데 여기 봐 손잡이 아래가 다 닳았어. 가장 가까운 이곳 손잡이 아래가 많이 닳아졌잖아. 이곳엔 항상 사용하는 물건을 넣어 놨기에 빨리 닳아진게지. 조금 전에 했던 얘기가 내 이발 역사가 아니라 옷장 손잡이 아래가 바로 내 역사여."

힘이 있을때까지 이발소를 운영하시겠다는 박할아버지
힘이 있을때까지 이발소를 운영하시겠다는 박할아버지 ⓒ 서정일
"할아버지 여기 대성이용원은 정말 전화번호도 없고, 전화기도 없으세요?"라고 찾아온 목적을 묻자 "전화기가 뭔 필요 있어? 이발하려면 여기 오면 되고, 내가 항상 여기 있으니 나 만나려면 여기 오면 되는데…. 왜 전화기가 필요 있어? 난 전화기 그거 낭비라고 생각해" 라고 잘라 말하시는 표정에선 정말로 전화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시는 듯 보였다.

우주에서 지구로 목소리뿐만 아니라 화면까지도 보내는 세상에,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전화기 없이 살아가는 박 할아버지 특히 영업을 위해 좋은 전화번호를 갖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마당에 참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힘이 부치는 날까지 이용일을 하시겠다는 박 할아버지께 전화기가 없어 종종 안부를 물어볼 수는 없지만 건강하게 오랫동안 일하시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섰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갸웃 거릴 수밖에 없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