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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주택공사 아파트 건축현장.
대한주택공사 아파트 건축현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대한주택공사가 짓고 있는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인 서울·경기 지역의 한 공사장. 주공의 아파트를 시공중인 ㄱ업체의 A공무과장은 주공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최근 현장 관리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A과장은 '주공의 부조리한 업무수행 방식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대해 녹음을 하지 않고 익명보도를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10년 넘게 주공을 옆에서 지켜봐 왔는데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과거와 같이 주공의 공사 감독과 현장소장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하던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정확히 따지면 80%는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 옛날에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봐 달라는 의미로 향을을 제공했는데 이제는 친목차원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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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공 현장소장이나 감독관에게 '상납'하는 관행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았다고 했다. 요즘은 과거처럼 '강요'에 의한 상납이 아니라 친목다지기 명분의 '관성'에 의한 상납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하도급 업체의 상납관행 아직 남아있다"

A과장은 상납이나 향응 제공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계약서 외의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는 경우가 더 문제라고 했다. 예를 들면, 주공 현장관리소 사무실의 업무용비품이나 민원처리 비용을 전부 하도급 업체에 떠넘기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나라에서 하는 공사인데 현장사무실을 짓는 비용을 우리(하청업체)한테 내달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 사무실 비품을 사달라고 하기도 한다. 특히 민원처리 비용도 주공 자체 예산으로 집행하지 않고 우리한테 손을 벌린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계약서에 없는 것들이다. 그런 요청을 받으면 하청업체들끼리 갹출해서 처리하는 게 보통이다. 고쳐져야한다고 본다."

수도권 지역의 또다른 한 공사장에서 주공 아파트를 시공하고 있는 ㄴ업체의 B공무과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B과장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거야 어디나 다 똑같지 않느냐. 예전만 해도 (주공 관리소장이나 감독에게)용돈을 줬는데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B과장은 "그러나 상납 관행이 100% 사라진 건 아니다"며 "지방 공사현장을 중심으로 이런 관행이 여전히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B과장은 '용돈'보다 주공이 직접 하도급업체를 추천하는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도 주공이 어느 업체를 쓰라고 추천을 하고 있다"며 "업계에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지난해 공공기관의 주요민원업무 청렴도 측정결과에 따르면, 주공 민원인 7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주공에 금품 및 향응을 제공한 비율은 4.7%로, 공직 유관단체의 평균(4.4%)에 비해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이는 전체기관 평균 3.5%과 비교할 때 1.2%나 높은 수치다. 전체 조사대상 77개 공공기관 가운데 주공은 청렴도 64위, 공직 유관단체 11곳 중 7위를 기록했다.

77개 공공기관 가운데 종합청렴도 64위, 공직유관단체 11곳 중 7위

제공 빈도와 규모면에 있어서도 전년도 보다 2∼3배 가량 높게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건설공사 점검업무에서 금품·향응을 제공한 비율은 8.5%나 됐다. 이는 민원인 100명당 8.5명이 건설공사 점검업무와 관련해 주공에 금품·향응을 제공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 12일 대한주택공사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은 주공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국감장은 마치 주공의 비리사례 고발장을 방불케했다.

대표적으로는 사장 판공비 모금 건. 사장의 '현금용' 판공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장 비서실이 각 지사와 직원들로부터 출장비·특근매식비 변칙집행, 본사 격려금 상납, 직원 갹출 모금, 공사현장 현금 수수 등을 통해 지난 2년 여간 1억8874만원을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주공의 '제식구 감싸기' 관행도 좀처럼 시정되지 않고 있다. 2004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주공이 시행중인 100억원 이상 공사 현장 31곳 가운데 주공 출신 인사가 감리단장을 맡고 있는 현장이 무려 77.4%인 24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공 출신 직원에 대한 배려성 특혜로 볼 수 있다.

또 퇴직자를 산하 기관에 다시 채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주공은 2003년 7월 31일자로 1급 8명, 2급 2명 등 10명을 퇴직 처리한 뒤 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계약직 연구위원으로 재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4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1급 3명, 2급 5명 등 8명을 재고용해 총 18명의 퇴직자를 주택도시연구원 계약직 연구위원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계약직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만 57∼58세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해 주기도 했다.

홍인의 주공 부사장은 당시 국감에서 "전직된 직원들의 경험을 살려 좀더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주택도시연구원으로 전직을 한 사람에게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급여를 깎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주공의 한 관계자도 "이들은 퇴직금도 못 받고 나간 분들"이라고 덧붙였다.

부채 14조 3645억원 불구 방만한 경영은 여전

주공의 방만한 경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주공의 부채규모는 2000년 9조3506억원에서 2003년 10조1285억원, 2004년 14조3645억원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주공은 지하 2층, 지상 15층 규모의 전남광주지역본부 신사옥 건립에 590억원, 대구경북지역본부 신사옥 건립에 54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제로 국정감사에서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홍인의 부사장은 국정감사에서 "지방본부의 사옥 신축을 중단하라"는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의 충고에 대해 "지사 사옥 건립문제는 지방이전 계획과 연결시키겠다"고만 답변했을 뿐, 사옥신축을 중단할 의사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임대주택 관리업무를 담당할 제2 자회사의 갑작스런 설립 추진도 또다른 중복투자 및 방만한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주공 노사는 임대주택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자회사 '주택관리공단'의 업무영역을 가져와 제2 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을 내부에서 검토중이다.

주공 노사는 이와관련, 지난 2003년 3월 "공사는 100만호 국민임대주택의 직접관리 또는 제2 자회사 설립을 위하여 2003년 상반기 중 건교부와 합동으로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노사 합동으로 임대주택 관리에 관한 해외 선진사례를 조사키로 했다"고 합의했다.

국민임대주택의 임대업무를 본사로 가져오고, 관리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겠다는 내용의 주공 공문.
국민임대주택의 임대업무를 본사로 가져오고, 관리업무를 민간에 위탁하겠다는 내용의 주공 공문. ⓒ 오마이뉴스 이성규
이를 위해 주공은 '오는 11월 1일 이후 입주하는 국민임대주택은 공사에서 직접 임대업무를 수행하기로 노사합의가 돼 알려드리니 각 지역본부에서는 준비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라며 세부시행방안은 추후 별도 통보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공문까지 발송했다.

제2 자회사 설립에 노사가 합의한 배경은 노조 부위원장이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흥재 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9월 15일 주공 내부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멀지 않은 장래(100만호 건설이 완료되는 2012년쯤)에 건설의 시대는 가고 관리의 시대가 도래될 것입니다....관리를 등한시하여 관리를 포함한 주거복지 업무를 우리가 하지 못한다는 누를 범한다면 국민임대 100만호 건설시대에 들어왔던 우리의 후배들은 꿈 한번 펴지 못하고 삶의 터전인 직장을 잃게 됩니다."

기존 자회사 불구 노사 합의로 임대주택관리 업무확대 추진 '중복투자' 논란

동일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임대주택관리 전문 자회사(주택관리공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공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제2 자회사 설립을 또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주택관리공단을 설립한 지 6년만에 자회사에 이관한 임대주택업무를 다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주공은 주택관리공단의 민영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자칫 주공의 공공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까지는 임대업무를 본사로 가져온 뒤 관리업무만 민영화시킨다는 구상을 확정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노조는 관리업무까지도 이관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은 공기업의 경영 효율성을 저하시켜 비용증대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임덕호 한양대 교수는 "공기업의 공공적 기능과 역할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더라도 이같은 비효율적 경영 시스템이 공공분야 사업의 비용을 높인다면 존립 이유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임대아파트 건설비용이 '효율적' 민간기업에 맡기는 것보다 '비효율적' 공기업에서 시행할 때 더 많이 투입돼야 한다면 굳이 공기업에 재정을 지원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주공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을 내놓았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지 않은 탓도 있다"며 "조직 자체가 비대해 지면서 나타나는 문제일 수 있고, 주택관련 공기업으로서 직원들이 가져야 할 소명감이 느슨해 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임덕호 한양대 교수는 주공 직원들의 주인의식 부재를 꼽았다. 임 교수는 "주인이 없는 공기업에는 이익을 내도록 하는 인센티브제도가 없다"면서 "적자가 나지 않는 한에서 자신들의 복지수준이 최대화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면 하성규 중앙대 교수는 해석을 달리했다. 하 교수는 "어느 조직이든지 일종의 부패·비리가 다 있는 것 같다. 주공이라고 해서 특히 더 부패됐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주공의 비리가 커보이는 것은 주공의 수혜자가 국민이다 보니까 그런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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