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각, 한때는 유명한 요정으로 또 3년 전까지만 해도 한정식 식당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서울시가 인수하고는 전통음식을 비롯하여 전통문화강좌 및 소규모 공연을 제공하는 장소로 잡아온 지 벌써 3년이란 성상이 흘렀다. 그 3년을 기념하고자 야심찬 기획을 하였다.
다름 아닌 우리 전통문화를 평생 지켜온 예술가 일곱 분을 무대에 모시고 한 주에 나흘씩(매주 수, 목, 금, 토) 공연을 한다. 10월 20일 첫날 무대를 여는 명인은 배정혜 선생. 다섯 살에 처음 춤을 배우기 시작해서 12살에 데뷔 무대를 가진 천상 춤꾼인 배정혜 선생 55년 춤세계를 나흘에 나누어 공연한다.
승무의 날, 장고춤의 날 등 나흘 동안 각기 다른 춤 주제를 정하여 공연하기에 시간이 된다면 매일 찾아보면 명인이 수십 년 갈고 닦은 예술의 깊은 경지에 깊이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총 7주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삼청각의 기획공연은 축제나 진배없다. 아니 오히려 겉만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축제가 가지지 못하는 예술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축제라고 볼 수 있다. 첫 주 배정혜 선생 춤 세계에 이어 두 번째 주(10월 27일~30일)에는 아쟁의 명인이자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김일구 선생의 차례가 기다리고 있다.
김일구 선생의 꿋꿋하고 공력 깊은 동편제 적벽가 한바탕을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예의 아쟁산조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이번 공연 기간에 자주 듣지 못하던 선생의 가야금 산조를 접할 수 있다.
김일구 선생은 판소리, 아쟁에 이어 가야금도 남 못지 않게 잘 타기에 그를 일컬어 흔히 ‘3절’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왜 그런 명칭이 따라붙게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11월에 접어들어 3일부터 6일까지는 진도 씻김굿과 진도북춤 그리고 구음의 명인 박병천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말로만 듣던 진도 씻김굿을 꼼꼼히 구경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박병천 선생의 제자이자 자녀인 박환영(대금), 박미옥(무가), 박향옥(무가) 등이 함께 출연하여 대대로 세습되어온 전라도 지역의 무속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굿이야 상황에 따라서는 몇 날 며칠도 하는 것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남도삼현으로 시작해서 넋올리기, 제석굿, 영돈말이, 고풀이 그리고 끝으로 길닦음으로 마무리한다. 삼청각 무대가 작은 편이라 수십 미터에 달하는 길닦음의 장관은 볼 수 없으나, 진도굿음악이 가진 깊은 음악적, 미학적 진수를 경험할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11월의 둘째 주(10일~13일)에는 사물놀이패 ‘노름마치’와 함께 춤무대를 만들 하용부의 순서이다. 앞선 세 분의 거장에 비해 대폭 나이가 젊어져서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춤인 덧배기의 힘찬 도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선보일 춤은 밀양백중놀이 중 백미인 양반춤, 범부춤, 북춤과 창작 춤인 영무(靈舞) 등이다.
7인의 예술 거장의 다섯번째 순서는 거문고의 명인 김무길 선생의 무대이다. 술대로 6개의 현을 내려치거나 긁어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드문 거문고는 과거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하여 악기 중 최고로 쳐주기도 하였다.
흔히 군자의 악기로 일컬어지는 거문고는 처음 산조로 짜여져 연주될 때만 해도 숱한 반대와 압박을 받기도 하였으나 거문고산조의 창시자 백낙준을 거쳐 박석기, 신쾌동의 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공연 나흘 동안 신쾌동류 산조와 한갑득류 산조를 번갈아 연주하며 김무길 선생이 스승들에게서 사사한 바디를 벗어나 자신만의 가락과 색깔을 입힌 김무길류 산조라 할 수 있는 “동살풀이 거문고 합주”와 시나위가 연주된다. “시나위”는 남도 음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음악적 양식이며 한강 이남지역의 무속음악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시나위를 모르고 판소리나 산조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11월도 마무리 되어가는 24일부터 27일까지는 “쓰리랑 아주머니”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 신영희 선생의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구수한 입담과 구성진 성음으로 작년 고인이 되신 박동진 명창과 더불어 판소리의 대중화에 큰몫을 감당한 신영희 선생의 그야말로 구성진 남도소리에 그저 빠져들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판소리 ‘춘향가’와 남도민요, 육자배기, 흥타령 등 남도소리의 진수들을 맛볼 수 있다.
남도음악을 다른 말로 “육자배기토리”라고 할 정도로 육자배기는 전라도 음악의 근간을 이루는 대단히 중요한 노래이다. 보통 육자배기에 이어 보렴 그리고 흥타령으로 이어지면 그 자리는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질펀한 술자리이기 쉽다. 그렇게 남도잡가가 진하게 한 순배 돌고 나면 아무리 밤이 깊어도 돌아갈 집들은 머리 속에 잠깐 지워버리기 십상일 정도로 흥과 신명이 짙디짙은 노래이다.
특히 요즘 오선보 교육에 치중한 국악의 대학교육이 반쪽짜리 국악인을 만든다는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 속에서 민속악의 대가가 이끄는 시나위와 판소리에 이어 남도잡가를 듣는 것은 분명 행운에 가까운 기회이다.
12월의 첫날이자 거장들의 예술세계를 집중적으로 펼쳐온 삼청각의 야심기획 “칠인칠색”의 마지막 순서는 유럽 순회를 마치고 돌아온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을 만나는 시간이다.
김창조로 시작되어 수도 없이 분파되고 발전되어온 가야금 산조의 터전 위에 창작 가야금곡을 이 땅에 심어온 황병기 선생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국악이 가지는 다분히 고답적인 전승과 보존의 형식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가야금의 현대화의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를 한 현대가야금의 아버지이다.
이번 나흘 동안에는 일반에게는 아직 낯설 수도 있는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와 가야금 창작곡 “침향무”를 선보인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산조는 그 동안 제자인 박현숙, 지애리 등을 통해서 일반에 연주되긴 했어도 황병기 선생이 직접 연주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렇듯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로 매혹적인 거장들의 무대를 칠 주간 이어가는 삼청각의 마지막 기획공연은 산 속 공연장에서 조용히 진행된다. 삼청각 공연장이 규모가 작은 소극장이라 거장들의 모습과 또 그들의 예술을 아주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국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기대에 차서 고대하는 칠인칠색 공연은 아마도 올해 최고의 국악이벤트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