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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권의 유죄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이후에 재판이 연기되었던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이 속속 잡히고 있다. 비록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이 아니라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임종인 의원의 주도로 여야의원 22명의 공동발의된 상황이지만 재판부는 상급심의 판결이 난 이후에 병역거부자들의 판결을 더 미룰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 대체복무 입법촉구 기자회견에서 오태양씨의 발언사진
ⓒ 전쟁없는세상
이례적으로 대구지법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의 판결을 국회에서 대체복무 입법논의가 진행된 후로 연기하는 판결이 나와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서울지법에서도 평화주의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자 염창근씨와 유호근씨의 재판이 국회논의 이후로 연기되는 판결이 났다.

따라서 병역거부자들의 판결이 대부분 법안표결 이후로 미루어질 것이고, 재판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엇갈린 판단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결에서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언도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렇게 구속자가 늘어가는 현실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고 있다. 올해 5월 한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정렬 판사의 병역거부 무죄 판결 이후부터 대법과 헌재의 판결까지 수많은 언론의 집중을 받았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정작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이 다시 감옥에 줄줄이 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언론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 입법논의에 병역거부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오히려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양심의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지금도 비폭력과 평화의 이유로 감옥에 가고 있는 그 사람들의 신념이 어떤 것이고,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감옥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보내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난 8월 30일 법정구속되어서 현재 성동 구치소에 수감되어있는 한국 사회 최초의 공개적인 병역거부 오태양씨의 옥중 편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편지로 비록 감옥에 있지만 그 사람들의 신념과 생각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아래는 성동구치소에서 수감번호 1725로 수감 중인 오태양씨가 지난 9월 중순 보내 온 편지다.

이곳은 성동구치소입니다. 오늘로 꼬박 보름이 지났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함께 해 주시는 마음이 있어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 식사 전 40분 가량 평소대로 기도와 명상을 합니다. 하루 세끼 밥을 두둑히 챙겨 먹고 세번 점검을 받습니다. 30분 주어지는 운동 시간엔 바지런히 운동장을 서른바퀴를 달리고 있습니다.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을 정독하며 제 삶과 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색합니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3.45평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공간에서 24시간 살 부비며 함께 먹고 자고 노는 10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20대 초반에서 환갑에 이르신 분까지 저마다의 사연은 다르지만 정드니 어느새 친구입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하루가 가을처럼 익어갑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창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익어가는 가을 하늘과 나무들, 건너편 기결수 사동에서 스며드는 목탁 소리에도, 소리 없이 창문 비집고 방 한켠 자리 잡은 아침햇살에도, 먼 길 찾아 반가운 소식 전해 주는 정겨운 벗들, 그리고 차마 눈빛 마주치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물에도 창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그 경계를 마주하며 오히려 일상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낍니다. 창살, 그것은 당분간 제 삶의 일부일 것입니다. 썩 자연스러운 곳은 아니지만 콘크리트 벽과 창살 사이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꽃들은 반갑고 아름답습니다.

바깥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혁·치윤·성환(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선고공판 있었다구요. 이곳에도 이미 6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어 있고 매주 거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저도 벌써 여러 명의 병역거부자들을 만났고 한방에서 같이 지내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20대 초반인데, 오래도록 마음의 준비가 있었던 때문인지 매우 자연스럽고 적극적이며 활기차게 생활을 합니다 얼굴빛만으로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국회에서 대체복무 입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은 줄을 이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익숙한 행렬이며 예견했기도 하지만 바깥에서 보내는 것과 감옥에서 맞이하는 것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4년 전 처음 병역거부 문제를 접했을 때 ‘감옥에 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첫 마음이었습니다. 오고 가며 젊은 눈빛들과 선하게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그 첫 마음이 심장을 두드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감옥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 몫이라면 이곳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함께 하는 여러분들과 조금씩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중인 대체복무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셨으면 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부탁드립니다.

벗들의 방문과 편지는 자칫 나태해지고 관성에 빠지기 쉬운 감옥 생활에 활력과 자극을 주는 주는 반가운 가을 바람이 될 것입니다. 대법원을 거쳐 UN인권위에 제소까지 갈 길이 만만치는 않지만 우리의 희망 길은 계속 될 것입니다.

루쉰 선생께서 이르셨죠.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콘크리트 사방과 창살 아래서 꽃 피우고 지고 썩어 다시 열매 맺고 꽃 피우기를 반세기. 선배들이 걸어갔던 도전과 희망의 길 따라 저도 결코 시들지 않는 꽃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성동구치소에서
오태양 두손모음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9월 15일 현재 492명인 병역거부 수감자는 올해 말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사람들이 전원 구속될 경우 1100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모 주간지에서 “감옥 더 안지어도 되나” 라는 카피로 이 일을 보도한 것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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