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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중순, 대학 4년 생활을 마치고 입대하여 강원도 고성에 있는 2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생활 중이던 한 훈련병에게 국군 보안사 수사원들이 찾아왔다. 훈련병 영문도 모른 채 성남의 보안사 본부로 압송되어 18일간 온갖 폭행과 고문 등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91년 6월,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이란 이름으로 조작되어 청주대 재학생과 졸업생 10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 구성) 혐의로 구속, 10여명이 불구속 기소됐고, 경찰은 ‘자주대오’라는 조직명을 내세워 전국 29개 대학에서 289명을 무더기로 구속하게 된다.

공안조작의혹사건, 진실을 고백하라
CBI뉴스 8월 30일자 기사 발췌

‘자주대오’는 NL(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계열의 ‘지하 이적단체’로 체제를 전복하고 민중정부 수립을 꾀한 반국가단체라는 것이 수사당국의 발표내용이었다. 조직 책임자로 내몰린 사람은 송재봉씨(39세 88년 청주대 총학생회 기획부장, 현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와 백상진씨(39세 88년 청주대 총학생회장, 전 충북연대 정책실장)였다. 사건 당시 송씨는 졸업 후 군입대해 신병훈련소에 있었고 백씨는 집시법으로 구속되면서 대학 휴학중인 상태였다.

운영규칙은 어느새 이적단체의 강령 규약으로 둔갑했고 동료들의 이름은 이적단체 조직원으로 등장했다. 송씨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권영환, 추병국, 고원준, 정수범씨 등 청주대 출신 단기사병 4명에 대해서도 일제조사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88년 청주대 총학생회의 NL계 운동권 학생 30여명의 이름이 불거져 나왔다. 보안사는 6월초 문제의 명단을 치안본부로 넘겼고 충북도경 공안분실에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이때 백씨는 청주 모충동 자취방에서 새벽 4시께 연행됐다.

경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충북대협, 충민련 등 지역 인권단체에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안기관에 의한 청주대 이적단체 구성 조작음모를 강력히 규탄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하지만 송씨와 백씨는 1년 6개월의 실형선고를 받았고 사실상 ‘이적단체 주모자’의 형량치고는 너무도 가벼운(?) 판결이었다. 하지만 2년 뒤인 93년 김영삼 정권의 출범과 함께 자주대오 사건 관련자들은 대부분 사면 복권됐다. 문민정부의 즉각적인 사면복권 결정은 ‘자주대오’ 사건의 음모조작설을 반증하는 단면이기도 하다.
/ CBI뉴스 권혁상 기자
충북 인터넷신문 'CBI 뉴스' 8월 30일자는 “대학민주화운동사 가운데 최악의 사건을 되짚어 보자”며 이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앞서 언급했던 ‘한 훈련병’은 바로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이다.

송 처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1년 여름. 학부 수업과 관련해서 충북지역 시민단체를 탐방하고 있던 기자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국에서 송 처장을 처음 만났고, 그 후 대학생회 창립과 ‘2002 충북정치개혁연대 대학생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약 2년여 동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름대로 ‘친분’이 있다고 여길 정도였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충격이었기 때문일까 송 국장은 기자에게 ‘자주대오’와 관련된 일을 단 한번도 말 한 적이 없었다.

송 처장은 이번 전화통화에서도 “‘자주대오’와 관련된 일이 다시 언급된다면 그 동안 나를 ‘빨갱이’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라고 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 ⓒ 김갑수
‘자주대오’라는 이름으로 조작되어 ‘지하 이적단체’의 주모자로 몰렸던 송 처장은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청주대 내에는 ‘자주대오’라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다. ‘청주대 자주대오’는 보안사의 조직사건 조작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며, ‘청주대 자주대오 사건’이 난 배경에는 91년 명지대생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이 발단이 된 정권의 위기상황을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었고,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한 현역군인을 대상으로 강압적인 수사와 협박, 고문을 해 만든 전형적인 군 관련 조작사건”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21일 송재봉 사무처장 인터뷰 내용.

- 국가보안법이 왜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가 안보와는 무관한 역대 정권안보용 악법으로 국민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수많은 억울한 희생자들의 양산을 통해 유지되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권력자의 자의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우리사회 발전을 위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로막고, 국민의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끊임없이 남북간의 대결과 갈등의식을 조장하고, 대화의 상대방인 북한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화해와 협력의 민족 공동체 형성을 가로막고 있으며, 현재의 형법을 통해서도 충분히 국가안보에 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후,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구 기득권세력의 근거 없는 선동으로 반공 냉전적 사고 속에 살아온 국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의 폐지 이후 형법에 ‘내란목적단체’를 신설하고, 간첩 조항을 수정하는 당론은 또다시 법 적용 과정에서 남용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린우리당이 형법학자들과 민변, 전국의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국가보안법이 전면폐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국가 안보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한 말씀하신다면?
"역대정권과 수구언론 그리고 기득권세력의 무책임한 선동으로 인한 일시적인 착시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끝났으며, 우리나라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북한보다 미국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 우리민족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테러의 공포에 떨게 하는지, 또 국가보안법의 적용으로 처벌된 사람들이 진정 국가안보에 위협적이었는지, 정권안보에 위협적이었는지,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진정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행위는 현행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형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의 의견으로 알고 있습니다."

-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중대 이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가보안법의 실체가 진정 국가안보와는 무관함을 국민에게 올바로 알리고 설득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구시대적인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 발전에 얼마나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는지, 또 개성공단 착공 등 남북간 경제협력과 교류증진을 통한 화해와 협력의 시대 나아가 민족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매우 중요한 시대적 과제임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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