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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이라고 합니다
응원이라고 합니다 ⓒ 김은식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한동안 희끄무레한 초음파 영상으로만 만나왔던 얼굴을 이제 또렷이 들여다보며 눈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탯줄도 완전하게 떼어내지 못한 핏덩이가 하루에 스무 시간 정도는 잠을 자고, 세 시간 삼십 분 정도는 젖을 빨며, 또 한 삼십 분 정도는 기저귀를 적시고 칭얼대거나 초점 없는 눈알을 굴려대며 배냇짓을 하고 있다. 내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바로 나의 미래 세대를 만난 것이다.

그 아기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밤을 새고 들어와 막 잠을 청하던 어느 아침, 거실에서 전화를 받던 아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한참 달래고 진정시킨 뒤 들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그 전화는 척추 기형과 염색체 기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 결과 염색체 이상일 가능성이 15:1로 매우 높은 편이므로 추가 검사를 해야겠다는 병원의 연락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1500:1 정도로 나오는 것이 정상이라고 했다.

채 잠들기도 전에 깨버린 눈을 비벼 뜨고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를 만났다. 위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니 추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아내의 뱃속으로 주사바늘을 찔러 넣어 양수를 끌어올린 다음, 세포배양을 해서 확인하면 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사바늘이 아기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대략 200:1은 될텐데 동의를 해주겠느냐고 했다.

그 십여 초 동안, 내 아기가 15분의 1의 치명적인 가능성 안에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00분의 1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도저히 계산하지 못했다. 그저 그 우려 속에서 남은 8개월을 버틸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끌리듯 동의 서명을 했고, 아내를 곧바로 검사실로 내려 보냈다.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일.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이었다. 그저 수학적으로 따져보자면 내 아기가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증후군일 가능성은 15분의 1이었고, 그것을 빗겨갈 가능성은 15분의 14였다. 그러나 동시에 보통 경우가 1500분의 1이라는 점과 비교하자면 무려 100배나 높은 위험성이기도 했다.

의사가 200:1이라는 작지 않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검사를 권한 이유는 분명했다. 만일 다운증후군이라면 아기를 포기하는 것이 상식이었고, 아기를 포기하려거든 가장 빠른 시점이 가장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 아기가 그 15분의 1 안에 들어있다면, 나는 내 아기를 그냥 뱃속에서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었을까.

내 아버지는 특수학교 선생님이었다. 특수학교 안에 있는 사택에서 자라고 사는 동안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나의 소꿉친구였고, 또 이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지능이 낮고 수명도 길지 못하지만 하나같이 낙천적이고 착하다. 그러나 내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가능성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1등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 잔인한 사회에서, 제 한 몸 스스로 가눌 수 없는 인생은 너무나 가련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감당할 수 없이 큰 짐일 거라고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고작 그런 핑계와 이유 때문에 내 손으로 아기를 죽이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이 피해가는 이 어려운 궁지에 왜 내가 빠져들지도 모르게 됐는지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다.

2주 후에 나온 검사결과 다행히 나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모면하게 되었다. 그러고도 몇 번 고비는 있었지만, 아기는 지금 아주 건강하게 먹고 자고 배설하며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에게 위험이란 요소는 끝이 없다. 우선, 가려움과 고통에 진저리치는 아기의 모습을 차마 지켜보기도 어려운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 다섯 살 미만의 아기들 중 아토피 환자의 비율은 2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한다. 오염된 환경에 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서울 한복판에 태어난 우리 아기에게는 그 위험도가 두어 배 올라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해마다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12세 미만 어린이들이 만 명이 넘는다. 그 역시 그 열두 해의 가중치로 계산하자면 아토피성 피부염에 걸릴 확률보다 적지 않은데다가 또 치명적이다.

그 뿐인가. 학교에 가면 크고 작은 폭력으로 정신적 피해를 경험하는 경우가 전체의 절반이 넘고, 사흘에 한 명 꼴로 성적을 비관한 아이들이 세상의 끝에서 뛰어내린다. 남자로 태어난 내 아기가 가게 될 군대에서는 매일 한 명꼴로 스스로 혹은 사고로 죽는다. 또 군대에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가학적이거나 자학적인 정신적 장애인이 된다. 이 아기가 군대에 갈 무렵에도 어딘가 파병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이밖에도 퍽치기나 유괴나 광란의 질주 등등 '묻지마 범죄'의 희생물에 포함되지 않고, 또 전쟁이나 경제위기, 취업난에 시달리지 않을 가능성까지 붙여 넣으려면 마음이 더 답답하다.

결국 우리 아기가 무사히 자라서 못 할 짓 피해가며 나름대로 앞 세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숫자의 환각일 뿐, 어쨌거나 살아보면 또 살 만한 것이 세상이라고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알 카에다가 한국인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고 해서 난리다. 때때로 운동경기장과 극장 나들이 계획을 세우는 내가 무사히 한 철을 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카에다만이 안다.

또, 하루에도 두어 번씩 건너다니는 다리가 끊어져 수장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혹은 고층 건물이 주저앉아 매장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는 그걸 지은 지 수십 년씩 되어 이제는 더 관심도 없을 건축 시공업자들만이 안다. 혹은 아무도 모른다.

또, 세상이 세월만큼 발전한다는 것은 맞는 말인가? 지금 삼십년 전을 돌아보며 '그 때는 참 엉터리 같은 세상이었지' 하고 혀를 차듯이, 삼십년 후는 또 지금보다 그만큼 상식적이고 그럴듯한 시절이 오는가? 그래서 그 무렵이면 그래도 '경국대전'의 지배는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인가?

가끔 10년 가까이 된 차를 몰고 카센터에 들르면 정비사가 하는 말은 항상 똑같다.

"아저씨 이 차 그냥 조금만 더 몰았으면 큰 일 날 뻔 했어요. 이거 고치고 저거 갈고 하면 이십 만원 쯤 나오겠는데요."

그래서 혹 "안 고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아기 검사를 권유하던 의사와 꼭 같은 표정으로 답한다.

"글쎄요…물론 아저씨 선택입니다만, 특히 고속도로 같은 데서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망한다고 봐야죠."

인생이 도박이라는 것까지는 대충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게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것도 그냥 포커 따위의 도박이 아니라 러시안 룰렛을 하며 산다는 느낌이 들어 아찔하다.

이젠 막연히 과학기술이 발달하는 덕분에, 혹은 원래 세상이란 발전하기 마련이거니 해서 시간이 갈수록 행복해질 것 같던 시절은 지나고, 정말 독한 마음먹고 행복해지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는 시절이니.

아기야, 너의 탄생이 나에게는 기쁨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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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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