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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이해찬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이 끝난뒤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김덕룡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남경필 수석원내부대표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5일 오전 이해찬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이 끝난뒤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김덕룡 원내대표, 김형오 사무총장, 남경필 수석원내부대표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신 : 25일 오후 4시 10분]

김문수 의원 '대통령 및 국회의원 동반사퇴' 주장도


"일부는 퇴장하고, 일부는 남아있고... 당 지도부가 총리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방호 의원)

"당 지도부가 매끄럽게 보여야 비판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느 분의 말처럼 손에 피를 묻힐 땐 묻혀야 한다." (이재웅 의원)

"이 정권은 혁명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당 지도부는 말은 잘 한다. 못난 사람 남아있는 한심한 당으로 보이지 않도록 분발하자." (안택수 의원)


25일 이해찬 국무총리의 시정연설이 끝난 후 소집된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흡사 비주류 의원들의 지도부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비주류 의원들은 '시정연설 보이콧'을 당론으로 밀어붙이지 않은 지도부의 무기력을 질타하면서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 저지를 앞둔 당의 정신무장을 촉구했다. 헌재의 수도이전 위헌결정은 당 지도부에 정국반전의 기회를 안겨줬지만, 이로 인해 더욱 높아진 당내 비주류의 강경한 목소리를 수렴해야 하는 숙제도 떠 안게 됐다.

이방호 의원은 비공개 의총이 열리기 전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했다. 형식은 의사진행 발언이었지만, 내용은 당 지도부의 어정쩡한 행보에 대한 공개 질타였다.

"원내대표가 지난 금요일(22일) 의총에서는 총리 연설 안 듣기로 했으니 추인해달라고 해서 박수로 추인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연설 보이콧이 모양새가 안 좋으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토론, 그것도 10분 내외의 형식적 토론에 부쳤다.

지도부의 존재 이유가 뭐냐? 당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려고 지도부를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 오늘의 상황을 보자. 총리가 한나라당을 무시하고 있는데, 일부는 퇴장하고 일부는 남아있는 모습이 뭐냐? 이런 식으로 편이 갈라진 모습을 TV로 보여주고..."


사회를 보던 주성영 의원이 "그런 얘기는 비공개자리에서 하자"고 말을 가로막았지만, 이 의원은 "들어봐. 어디에다 대놓고 중간에 발언을 가로채나?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라고 도리어 주 의원을 다그쳤다. 순간 당황한 주 의원은 "알겠다"며 물러섰고, 이 의원은 하고싶은 말을 다한 뒤에야 연단을 내려왔다.

"당 지도부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입장이 곤란하면 의원들 의견이나 중구난방으로 얘기하게 만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모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에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재웅 의원은 "오늘 지도부의 판단이 명확하지 않아서 국민들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다. 당 지도부가 의원들에게 판단을 미루는 것은 잘못"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의원들의 비판이 '시정연설 거부'라는 일과성 사건을 넘어서 지도부의 대여투쟁 기조에 대한 의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도부는 남다른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 등 4대 법안을 발의한 마당에 한나라당이 비판만 할 뿐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않는 것도 비주류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안택수 의원은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됐을 때부터 예견된 상황이지만, 정국이 순탄치 않다. 여당이 강행하려는 4대 법안은 우리나라를 흔들어서 혁명을 하자는 건데, 우리 당 지도부는 말은 잘한다"며 "앞으로 한 달에 당의 명운이 걸렸으니 심기일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웅 의원도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도부가 너무 나이브하다. 한달 내에 당의 명운이 결정될 수도 있는데, 당의 방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이전 반대' 운동에 앞장서온 김문수 의원은 '대통령 사임 - 의원 총사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DJ는 내각제를 명분으로 한 DJP 연합으로 집권했는데, 내각제를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도이전을 추진했고, 이것으로 당선됐다.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건다고 했는데, 헌재가 수도이전을 위헌이라고 결정해 지배세력 교체라는 혁명적 의도가 좌절됐다.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면 헌재 결정과 함께 사퇴를 할 만하다. 이것이 지도자가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이다.

나는 헌재 결정이 나던 날 우리 모두가 사퇴하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도 사퇴를 촉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도이전은 야당도 잘못된 법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를 할만한 중대사안이었다. 제2 창당의 심정으로 자기 쇄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4대 법안과 관련해 유연성 있게 대응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이들과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여야간 정쟁에 염증을 내는 여론을 생각하면 총리연설 보이콧도 신중한 대응이 옳았다는 입장이다.

일부 의원들이 "총리가 헌법을 무시하고, 본분을 망각한 만큼 해임건의안까지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김덕룡 원내대표는 "언젠가는 총리해임건의안을 내야할 지 모르겠지만, 행정수도 문제로 궁지에 몰린 여당을 몰아세워서 정치위기를 조장하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며 신중론을 견지했다.

김 원내대표는 "일도양단으로 나가는 게 멋있을 때도 있지만, 상황이 어제오늘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당 지도부의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 얘기할 수 없다. 너무 자학·자해하는 분위기로 빠지지 말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표는 "지금 국보법 폐지에 반대 여론이 많지만, 사학법은 찬성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거리에서 싸우는 것은 마지막 카드가 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할만큼 한 후 나가야 하지 않겠냐"며 지도부에 힘을 실어줄 것을 주문했다.

25일 오전 국회에서 `야당폄하`발언을 한 이해찬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 참석여부를 논의하기위해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
25일 오전 국회에서 `야당폄하`발언을 한 이해찬 총리의 시정연설 대독 참석여부를 논의하기위해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신 : 25일 오전 11시 50분]

25일 오전 9시30분 본회의를 앞두고 국회 145호실에 모인 한나라당 의원들. 대통령 시정연설과 관련해 이해찬 국무총리의 대독 청취에 대한 찬반 당론을 정리하기 위해 모였다.

비공개로 열린 이날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주장은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자"는 강경론부터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통과시킨 장본인으로서 자숙할 때다"라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제기됐다.

애초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위시해 총리 사과가 없다면 시정연설을 집단 보이콧하자는 강경론을 앞세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헌재 결정 이후 여론역풍을 우려한 '자숙론'이 우세해지는 형국이다.

보수 중진 "총리 인정할 수 없다" 지도부에 강경노선 주문

의원총회 발언을 통해 이재웅 의원은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언론(조선·동아)까지 싸잡아 매도했다"며 "야당을 업신여기는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회의 참석을 거부하자고 제안했다.

김기춘 의원의 주장은 더 강경했다. 시정연설 거부는 물론 대정부질문을 거부하고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하자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총리의 정치철학을 인정할 수 없다면 불신임안 내고 이어지는 대정부질문도 거부해야 일관된 모습"이라며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도 당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상수 의원 역시 "시정연설을 거부하는 단호한 모습"을 강조하며 "정부여당이 계속해서 민주주의 지키겠다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총리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명규 의원은 본회의 불참을 반대하며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 결정의 의미는 정치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우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반문한 뒤 "웃기는 놈들이다, 기고만장하다, 지들이 잘해서 위헌결정이 난 줄 아나보다고 비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우리는 특별법 통과 장본인들이다, 겸허한 자세로 국회에서 다시금 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일 때다"라고 자숙을 강조했다.

집단퇴장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우려한 김덕룡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일단 들어가자"며 참석을 독려한 뒤 "총리의 사과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강력하게 항의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이해찬 총리의 사과 없는 대통령 시정연설 대독이 이어지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산발적으로 총리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다수는 퇴장했으나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를 비롯해 20여명의 의원들은 남는 모양새를 취했다.

"총리 개인에 대한 것이지 정부 전체에 대한 보이콧은 아니다"

후속 대응을 묻는 질문에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총리 개인에 대한 보이콧이지 정부 전체에 대한 보이콧은 아니기 때문에 대정문질문을 거부할 뜻은 없다"고 설명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온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145호에 다시 모였다. 시정연설을 들기 위해 한 당직자가 텔레비전을 켰으나 일부 의원들이 "뭐 그런 걸 보냐"고 항의하자 텔레비전은 꺼졌고 의원들은 시정연설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남경필 수석은 의총장에 모인 의원들에게 "본회의장에서 이해찬 총리에게 다가가 사과를 요구했는데 총리는 '내가 심각하게 공식적으로 한 얘기도 아니었다'며 사과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비주류 중진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이방호 의원은 "금요일 의총에서 보이콧하기로 당론 정해놓고 지금에 와서는 의원들 자율에 맡기자니, 무슨 당론을 이렇게 정하냐"고 지도부를 성토했다.

주성영 의원은 "총리사과 표시를 전제로 일단 참석해야 한다는 게 의총의 중론이었다"며 "총리 사과가 국민적 현안이 아니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헌재 결정 이후 유리한 정치적 고지를 유지해 가면서 28일부터 이어질 대정부질문을 통해 총리와 정부여당을 압박해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진행이 선언되자, 김덕룡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빨리 나가라`며 손짓하고 있다.
비공개진행이 선언되자, 김덕룡 원내대표가 기자들에게 `빨리 나가라`며 손짓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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