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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로 받은 우리 애기들과 집
택배로 받은 우리 애기들과 집 ⓒ 정상혁
씨앗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삭막한 도시 생활에 활력도 되고, 다 자라면 도시락 반찬 한 가지가 해결된다는 생각에 인터넷 씨앗쇼핑몰에서 여섯 가지 씨앗과 용기 두 개를 주문했다.

주문 후 이틀이 지나자 드디어 우리 애기(?)들이 도착했다. 내가 주문한 씨앗들은 순무, 양배추, 청경채, 알팔파, 적무, 다채 이렇게 총 여섯 가지다. 그 중에 알팔파와 순무를 뺀 나머지 네 가지 씨앗들은 마치 일란성 네 쌍둥이처럼 색깔이나 크기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나듯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겠지. 자, 지금부터 우리 애기들이 자라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첫째날 - 씨앗 담가두기

애기들을 키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수분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왔을 우리 애기들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반나절에서 하룻동안 물에 담가놓는다. 씨앗마다 적절한 시간이 있을 테지만 경험없는 농사꾼이니, 일단은 평등하게 하룻동안 담가보기로 했다.

먼저 종이컵에 키울 씨앗들의 이름을 적어 구별할 수 있도록 해놓고 씨앗봉지를 개봉해 각각의 컵에 담는다. 씨앗의 양은 나중에 기를 곳의 넓이에 맞도록 해야 하며, 씨앗들이 겹치지 않게 흩어뿌릴 수 있을 정도의 양이어야 한다. 나는 종이컵 바닥을 전부 덮을 정도를 씨앗을 담아봤다.

우리 애기들입니다.
우리 애기들입니다. ⓒ 정상혁
처음엔 이왕이면 깨끗한 물인 정수기 물을 부으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 물은 너무 차가울 거 같아 화장실 물을 부었다. 씨앗이 충분히 잠기고도 남을 만큼 물을 붓고 나니, 말라 있을 때와 달리 씨앗마다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부 씨앗들은 물 위로 떠올랐는데, 순무와 적무가 제일 많이 떠올랐고 알팔파는 작은 씨앗 크기에 비하면 떠오르는 씨앗이 가장 적었다. 떠오른 씨앗들은 발아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 나중에 옮길 때는 빼야 할 것 같았다. 씨앗들의 세계 또한 튼튼하고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칙이 작용하는 듯하다.

씨앗은 흔히 본질 또는 본성 등으로 비유가 되곤 하는데, 지금 마른 목을 축이며 한껏 물을 빨아들이는 내 애기들의 본성도 지금쯤 슬슬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둘째날 - 새집으로 이사가다

하루가 지나서 오늘은 둘째날, 애기들을 키울 용기로 옮기려고 무심코 물 위에 떠 있는 부실한 녀석들을 걷어내 버리려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종이컵 안을 살펴보니 처음부터 부실해서 물 위에 떠올라 있던 녀석들에게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루 저녁 물 속에 담가둔 애기들의 몸에 1∼2mm 정도지만 뿌리가 돋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적무. 씨앗껍질 사이로 뿌리가 살짝 나오기 시작했다.
적무. 씨앗껍질 사이로 뿌리가 살짝 나오기 시작했다. ⓒ 정상혁

왼쪽이 알팔파, 오른쪽은 순무입니다. 뿌리가 보이시나요?
왼쪽이 알팔파, 오른쪽은 순무입니다. 뿌리가 보이시나요? ⓒ 정상혁
약한 종자라며, 별 생각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버리려 했던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실제로 떠 있는 애기들의 발아율이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애기들에 비해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발아가 제일 잘 된 것은 순무이고, 청경채는 아직까지 싹을 내민 녀석이 하나도 없다.

조심조심 물 위에 떠 있는 애기들부터 건져 새 집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설레고 기쁜 마음에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애기들을 다 옮기고 나니 벌써 이십여분이나 흘렀다.

이사를 마쳤다.
이사를 마쳤다. ⓒ 정상혁
내가 덜어낸 씨앗의 양이 적절한지 여부는 애기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확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자랐는지 자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모두 뿌리를 잘 내리고 크게 자랄 수 있도록 주변을 어둡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흙에 씨앗을 심고 가볍게 덮어주는 것처럼….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씨앗은 뿌리가 먼저 씨앗의 겉껍질을 뚫고 나오면서 자란다는 것. 누가 누군지 헷갈려하지 않도록 덮어놓은 종이 위에 위치와 이름을 표시했다.

빛을 가려주는 건 흙을 덮는 것과 같을까?
빛을 가려주는 건 흙을 덮는 것과 같을까? ⓒ 정상혁
셋째날 - 솜털이 돋아나다

얼마나 자라 있을까 궁금해 하며 몇 번 들쳐본 게 좀 찔리긴 하지만 어쨌든 만 하루가 다시 흘러갔다. 조심스럽게 덮어놓은 종이를 들쳐올리고 들여다보니, 순무 싹에 솜털이 돋아나 있다.

솜털이 돋아나다
솜털이 돋아나다 ⓒ 정상혁
씨앗 자체도 너무나 작고 작은데 그 씨앗 옆구리에 슬며시 돋아난 뿌리와 그 뿌리를 둘러싸며 빼곡이 자라난 솜털 같은 잔뿌리들. 처음엔 곰팡이가 핀 줄 알고 실망스럽게 봤는데 자세히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같은 날 같은 때 기르기 시작했지만 씨앗마다 자라는 모습과 속도가 다 다르다. 물에 씨앗을 하루 동안 담갔을 때 싹이 나는 속도와 같은 비율로 자라는 듯하다. 적무는 이름처럼 떡잎 아랫부분이 붉으스레 하고 노란색 떡잎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자랐다.

떡잎 아래부분이 붉으스레하다. 잘될 적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떡잎 아래부분이 붉으스레하다. 잘될 적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 정상혁
하지만 청경채는 자라는 속도가 참 더디다. 아직까지 전체의 10% 정도도 뿌리를 내밀지 않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더디게 자라는 청경채를 보는 내 심정은 다른 씨앗들과는 남다르다. 이러다 싹도 못 틔우고 죽으면 어쩌지?

알팔파와 순무는 가장 잘 자라는 씨앗들로 이제 하루 정도 더 지나면 벌떡 일어서서 걸음마라도 할 기세이다. 씨앗이 자라남에 따라 물의 색깔도 조금씩 탁해지고 있다. 내일은 물을 한 번 갈아줘야겠다.

알팔파와 순무는 생장이 빠른 편인가부다. 내일이면 일어설 기세다.
알팔파와 순무는 생장이 빠른 편인가부다. 내일이면 일어설 기세다. ⓒ 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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