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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삭막한 도시 생활에 활력도 되고, 다 자라면 도시락 반찬 한 가지가 해결된다는 생각에 인터넷 씨앗쇼핑몰에서 여섯 가지 씨앗과 용기 두 개를 주문했다.
주문 후 이틀이 지나자 드디어 우리 애기(?)들이 도착했다. 내가 주문한 씨앗들은 순무, 양배추, 청경채, 알팔파, 적무, 다채 이렇게 총 여섯 가지다. 그 중에 알팔파와 순무를 뺀 나머지 네 가지 씨앗들은 마치 일란성 네 쌍둥이처럼 색깔이나 크기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나듯 시간이 지나갈수록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겠지. 자, 지금부터 우리 애기들이 자라는 과정을 살펴볼까요?
첫째날 - 씨앗 담가두기
애기들을 키우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수분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지내왔을 우리 애기들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반나절에서 하룻동안 물에 담가놓는다. 씨앗마다 적절한 시간이 있을 테지만 경험없는 농사꾼이니, 일단은 평등하게 하룻동안 담가보기로 했다.
먼저 종이컵에 키울 씨앗들의 이름을 적어 구별할 수 있도록 해놓고 씨앗봉지를 개봉해 각각의 컵에 담는다. 씨앗의 양은 나중에 기를 곳의 넓이에 맞도록 해야 하며, 씨앗들이 겹치지 않게 흩어뿌릴 수 있을 정도의 양이어야 한다. 나는 종이컵 바닥을 전부 덮을 정도를 씨앗을 담아봤다.
처음엔 이왕이면 깨끗한 물인 정수기 물을 부으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 물은 너무 차가울 거 같아 화장실 물을 부었다. 씨앗이 충분히 잠기고도 남을 만큼 물을 붓고 나니, 말라 있을 때와 달리 씨앗마다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부 씨앗들은 물 위로 떠올랐는데, 순무와 적무가 제일 많이 떠올랐고 알팔파는 작은 씨앗 크기에 비하면 떠오르는 씨앗이 가장 적었다. 떠오른 씨앗들은 발아에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 나중에 옮길 때는 빼야 할 것 같았다. 씨앗들의 세계 또한 튼튼하고 강한 개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법칙이 작용하는 듯하다.
씨앗은 흔히 본질 또는 본성 등으로 비유가 되곤 하는데, 지금 마른 목을 축이며 한껏 물을 빨아들이는 내 애기들의 본성도 지금쯤 슬슬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둘째날 - 새집으로 이사가다
하루가 지나서 오늘은 둘째날, 애기들을 키울 용기로 옮기려고 무심코 물 위에 떠 있는 부실한 녀석들을 걷어내 버리려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종이컵 안을 살펴보니 처음부터 부실해서 물 위에 떠올라 있던 녀석들에게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루 저녁 물 속에 담가둔 애기들의 몸에 1∼2mm 정도지만 뿌리가 돋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한 종자라며, 별 생각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버리려 했던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쳤다. 실제로 떠 있는 애기들의 발아율이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애기들에 비해 별반 차이가 없었다. 발아가 제일 잘 된 것은 순무이고, 청경채는 아직까지 싹을 내민 녀석이 하나도 없다.
조심조심 물 위에 떠 있는 애기들부터 건져 새 집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설레고 기쁜 마음에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애기들을 다 옮기고 나니 벌써 이십여분이나 흘렀다.
내가 덜어낸 씨앗의 양이 적절한지 여부는 애기들이 다 자랄 때까지는 확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자랐는지 자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모두 뿌리를 잘 내리고 크게 자랄 수 있도록 주변을 어둡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흙에 씨앗을 심고 가볍게 덮어주는 것처럼….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씨앗은 뿌리가 먼저 씨앗의 겉껍질을 뚫고 나오면서 자란다는 것. 누가 누군지 헷갈려하지 않도록 덮어놓은 종이 위에 위치와 이름을 표시했다.
셋째날 - 솜털이 돋아나다
얼마나 자라 있을까 궁금해 하며 몇 번 들쳐본 게 좀 찔리긴 하지만 어쨌든 만 하루가 다시 흘러갔다. 조심스럽게 덮어놓은 종이를 들쳐올리고 들여다보니, 순무 싹에 솜털이 돋아나 있다.
씨앗 자체도 너무나 작고 작은데 그 씨앗 옆구리에 슬며시 돋아난 뿌리와 그 뿌리를 둘러싸며 빼곡이 자라난 솜털 같은 잔뿌리들. 처음엔 곰팡이가 핀 줄 알고 실망스럽게 봤는데 자세히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같은 날 같은 때 기르기 시작했지만 씨앗마다 자라는 모습과 속도가 다 다르다. 물에 씨앗을 하루 동안 담갔을 때 싹이 나는 속도와 같은 비율로 자라는 듯하다. 적무는 이름처럼 떡잎 아랫부분이 붉으스레 하고 노란색 떡잎이 확연히 보일 정도로 자랐다.
하지만 청경채는 자라는 속도가 참 더디다. 아직까지 전체의 10% 정도도 뿌리를 내밀지 않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더디게 자라는 청경채를 보는 내 심정은 다른 씨앗들과는 남다르다. 이러다 싹도 못 틔우고 죽으면 어쩌지?
알팔파와 순무는 가장 잘 자라는 씨앗들로 이제 하루 정도 더 지나면 벌떡 일어서서 걸음마라도 할 기세이다. 씨앗이 자라남에 따라 물의 색깔도 조금씩 탁해지고 있다. 내일은 물을 한 번 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