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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려 죽은 용이 입을 벌린 채 오른쪽으로 누워 있다
목이 잘려 죽은 용이 입을 벌린 채 오른쪽으로 누워 있다 ⓒ 서정일
하지만 지금은 머리 부분만 남아 있다. 몸과 연결된 목 부분은 철로가 가로 질러 지나가고 있고, 주위에 건물들이 들어서 전체적인 윤곽은 어렴풋한 형체로만 알아볼 수 있다. 옛날엔 분명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저게 다 왜놈들이 한 짓이지. 철도로 목을 자른겨. 그래서 저렇게 용의 목이 옆으로 누워 입을 벌리고 죽어 있는 게지."

마을 어귀에 모인 동네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일제시대 때 철로를 설치하면서 용의 목을 잘랐다고 말한다. 용이 상서로운 것이기에 살아 있으면 일본에 해가 된다면서 목 부근에 철로를 냈다는 것.

위로 올라가 보면 용 등줄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살아있는 용처럼 느껴졌다
위로 올라가 보면 용 등줄기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살아있는 용처럼 느껴졌다 ⓒ 서정일
그게 사실인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철로를 놨는지 알 수 없지만, 철로에 의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지금은 용의 머리만 남아 있다는 건 분명했다.

"아니야. 용머리만 남은 건 아주 옛날이지."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김춘성(66)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이전에 이미 용머리만 남았었다고 전설과 같은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옛날 아주 옛날 이 마을엔 한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박하게 대했는가 하면,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이나 거렁뱅이 그리고 시주를 받기 위해 온 스님에게도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치곤했다는 것.

얼굴과 몸을 연결하는 목 부위에 철로가 있고 기차가 다니고 있다
얼굴과 몸을 연결하는 목 부위에 철로가 있고 기차가 다니고 있다 ⓒ 서정일
"장군이라 불리는, 인분 담는 통 같이 생긴 쌀뒤주의 입구를 어른 주먹이 겨우 들어가게 만든 후, 한 번씩 퍼가라고 했다지. 그런데 쌀을 집기위해 손을 오므리면 입구에 막혀 손이 나올 수 없고, 펴서 집으면 나오는 쌀은 아주 적었으니 얼마나 박하게 굴었는지 알 수 있지."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김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설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이 마을을 찾은 한 스님이 그들의 행실이 고약히 여겨, 혼을 내 줄 요량으로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 더 편하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테니 그대로 해 보라"면서 "용의 목 부분을 자르시오. 그러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요"라고 말하며 사라졌다는 것이다.

용의 전설을 들려준 김춘성(66) 할아버지
용의 전설을 들려준 김춘성(66) 할아버지 ⓒ 서정일
점점 얘기가 흥미로워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데 할아버지는 대뜸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훼손하고서는 잘 살 수가 없어. 그때 용의 피가 흘러내려 지금의 내를 이뤘다고 하는군"이라면서 한숨을 짓는다.

할아버지가 이야기의 결말을 얘기하지는 않으셨지만, 이미 결론이 어떠했으리란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당시 집성촌을 이루던 그 성씨는 이제 이 마을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목이 잘려 용이 얼마나 슬프게 울고 있는지 한 번 더 가서 자세히 봐"라고 말씀하시는 동네분들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전설 속의 얘기처럼 집성촌에 사는 어느 성씨의 부질없는 욕심이 부른 일이든, 나라의 정기를 빼앗기 위한 일본인들의 짓이든 "자연을 보존하지 않고 훼손하는 사람들 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없다"는 김 할아버지의 말처럼, 목이 잘려 슬프게 울고 있는 용은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종처럼 구룡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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