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나 질라니는 전세계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지명한 인권옹호 특별보고관으로, 지난 9월 14일 서울에서 개막한 제7차 세계국가인권기구대회(이하 세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파키스탄 전통의상을 입은 그는 우아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인사말을 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인터뷰에 들어가려고 하자, 질라니 특별보고관은 미소를 지으면서 먼저 자기가 하는 일을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유엔 '인권옹호 특별보고관'이 주로 하는 일은 인권활동가들의 지위와 안전을 보장하고, 그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는지 감시하는 것입니다. 지난 1998년 유엔이 인권활동가들을 위한 '인권옹호자 선언'을 채택하지 않았습니까? 이 선언이 제대로 실천되는지 확인하고 감시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입니다."
인권활동가들을 위한 특별보고관
질라니 특별보고관은 세계대회의 기조연설을 맡았다. 그는 '인권과 대테러에 대한 소개사'에서 9·11 사건 이후 인권활동가들이 겪는 고통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호활동 중에 목숨을 잃는 적십자요원이나 분쟁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인권옹호 활동을 하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말한다. 그는 인권활동가의 위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실 인권옹호 활동가들이 없다면 어떤 인권 활동도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인권교육이나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이들의 역할은 결정적입니다. 나는 인권활동가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 언론인, 국가인권기구 직원까지 모두가 광범위하게 인권을 보호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각국 인권기구들이 모인 이번 세계대회에 참석하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이 있지요. 전세계적으로 인권활동가들에 대한 폭력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인권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스스로 인권 침해의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이러다 보니 국가의 임무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데 있지만 인권활동가들의 보호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칠 때마다 무슨 신호인 양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대답의 내용이 아무리 강력한 메시지라 할지라도 그것을 부드럽게 희석시킬 만한 것이었다.
질라니 특별보고관은 파키스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으로 유명한 집안 출신이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부친은 민주투사로 여러 번 투옥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러한 배경은 어릴 적부터 그에게 불의에 항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의회에서 연설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기본권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아버지의 영향이 내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배운 것은 이 세상에는 불의가 많지만, 그것을 용기 있게 제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질라니 특별보고관 자신은 파키스탄 내에서 25년간 인권운동을 해왔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파키스탄 군부독재는 법의 이름으로 인권 탄압을 수없이 했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인권운동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이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여러 번 생명을 위협받을 만큼 긴박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그에게 굴복을 요구하는가 하면,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거의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인권운동 때문에 인권을 근본적으로 위협받기도 했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놓지 않은 인권 생각
질라니 특별보고관은 1980년 파키스탄에서는 최초로 여성 변호사들만의 법률구조센터를 만들어 여성과 아동 등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함께 활동을 한 이 중에는 여동생도 있었다.
변호사인 여동생 역시 현재 유엔에서 인권 분야 일을 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이 둘은 용감하고 뛰어난 자매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문화권인 파키스탄에서 여성으로 활동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서 인권활동을 한다고 해서 존중해 주는 분위기는 아니었지요. 특히 여성 인권운동은 더 힘들었어요. 이슬람 교리 안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 인권 신장은 더 어렵습니다. 여성 인권에 대한 탄압은 국가에 의한 것도 있지만 민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여성들이 반드시 획득해야 할 지위조차 부여해 주지 않았지요."
파키스탄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사를 지낸 질라니 특별보고관은 자
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법률가로 사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며, 나 자신을 던져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자신있게 살도록 훈련을 받았습니다. 교육이나 가족의 영향을 받은 덕분에 여성으로서 전문직을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더 큰 힘을 발견할 줄 아는 혜안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이 인권운동에 더 큰 힘이 된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인권 침해가 많지만 인권운동이 왕성한 나라 출신이라는 점이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활동을 통해 배운 점은, 인권을 운동으로 승화시켜 인권이라는 의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거지요. 국가의 협조가 있든 없든 간에 인권이 중요 의제로 여겨지도록 힘쓰는 것은 인권 개선에 상당히 큰 역할을 합니다."
그는 또한 인권운동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여성 인권을 위한 투쟁은 실낱 같은 희망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지금 파키스탄 내 여성 인권은 법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운동 덕분에 여성의 인권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중도 자각하게 된 것이지요.
요즘은 파키스탄 내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가들조차 여성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이제 여성 운동은 공식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느냐가 아니라 바로 가장 큰 성공은 운동을 생성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중심은 여성
그런 그이기에 아시아 여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또한 각별했다. 그는 아시아는 언어, 종교, 민족 등이 다양하므로 그런 사회일수록 인권 의식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항상 소외되고 차별당하기 쉬운 아동, 소수자 집단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역시 '소외되고 차별받기 쉬운'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아시아 여성들은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하여 인권운동에서 점점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여성인권 활동가들은 남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국가에 의한 탄압과 사회적인 제약 등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특히 분쟁 상황에서 여성의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키고 대중의 지원과 지지, 관심을 끌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시민사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이 시급합니다."
끝으로 최근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한 그의 의견을 구해 보았다.
"한국에 국한해서 말하기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건대, 이 문제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안보 관련 법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개의 보안법은 법적인 절차도 무시하고 공정한 재판의 원칙도 무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지요.
인권의 보장보다는 안보에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인권의 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안보도 인권과 법치의 정신에서, 그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가장 척박한 땅에서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 부드럽지만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단단한 밧줄을 당기고 있는 인물. 히나 질라니에게서 인권의 보루와 같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성채를 기대해도 좋을 듯했다. 전세계 활동가들이 인권운동의 대모로 그를 대하고 기댈 만하다는 믿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