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늘 설렘을 덤으로 제공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곳, 새로운 것에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으로만 보던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나는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나섰다.
함께 간 후배는 절경을 눈앞에 두고 비가 온다고 하여 이미 입이 석 자는 나와 있다. 그런 후배의 표정에 내심 웃음이 난다. “이놈아 조금 있다 보자. 뭐라고 하는지…. 피식.” 비를 받아낸 마이산은 산안개에 쌓여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것에 순서를 매긴다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 있겠냐마는 ‘월랑팔경(진안사람들이 꼽는 이 고장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월랑은 백제시대 진안의 옛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의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바로 짙은 안개나 여름날 비구름에 가렸던 마이산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馬耳歸雲)이라고 하니 이번 여행은 기막히게 운이 좋은 것 아닌가?
마이산으로 오르는 길은 남부주차장과 북부주차장을 통하는 두 길이 있다. 남부주차장으로 향하면 이산묘와 금당사 등을 만나며 2km의 길을 통해 탑사와 은수사를 지나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에 이를 수 있다. 북부주차장을 통하면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암마이산과 수마이산에 이른 후 고갯길을 내려가 은수사와 탑사에 이를 수 있다.
북부주차장을 통해 한 칸 한 칸, 쉼없이 오르는 계단 길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지친다리를 추슬러야 오를 수 있다. 머리 위로 빤히 보이는 마이산이지만 그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기는 싫은 모양이다. 봉긋 솟은 두 봉우리의 마이산을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만만히 볼 산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백 미터가 넘는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니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마이산은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와 섞여 굳어진 퇴적암으로 이를 역암이라고 하며, 산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역암으로 이루어졌다. 지상은 물론 땅 속에도 수백 미터가 잠겨 있는데 다 합치면 1천5백미터에 이르고 생성 연대 또한 1억년을 헤아린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 고갯길에 서니 좌우로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우뚝 솟아 있다. 쳐다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봉우리에 오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겠다(사실 2004년 현재 마이산의 입산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수마이봉에 있는 화엄굴까지는 욕심을 내보았다.
수많은 돌계단이 보이고 높다란 곳에 화엄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화엄굴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으며, 약수물 또한 넉넉하다. 이곳에서 보는 암마이봉은 수시로 산안개 뒤로 숨었다 보였다를 반복하며 신비로움을 준다.
화엄굴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가르는 가운데 고개에서 수마이봉을 100m쯤 올라가면 중턱에 있다. 여기에는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약수로 알려져 있다.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는 수마이봉의 정기를 가진 물을 마셔서라도 아들을 얻고 싶은 옛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이야기인 듯하다.
두 봉우리 사이 고개에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탑사 전에 절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은수사다. 겨울 은수사와 탑사에서는 진기한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일명 ‘역고드름’이라는 것이다.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거꾸로 얼음기둥이 하늘로 솟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겨울철 마이산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볼거리가 되고 있다.
비 오는 마이산의 또 다른 절경은 수백 미터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빗물폭포이다. 빗물은 세기와 양에 따라 마이산의 생김대로 산을 보듬고 쓰다듬으며 아래로 흘러내린다. 폭포의 물줄기가 시원치 않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지 못한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없다. 산 정상에서 아래까지 단숨에 곤두박질한 그 폭포는 하늘의 기운이 곧바로 나에게 전달되는 흔치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다.
마이산을 자세히 보면 밀가루 반죽에서 수제비를 떠내듯 중간 중간 파여진 흔적이 있다. 이것이 타포니(taffoni)로 자갈사이를 메우고 있던 물질이 빨리 풍화되어 자갈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구멍이다. 마이산의 타포니는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편에 들어 희귀한 볼거리가 된다. 그래도 나는 마이산에 사는 산신령이 분명 수제비를 끓여 먹었을 거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걸 보니 서서히 마이산에 미쳐 가는가 보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두 봉우리가 마이산의 첫 인상이라면 탑사는 마이산의 숨겨둔 결정타로 관람객을 녹다운 시킨다. 은수사를 거쳐 내림길로 맞이하는 탑사는 마이산 골짜기에 푹 안겨있다. 특히나 탑사에 있는 80여개의 돌탑은 돌탑 하나하나가 모두 마이산이 된다. 대웅전은 마이산의 아늑한 품안에 들어서 있으며 대웅전 뒤로 보이는 수마이봉은 산안개로 그 모습을 더욱 신비롭게 하며 듬직하게 자리한다.
탑사에 있는 돌탑은 원래 108개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그 수가 줄어 80여개가 남아있다. 불과 수십 센티미터에서 십여 미터가 넘는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다른 절의 탑과 달리 형식과 모양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핏 돌을 쌓아올린 단순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탑의 모양은 돌을 모아 원뿔형을 만들고 탑의 상륜부를 올리듯이 한 줄로 쌓은 원뿔형 탑과 처음부터 한 줄로 쌓아올린 외줄형 탑으로 나눌 수 있다. 탑사에서 규모가 큰 탑은 대개 원뿔형 탑이다.
원뿔형 탑이건 외줄형 탑이건 사람의 손으로만 쌓은 돌탑이 100여 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한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또한 10미터가 넘는 탑들을 어떻게 쌓아올렸는지도 놀라울 뿐이다. 이렇듯 놀라움과 신비함을 가진 탑사는 그 모습 또한 나에게 깊은 감흥을 준다. 울룩불룩 솟은 탑들과 왼쪽으로 높이 솟은 마이산을 보면서 감탄을 하지 않으면 그 얼마나 무감한 사람이겠는가.
탑사를 둘러보라고 잠시 주춤했던 비는 대웅전에 이르자 다시 세찬 빗줄기를 뿌린다. 탑사를 세우고 탑을 만든 이갑룡(본명은 경의) 처사의 배려는 아닐지 다소 지나친 생각을 하며 대웅전에 올랐다. 대웅전 뒤는 탑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일월탑을 세웠다. 음양의 기운이 탑사를 감싸고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이치를 세운 것은 아닐까?
빗속을 헤치고 마이산과 돌탑들이 굳건히 서 있듯, 세상 인정과 운치가 말라가는 요즘에도 굴하지 않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고 있다. 세상 또한 그렇게 쉽사리 살아가는 맛을 잃지는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