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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대 강연에 나선 윤도현씨.
28일 서울대 강연에 나선 윤도현씨. ⓒ 이민주
"자기 길에 확신을 가져라. 가장 듣기 싫은 얘기가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다. 이런 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을 짓밟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다 보면 맛이 가는 거다. 우리 동네에서는 서울대 들어가면 온 동네에 '현수막'이 걸린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을 그 확신,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자유로움을 줄 것이다."

'윤도현밴드'(이하 윤밴)의 보컬 윤도현(32)씨가 28일 서울대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에 나섰다. 마지막을 위와 같이 밝힌 윤씨는 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진행된 특별강연은 '방송원론'(강남준 교수) 수업의 일환. 450여명이 수용 가능한 이날 문화관에는 계단까지 꽉 차 500여명의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음악 아닌 주제로 대학 강단에 처음 선다는 윤씨는 강연 내내 유머가 섞인 말로 학생들에게 환호성을 자아냈다. 특히 자신의 사인 밑에 늘 적는다는 "자유롭게 열심히"라는 좌우명을 소개하며 데뷔 초 어려웠던 때, '방위병 시절', 월드컵 이야기 등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강연을 펼쳤다.

"내 인생의 좌우명은 '자유롭게 열심히'"

많은 환호와 함께 문화관에 등장한 윤씨는 자신이 준비한 A4용지 두 장을 들어 보이며 "음악 하면서 살던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 나름대로 준비했다"며 "오늘 강의의 주제는 '자유롭게 열심히'"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이 두 단어를 좌우명을 삼은 까닭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월드 피스 뮤직 어워드'가 있었다. 우리에게 상을 준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하던 대로 하자'며 별 준비 없이 갔다. 그 때 영어 멘트 없이 자국어로 노래부르고 말한 밴드는 우리밖에 없었다. 당연히 호응도 좋지 않았고 공연을 망쳤다. 자유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무대에서 음악을 가지고 놀아야 하는데 음악에 쫓아다니면서 객석 눈치만 보면서 불안하면 자유를 못 느낀다."

반면 얼마 전 유럽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영국에 갔는데 거기서 만난 친구와 40일 중 30일을 연습만 했다. 돌아오기 하루 전 작은 클럽에서 무대에 섰는데 너무 행복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자유를 찾았다."

이어 윤씨는 데뷔 초 '록음악'을 하면서 어려웠던 얘기들을 들려줬다. 95년 솔로로 데뷔한 윤씨는 이전에 돈을 벌기 위해 통기타 가수를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진 채 '시끄러운 록음악'을 가지고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다.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런 음악을 하면 손님들 체한다.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을 해야된다"고 말했다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음악을 들고 통기타 가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데뷔 후 첫 방송무대는 '가요 톱 10'. 요즘 상황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립싱크 댄싱가요팀들이 많았다고 한다. 윤씨는 "대기실에서 목을 풀려고 했더니 다른 팀들은 몸을 풀었다"며 즉석에서 웨이브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또 "첫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린 관중들이 잡담을 해 '거 좀 박수 좀 쳐요'라고 말한 뒤 가사를 잊어버려 얼버무려야 했다"고 소개했다.

28일 윤도현씨의 서울대 강연에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했다.
28일 윤도현씨의 서울대 강연에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했다. ⓒ 이민주
윤씨는 항상 자신의 밴드를 강조한다. 자신은 솔로로 2년간 활동 뒤 조직한 '윤도현 밴드'의 일원이기 때문. 하지만 사람들은 밴드를 늘 윤도현을 뒷받침해주는 '악단'으로만 본다. 이는 윤씨 자신에게나 밴드 구성원들에게 모두 상처라고. 활동 초기에는 그를 '윤도현', '윤도현과 그의 밴드' 등이라고 소개했다. 심지어 관중석에서 "밴드는 빼고 합시다"란 말이 튀어나와 기타리스트가 공연 내내 관중을 등졌던 일도 생겼다. 또 한 학교에서는 기타 소리가 안 나 공연 중에 직접 납땜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윤밴의 존재 이유를 떠올렸다. '무식한 사람이 용기 있다'고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도 용감했던 것이 견딜 수 힘을 줬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록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록음악 하면 가죽잠바, 쇠사슬, 고음의 노래, 강렬한 눈빛 등을 떠올리는데 왜 그래야만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머리가 단정하면 위법인가? 그런 고민이 윤밴을 이끌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각자 얼마나 유별난지 자기 고집 굽히는 것을 자기 목숨 버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밴드 멤버였지만 서로를 배려했던 것이 컸다."

올해 데뷔 10년째인 윤씨. 용기와 고정관념을 깨려는 고민, 배려는 그가 속한 윤밴의 지탱하는 힘이었다.

"윤밴, 용기·록 고정관념 깨려는 고민 그리고 배려로 지탱"

이밖에 윤씨는 자신은 최근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상기시키며 '방위'로 국방의 의무를 다 했다고 강조(?)했다.

"데뷔 당시 난 방위였다. 요새 병역비리 문제로 연예계가 들썩하는데 돈이 많아서 방위가 된 게 아니라 몸이 안 좋아서 방위가 됐다. 턱에 습관성 탈구가 있다. 노래할 때 입을 크게 벌리다가 턱이 빠진 적도 있다. 사실 신검 받을 때 내 앞에 친구는 무릎수술에 치질이었는데도 3급으로 현역을 갔다. '턱 이상한 사람 손들라'고 해서 손들었다가 4급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게 방위 요인인지는 몰랐다. 국방의 의무는 충실히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각종 음료수와 과자 파는 매점 주인이었다.(웃음) 부대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타 가져다 놓고 신청곡도 받아 노래하는 방위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월드컵 때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월드컵은 내게 참 좋았다. '오! 필승 코리아'로 '월드컵 가수', 더 부담스러운 '국민가수'라고 칭함을 받았다. 어떤 이는 월드컵 때문에 갑자기 스타가 됐다고 한다. 나도 동의하지만 음악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공연도 무지막지하게 하고 계속 준비를 했다. 정치권에서 접촉도 많았다. 여기서 다시 밝히지만 난 정치 안 한다. 할 위인도 못된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 '성공에는 복수가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했다. 보도를 통해 나가는 내 모습은 진짜모습이 아닌 것이 많았다."

행사가 끝난 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윤도현씨.
행사가 끝난 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윤도현씨.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매점 주인' 방위로 국방 의무 다 했다"

강의의 피날레를 미니 공연으로 마친 윤씨는 강의 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강의 준비를 나름대로 했기 때문에 자유를 느꼈다"고 '자유롭게 열심히'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강의를 마련한 강남준(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윤씨가 교수보다 인기가 좋은 것 같아 회의를 느낀다"고 농담을 건넨 뒤 "윤씨가 진솔한 얘기를 들려줘 고맙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권재범(23·언론정보학과)씨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열심히 강의를 준비한 것 같아 감동했다"고 밝혔고 심병석(20)씨는 "힘들 때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려줬고 마지막 노래를 불러줘서 진실함을 더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영원을 창조하는 길"
깜짝 게스트 김제동씨

▲ 윤씨의 서울대 강연에는 김제동씨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했다.
ⓒ이민주
이날 강연에는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다. 바로 단짝인 개그맨 김제동(30)씨. 김씨는 윤씨의 강연 중간, 20여분 동안 개그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선보였다. '의미 있는 농담'을 보여준 것. 물론 학생들은 30초 간격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선보인 김제동 어록 2개를 소개한다.

1.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영원을 창조하는 길"

"여러분 폰카로 저 찍는 거 괜찮다. 인터넷에는 자장면 먹는 것 등 하나하나 다 뜬다. 21세기 가장 큰 적은 박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오면 한 손으로 흔들리지 않게 폰카메라로 찍어야 하니까. 록밴드가 나와도 "와!" 환호성만 지를 뿐 뛰지 않는다. 찍어야 하니까. 과연 이게 옳은 방향인가. 여러분들 덕분에 내가 여기 나왔고 TV에도 나왔는데 언제 어떻게 찍든 관계없다. 죽으면 이 몸은 미생물들이 가지고 가는데. 끝나고 각도별로 찍게 해주겠다. 순간 몰입하는 것이 영원을 창조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열중하고 땀흘렸던 때로 돌아가자는 게 내 생각이다. 재미있게 놀았으면 한다."

2. 소주 예찬론

"내가 문을 열지 않으면 빛을 볼 수 없는 곳에서 단 한치의 미동도 없이 날 기다린다. 인간이 간사해서 그 친구의 머리를 말없이 딴다. 그것도 비틀어서, 심지어 이빨로 따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온 몸을 내준다. 나를 위해 몸으로 들어간다. 이쪽 혈관 들어가 외로움도, 저쪽에서는 고통도… 보고싶은 사람 있으면 스쳐지나가게 하고… 인간이 더 간사해서 괴롭다고 나오라고 하기까지 한다. 그럴 땐 말없이 나온다. 몸에 있는 나쁜 것 가지고 나온다. 마지막 가실 때 몸 기증한다. 슈퍼에 가지고 가면 돈을 준다. 소주만큼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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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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