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흰 꽁지머리의 장애인으로 이동권투쟁의 상징적 인물. 그가 여의도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언론에 노출이 되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꽁지머리를 한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정도다. 아이들은 "아저씨 이름이 '이동권'이야?"라고 물을 정도로 그는 이동권 투쟁의 중심인물이다.
그가 저무는 가을 칼바람을 맞으며 여의도에서 '이동보장법률 제정과 장애인 교육예산 확보'를 요구하며 지난 26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번 농성은 지난 2002년 발산역 장애인 추락사고에 대해 서울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9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이후, 두 번째로 하는 것이다.
2002년 국가인권위 39일 단식 이후, 두 번째 단식
성인 장애인의 학교인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을 맡고 있고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공동대표, 정립회관민주화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 장애인 인권과 관련한 수많은 단체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이번 단식농성을 우려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단식농성을 감행했다.
현재 그의 건강상태는 최악의 조건이다. 무엇보다 엉덩이뼈 부근의 깊은 욕창은 심각할 정도로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에만 전념해야 할 상황. 의료진은 더 심해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경석 공동대표가 여의도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성 4일, 단식농성 3일째 되는 28일 여의도 농성장에서 힘겹게 몸을 유지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박 공동대표는 늦가을 내리 쬐는 햇볕 아래서 농성장 서명대 앞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천막 안에서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리를 지키는 것은 농성이 단지 천막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 농성을 하고 있는 절박함을 전하기 위해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친 몸으로 힘들게 단식농성을 진행하는 박 대표에게 단식농성과 관련한 내용을 들어보았다.
- 건강이 많이 안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단식농성까지 감행해야만 하는가?
"지난 3년간 싸움을 통해 장애계의 이동보장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되었지만 정부도 편의증진법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두 법안은 큰 차이가 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건교부의 안은 여전히 배려의 차원으로 기존의 법안들과 차이가 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러한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기만적인 행위를 알려내기 위한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다. 최선을 다해 싸우고 후회 없이 싸우다 힘이 없으면 또 다시 준비해서 싸우겠다."
- 이동보장법률은 정부안뿐만 아니라 장애계의 안도 올라가 있는데 더 기다릴 수는 없는가?
"더 기다리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건설교통부의 안은 정부안이다. 현재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상태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사립학교법과 같이 다른 법안을 보더라도 타협점을 찾을 텐데 이동보장법률은 그럴 사안이 아니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정부는 건설교통부의 안을 수정해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선전을 할 것이다. 뉴스를 본 국민들은 마치 정부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해결해 준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싸움은 더 힘들어진다. 지난 3년간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 이번 이동보장법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다. 현재 정부의 정책이나 예산이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는 상태에서 저상버스 도입에 대한 명문화된 강제적 법규정이 없이 지자체가 저상버스 도입을 실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해도 10년 정도 지나야 50% 이상 도입되는데 정부안처럼 권고사항으로 할 경우에는 저상버스 도입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인을 포함한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하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구체적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리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어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담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이동보장법률도 장애인들의 요구사항을 담아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단식농성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이동보장법률뿐만 아니라 장애인 교육권을 함께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애인에게 있어서 교육권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사회진출도 가능하고 일상적인 생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런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7월 장애인의 부모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들어가 20여일 넘도록 단식농성을 벌였고 당시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농성장을 방문하고 급기야 교육인적자원부와 7개항의 합의까지 했다. 그러나 현재 결과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장애인 교육권과 관련해 기획예산처에 신청한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고 각 교육청도 2005년 예산에 합의사항의 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강제조항, 의무조항이 없고 재정적 뒷받침이 없는 것은 장애인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장애인들과 국민들이 이러한 정부의 술책에 놀아난다는 것이다."
- 단식농성 후 국회나 정부측과 대화는 있는가?
"아직은 없다. 국회가 지금 우리의 문제보다도 4대 개혁입법 등 다른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아닌 것 같고, 언론도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 건강이 상당히 안 좋다고 들었는데 어떤 상태인가?
"가장 힘든 부분은 엉덩이뼈 부근에 깊이 생긴 욕창이다. 예전에 수술을 한 부분이 다시 문제가 돼서 의사는 욕창 부분이 눌리지 않도록 누워서 가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입장이 아니다. 매일 간단하게 소독과 연고를 바르는 정도의 치료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욕창 부위가 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단식 농성을 알려야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누워 있을 수 있는가?"
- 앞으로 어떤 일정들이 진행되는가?
"지금 전국을 돌며 저상버스 도입을 알리는 저상버스 전국 순회 투쟁단이 11월 2일 농성장으로 들어온다. 이날 대규모 문화제를 갖게 되고 11월 12일에 집중집회도 계획되어 있다. 11월 24일에는 버스타기 행사와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규모 집회를 통해 이동보장법률과 장애인 교육권 예산 확보를 위해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