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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니 꼬박 1년이 지난 셈이다. 주물로 부은 듯 고만고만한 모양으로 하루를 보내던 나는 저녁을 먹다 말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금방 느그 아부지 뉴스에 나와서 대한민국 사람이 다 아는데, 니가 뭔 일이 났는지 모른다 카나?”

타지에 사는 막내가 신경 쓰지 않도록 부모님이 그 일(?)에 대해 연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연인즉슨, 이랬다.

점심을 먹고 쉬고 있던 아버지는 이웃 어른의 고함소리에 밖으로 나갔다. 동네에서 제일 윗집인 우리집은 뒤로 과수원을 업고 앞으로 농로를 끼고 있어 들이나 산으로 오가는 길목 역할을 했다. 그 어른 역시 경운기를 몰고 지나는 길이었다.

외진 산골에 무슨 난리인가 싶은 마음에 사립 밖에 나선 아버지는 코앞에서 날뛰는 멧돼지를 보고 움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유독 가뭄이 심했던지라 짐승들이 인가 가까이 내려오는 일이 잦긴 했지만 경운기에까지 덤비는 멧돼지라니!

정작 문제가 생기기까지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를 발견한 멧돼지는 몇 번 땅을 차는가 싶더니 와락 달겨들었던 것이다. 대뜸 다리를 물고 머리를 흔드는데, 웬만한 중돼지의 턱 힘이 늙은 촌로를 좌우로 내동댕이친 꼴이 되었다.

이웃 어른도 아버지도 모두 일흔이 가까운 몸이라 꼼짝없이 당할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일을 벌인 돼지는 다시 과수원 쪽으로 사라졌다. 뒤에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다시 보았을 때,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경남 거창의 한 농가에 멧돼지가 출현해 농부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한 야생동물 보호단체 관련자의 설명이 뒤따랐다. "사람이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멧돼지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굳이 환경문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한 마디로 괭이질조차 버거운 촌로는 졸지에 야생동물에 흑심을 품었던 자가 돼 버렸다.

평생 산과 들에서 살아온 분답게 아버지는 그 멧돼지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다. 심한 가뭄에 배를 곯은 짐승이 어디서 독버섯을 삼키고는 부대끼는 몸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마을에 이르렀고, 사람을 만나자 눈이 뒤집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가히 아버지의 해석대로 다음날 멧돼지는 과수원 외진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다리의 살점을 얼기설기 꿰매고 머리며 몸이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를 보기 위해 모여든 형제들과 친지들은 병실 구석에 앉아 성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성은 멧돼지를 향한 것도 뉴스 내용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뜬금없이 불똥은 면소재지 파출소로 튀었다. 그날과 다음날의 정황을 들어 보면, 아버지의 젊음과 맞바꾸며 살아온 자식들로서는 참을 수 없을 만한 것이었다.

피가 흥건하게 배어 몸을 일으킬 수가 없어 바닥에 쓰러진 채 아버지는 휴대전화로 파출소에 연락했다. 다른 사람을 더 다치게 하기 전에 멧돼지를 처리해 달라고 연통을 넣었던 것이다. 그 몇 마디를 하려고 통증을 삼킨 것이 무색하게 상대방의 대답은 준비된 듯 싸늘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은데 멧돼지까지 처치하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 더 실랑이할 기운도 없는 터라 아버지는 다시 119에 전화를 걸었고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그렇게 바쁜 순경님들이 다음날 죽은 멧돼지 앞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아침에 과수원을 둘러보던 형수는 잠든 멧돼지를 발견하고는 놀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내 죽은 것임을 알았고 파출소에 신고했고 그들은 10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야생동물이 죽었으니 그 원인을 살펴야 한다며 부산을 떨었고 급기야 사인을 밝히려 부검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까닭에 멧돼지는 운구 차량이 올 때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그들은 한 번의 이탈도 없이 죽은 멧돼지를 보위하며 지키기까지 했다. 산에서 좋은 약초는 다 먹고 자랐으니 오죽 탐이 났을까. 배를 열면 웅담에 버금간다는 쓸개도 고스란히 있을 터, 누가 훔쳐갈까 보초를 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결국 친지들의 모의는 아버지의 만류로 미수에 그쳤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은 나몰라라 뒷짐지고 넘기고 죽은 멧돼지를 지키는 의무는 철벽같이 수행한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제법 시끄럽게 항의할 작정은, 괜히 낯뜨겁게 하지 말라는, 당하고 다치더라도 그저 좋은 게 미덕이라 믿으며 산 촌로의 손사래에 몇 마디 욕설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굳이 오지랖을 넓혀 보자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시 인가에 발을 들인 멧돼지를 처치해야 한다는 의무가 어디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을 테고, 야생동물이 인가 근처에서 죽은 것은 그 보호법에 미루어 분명 위법성이 의심되는 바이니 말이다. 온갖 위반자들이 넘치는 판에 한가하게 수갑도 채울 수 없는 멧돼지 한 마리를 처치하러 다닐 수 있으랴.

다행히 멧돼지의 이빨이 물렁뼈와 힘줄을 비껴가 아버지는 한 달 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전보다 더 힘이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집이 대대로 일궈오던 솔밭 밑 논 너 마지기는 해마다 멧돼지가 내려와 헤집어놓고 간다. 그 연세에 일 욕심을 놓지 않던 아버지가 올해부턴 그 논을 묵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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