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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낙동강 상류의 방류로 하류 지역이 물에 잠겼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비가 오면 우산 장수가, 햇볕이 나면 빙수 장수가 재미를 본다. 그리고 태풍과 홍수의 피해가 커질수록, 건교부는 신이 난다. 홍수대책 미흡을 지적하는 여론은 잠깐이지만, 엄청난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교부는 지난 2002년 태풍 루사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 복구를 위해 각각 9조원과 7조원의 긴급 예산을 집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천별로 치수계획을 세우도록 법을 개정해, 제한 없이 건설사업을 벌이게 됐다.

'한국은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허구로 댐의 필요를 강변하다, '어디에 얼마나 물이 부족하냐?'는 질문으로 말문이 막혔던 건교부로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난 셈이다.

드디어 건교부는 ‘낙동강 치수계획’을 마련해, 곧 세상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계획은 낙동강 유역에만 2016년까지 16조 4886억원, 매년 1조 2683억원을 집행하겠다고 한다. 2003년 낙동강 치수사업 예산 3287억원의 4배, 2002년 2509억원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어디에 돈을 쓰나 봤더니, 서울과 부산을 140번이나 왕복할 수 있는 1만382km의 제방을 건설하고, 다목적댐 건설 4곳, 기존 댐 재개발 4곳, 홍수 조절지 1곳 등 이름을 달리하는 댐 9개를 세우는 게 골격이다. 게다가 낙동강 중류인 함안에서 마산만까지 폭 200m 길이 34.5km의 인공 수로를 만들어 홍수를 돌리는 계획도 있다.

특히 이 인공 수로(방수로)는 무려 12km를 산 밑으로 뚫어 터널로 지나도록 한, 세계에 없는 특이한 구조물이다. 그 외에도 하천굴착 341km, 펌프장 81개소, 사방댐 566개소 등 전체 비용의 95% 이상이 토목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낙동강 유역치수종합계획의 예산 계획

 총사업비

 164,886

 100%

 

 제방사업

 79,271

 48.1%

 1만382km(신, 증설)

 댐 건설

 27,997

 17%

 신규댐 4, 재개발 4, 홍수조절지 1

 방수로 건설

 30,400

 18.4%

 남강합류점-진동만 34.5km

 내수침수방지사업

 10,760

 6.5%

 제방, 펌프장 등

  사방댐

 1,000

 0.6%

 사방댐 566개 건설

 취약지구 방지사업

 4,309

 2.6%

 제방 및 펌프장 81개 건설

하구둑 배수문  

 1,500

 0.9%

 낙동강 하구 생태계 교란 우려

지방하천정비계획

 1,634

 1.0%

 하천굴착 341km

 천변저류

 7,670

 4.7%

 20개 지역, 홍수조절 5500만톤

 기타

 345

 0.2%

 홍수지도 제작 등

ⓒ (단위 : 억원)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계획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두꺼운 보고서를 찾아보니, 홍수 원인 진단이 참으로 기이하다. 우선 집중호우와 태풍이 원인이고, 국가의 치수부문 투자와 인력이 미흡하며, 지자체의 하천 개수 인식과 투자가 부족하고, 시민들의 인식이 모자란 탓이란다.

홍수 대책을 세우는 건교부의 책임은 하나도 없고, 남들의 잘못이며, 건교부에 인력과 예산을 몰아주면 대부분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홍수 원인 분석을 ‘건교부를 확대하자’는 정치적 주장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홍수 대책이란 건교부가 주도할 수 있는 대규모 토목공사들로만 채워져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수백조의 예산을 들여 댐을 짓고 제방을 막았는데도, 홍수피해액은 70년대(74년-83년) 1700억원/년, 80년대(84년-93년) 5400억원/년, 90년대(94년-03년) 1조 7100억원/년으로 늘어나고 있다.

낙동강에도 5개의 다목적댐과 낙동강 하구둑을 비롯해, 1만km가 넘는 제방을 쌓았지만 홍수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다. 댐과 제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했고, 관행적인 하천 개발에 충실했던 낙동강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낙동강은 하구둑으로부터 115km가 떨어진 현풍이 표고 8m에 불과할 정도로, 중하류의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자연 상태에서 낙동강 주변의 넓은 면적은 물에 잠기는 범람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개발의 열풍 속에서, 낙동강변 습지의 90% 이상은 제방으로 보호된 농경지와 택지로 바뀌었다. 같은 양의 물이 1/10도 안 되는 수로로 흐르게 되고, 물길이 높아졌으니 주변 지역들은 강력한 펌프를 돌려서야 홍수를 피하게 되었다.

▲ 중하류의 홍수를 불러오는 직선화된 콘크리트 하천
ⓒ 염형철
또 하천정비사업을 한다며 낙동강 지류까지 콘크리트를 직선으로 발라 놨다. 그러니 홍수가 수로를 따라 순식간에 낙동강 본류에 몰려들어, 본류의 수위는 더 높아지게 됐다. 더구나 하구에 둑을 막아 홍수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도 막아버렸으니, 홍수는 거대한 괴물이 된 되었다.

하지만 건교부가 자랑하는 다목적댐의 홍수조절용량은 기껏해야 홍수기 유출량(499억톤)의 5% 수준인 24억톤에 불과하며, 운영의 묘술을 부린다 해도 10%를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건교부는 댐과 제방이 있으니 염려 말라며 수해 위험지역에 사람들을 불러모았지만, 결과적으로 홍수 피해만 키운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비만 오면 엄마의 무덤을 걱정하는 개구리처럼 하늘을 탓하는 처량한 신세다. 그런데도 건교부는 '낙동강치수계획'에서 댐과 제방이 부족하므로 더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낙동강 치수계획’은 '어느 지역에 어떻게 피해가 났는지'에 대한 분석과 그에 따른 대책이 없다. 수해의 원인을 낙동강 유역에 내린 추상적인 빗물 양의 증가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에, 더 늘어난 홍수량을 어떻게 분담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건설 회사가 계산한 홍수량에 집중한 나머지, 피해를 입은 지역의 특성이나 약점은 외면한다. 그래서 댐이나 제방이 피해 지역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는 상관 않고, 홍수량에 해당하는 몇 개의 댐과 몇 미터의 제방을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로 일관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더 강력하고 거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속한 환경연합은 이미 5개월 전부터 공문을 보내, 부실한 계획을 수정하고 개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건교부는 공식 답변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반년 전에 만든 허술한 계획을 단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있다. 11월 1일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비판 속에서 중앙하천관리위원회를 열었고, 소위원회를 통해 이 달 내로 확정 발표할 태세다.

▲ 11월 1일 정부청사 앞에서 낙동강치수계획 반대를 외치는 환경연합 회원들
ⓒ 환경운동연합
건교부의 독단적 행태 때문에, 이제 건교부와 지역주민 그리고 환경단체들은 계획의 집행 현장에서 맞부딪치게 됐다. 안타깝게도 격렬한 투쟁은 영산강과 삽교천, 그리고 한강과 금강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소위 21세기에, 건교부는 '국가도 시장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업들'을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며, 또 평가하는 낙후된 행정체계 속에서, 건교부는 누구로부터도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다.

이미 건교부 수자원국은 스스로 자정하고, 개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이번 사례는 개발과 건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 개발부서에 대한 개편이 서둘러져야 하는 근거를 적절히 보여주고 있다. 중앙 정부에 건설부를 두고 수자원을 개발하는 특이한 행정체계는, 이제 상식에 맞게 개혁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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