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광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망자들의 위령제가 열린다.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는 이호준(37)씨는 가수였던 선배가 노숙 생활 중에 사망한 것이 이번 행사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부산역에서 1년 넘게 거리 공연을 펼치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다. 이호준씨는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자들과 1년을 함께 보내며 노숙자들이 다쳤을 때 약값을 대신 내거나 배고픈 사람을 위해 수제비를 만들기도 했다.
가끔 술 마신 노숙자들이 싸움을 벌일 대면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하며 싸움을 말렸고 아픈 사람이 생기면 말없이 병원비를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부산역 고속철도 착발역 공사 도중 노숙자가 안전사고를 당해 손목에 심한 열상을 입었을 때도 그가 직접 나서 사고 당한 노숙자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 받게 했다. 그렇게 그는 노숙자들의 친구가 되었고 부산역 노숙자들은 그에게 '거리의 천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노숙자들만 그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기 위해 부산역 광장을 찾는 사람도 있다. 노래를 듣고 박수를 치는 사람, 말없이 인사를 하는 사람 등, 그렇게 그는 부산역의 명물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울 때가 있다. 부산역의 미관을 해친다며 구청에서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고, 가끔은 그가 노래 부를 때 쓰는 물건이 사라지거나 부서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거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위령제를 위해 호준씨는 전국에 있는 거리 예술가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그 중 대구의 마임이스트 조성진씨와 행위예술가 김민정씨 등이 흔쾌히 공연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이번 위령제의 이름은 '거리에서 위령제'. 특정 대상을 정하지는 않고 집회 도중 사망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 그리고 거리에서 노숙하다 사망한 사람들이 추모 대상이다. 호준씨는 "이름도 없이 거리에서 사망한 사회적 약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번 위령제를 통해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상생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위령제 포스터를 보고 "우리 가족 중에도 그런 분이 있는데 참여할 수 있냐?"는 연락이 많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위령제 도중 고인들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거리에서 위령제'는 오는 15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부산역 광장에서 열리며 그 시작은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제사와 살풀이 다음에는 추모사 낭독과 풍물패의 공연이 펼쳐진다. 추모 공연으로 노동가요를 부르는 이호준씨와 양정헌씨의 무대와 함께 마임이스트 조성진씨의 특별 공연도 펼쳐진다.
재미있는 점은 위령제를 준비하면서 이호준씨가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벽보를 만들고 현수막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공연장비도 소탈하게 자신의 거리 공연에 사용하던 스피커와 조명을 사용한다.
이호준씨는 오늘도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위령제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부산역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며 노숙자들과 독거노인을 돕는 게 자신의 작은 꿈"이라며 "이번 위령제를 통해 거리에서 사망한 이름 모를 영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