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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백년을 기념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백년을 기념해 다시 주목받는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그동안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됐던 것으로 소설의 귀감이 되는 고전 중 하나이다. 작가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는 근대 소설임에도 오늘날까지 읽게 만드는 '문학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 작품을 읽을 만한 작품이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만드는 그 힘은 나쓰메 소세키의 펜으로 생명을 얻은 '고양이'가 만들어 낸다. 주인공이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인 고양이라고 해서 우습게 보면 큰 코 다친다. 구사미 선생의 집에서 동거를 하는 이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인간을 두고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은 제멋대로 행세한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게끔 되었다"고 평가하면서 위선과 자만,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향해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 "나, 고양이는 죽을 때 죽는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녀석이다.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하는 인간의 집에서 주식을 해결하지만 인간의 머리 위에서 인간사를 두루 살피며 글을 쓰는 고양이, 그 녀석이 바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명작으로 만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제를 형상화하는 과정은 한국 국어 교과서에서 자주 등장했던 '봉산탈춤'과 비슷하다. 사람들에게 양반의 허위의식을 폭로했던 '말뚝이'의 언어와 행동을 생각하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반'대신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이 풍자 대상으로 등장하고, '말뚝이'의 자리를 명석함과 동물적인 특성을 갖춘 '고양이'가 꿰차고 들어서 작품을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지난번에 친지인 아무개라는 학자가 찾아와서 어떤 견지로는, 모든 병은 조상의 죄악과 자기 죄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다. 얼마나 연구했는지 조리가 명석하고 질서가 정연한, 훌륭한 논리였다. 미안하지만 이 집주인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를 반박할 만한 두뇌도 학문도 없다. 그러나 자신이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터라, 어떻게든지 변명해서 자기 체면을 지키려는 생각인지, "자네 주장은 재미있긴 하지만, 저 토머스 칼라일도 위장이 약했다며, 마치 칼라일이 위장이 약했으니 자기 위장병도 명예라는 듯한 엉뚱한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메이테이도 이에 이르러 도저히 구제 불능이라고 단념한 듯, 전에 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주인은 오랜만에 메이테이를 골려주었다싶어서 사뭇 득의양양하다. 메이테이 편에서 보면 주인의 가치는 고집을 부린 만큼 하락한 것 같으나, 주인으로 말하면 고집을 부린 만큼 메이테이보다 훌륭해진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간혹 있다. 고집만 부리면 이긴 것 같은 기분인데, 본인의 인물로서의 시세는 훨씬 하락해버린다. 이상한 일은 고집쟁이 본인은 죽도록 자신의 면목을 세웠다는 양, 그때 이후로 남이 경멸하고 상대해주지 않는다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행복하다 하겠다. 이런 행복을 돼지 같은 행복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인간들 중에서 핵심적인 인간들은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지식인'들이다. 군자와 같은 태도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지식인들이라면 비판의 대상이 될 리가 만무한데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끼리끼리 잘난 체 하는 지식인들이다.

고집쟁이이자 허영심 가득한 주인집 선생은 물론이고, 자칭 미학자라고 주장하는 허풍선이에다가 거짓말쟁이 메이테이, 결혼하기 위해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그 주제로 잡은 것이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고 밝히는 물리학자 간게쓰 등은 고양이가 보기에 비판하기조차 아까운 '족속'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족속들이 작품 속에만 등장하지 않고 작품 밖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가 비판하는 족속들은 그 시대의 지식인들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 지식인들 사이에는 작가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비판의 정도는 끝이 없다.

작가 자신이 그것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에 의해서 비판받는 지식인들의 표상'은 이 작품에 긴 생명을 부여했다.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선생이나 메이테이, 간게쓰의 형상을 한 지식인들, 나아가 허영심 많은 인간들의 형상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풍자의식'으로 백 년 동안 사랑을 받으며 다시금 주목받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일본 문학 100년의 대표작이라는 자부심이 결코 과장된 평가로 보이지 않는 명작다운 '명작'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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