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정부’라고 하는 참여정부에 어제 위원회 하나가 새로 출범했다.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긴 이름의 위원회가 그것이다.
이 위원회는 명칭 그대로 일제하 징병, 징용, 정신대(구 일본군 위안부), 학병 등으로 끌려가 희생당한 분들의 피해실태 및 진상조사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9월6일 시행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됐다.
위원회에는 6명의 민간위원과 법무장관, 행자장관, 국무조정실장 등 3인이 당연직 정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6명의 민간위원 가운데는 변호사가 한 사람 포함돼 있다. 장완익(41,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필자가 장 변호사를 안 지는 7~8년 가량 됐다. 과거사 문제 관련 전문가 토론회나 관련법규 제정 논의 자리에서 만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후로 만남도 늘 그런 자리에서였다.
가깝게는 4~5년전 쯤 민간인 학살 범국민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우린 자주 만났었다. 김동춘 교수, 강정구 교수, 강창일 교수(현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주도가 돼 유족들과 함께 범국민위를 결성했는데 장 변호사와 나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했었다. 장 변호사는 관련법 제정에 법적 자문을 하고 법률 초안 작성을 맡았다.
흰 머리가 많아 초면에 보면 나이가 들어보이지만 올해 41세로 생각보다 젊다. 늘 조용조용한 성품에다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키우는 걸 여태 본 적이 없다. 더러 축조심의 하느라 밤늦게까지 법조문을 가지고 시름을 해도 한번도 짜증내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는 그런 성품의 사람이다.
장 변호사는 한 마디로 ‘과거사 전문 변호사’라고 할만하다.
그는 우리사회의 해묵은 과거사 관련 법 제정에 전부 관여해 왔다. 지난 16대 국회 당시 ‘4대 과거사법’으로 불린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일제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특별법, 6.25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특별법(국회서 통과 안됨) 제정 등에 참여해 왔으며, 여권에서 추진중인 ‘과거사 기본법’ 제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가 법률자문을 하며 몸담고 있는 단체도 이와 비슷하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민변 과거사청산위원장, 변협 인원위원회 위원 등.
또 맡고 있는 소송사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법원에서 진행중인 일제하 한국인 피해자들의 ‘대일소송’을 국내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인 징용자 6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부산법원에서 진행중인 사건을 맡고 있다. 또 일본정부 상대의 한센병 피해자들이 진행중인 사건의 한국측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세속적으로 표현하면 하나같이 ‘돈이 안되는’ 일과 자리를 맡고 있다. 93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10여년 째 이런 일을 맡아서 해오고 있다. 그는 “다른 변호사들이 하는 일반소송 업무를 잘 처리하는 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겸손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이야말로 전문성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오늘 오전에 전화를 걸어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을 축하하고 중책을 맡았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는 “어려운 일을 맡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겸손해 했다. 장 변호사야말로 이 일에 둘도 없는 최고 전문가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수 천 명이 넘는 변호사 가운데 장 변호사가 같은 ‘과거사 전문 변호사’가 전연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난 90년대에는 법조계 원로 지익표(79) 변호사가 ‘대일소송’을 맡아 활동한 적이 있으며, 또 최봉태(42, 대구서 변호사 개업) 변호사도 이 대열에서 ‘동지’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독재시절에는 ‘인권변호사’가 시민사회진영의 존경을 받았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봉사하는 변호사가 생겨나고 있다. 업계에 비해선 저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단체나 시민단체에 몸담아 법적 자문을 맡는 변호사도 생겨나고 있다.
흔히 변호사를 ‘면허증 가진 사기꾼’이라고도 비판하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을 자청하는 젊은 법조인이 등장한 점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길게는 100년전 식민지 시절, 짧게는 반세기 전의 6.25 동족상잔을 전후해 발생한 비극적 사건들로 인해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과거사 피해자들의 ‘법률 도우미’인 장 변호사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큰 성과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