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무악재에서 택시를 타고 달려온 지은이는 우리 집을 코앞에 두고 길을 잃어버렸다. 녀석이 한참을 헤맨 뒤에 볼이 빨개져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금방 씻고 나온 나는 물을 뚝뚝 흘리며 문을 열어 주었다.
가을이라기보다는 겨울에 가까워진 차가운 날씨, 우리의 늦가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의정부에서부터 새벽 여명을 헤치고 달려온 을근이 차를 타고 커피 한 잔씩 나누고는 강변북로를 달렸다.
하얗게 밝아오는 서울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63빌딩 금빛 유리창에 비치는 가을 하늘도 아름다웠고, 전날 내린 비로 한결 깨끗해진 한강도 더없이 개운하게 흐르고 있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트럭 가득 짐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 기사 아저씨들과 혹은 단풍 구경을 가겠다고 관광 버스에 몸을 실은 행락객들과 우리는 나란히 달렸다. 목적도 다르고,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도 달랐지만, 그날 아침은, 스모그에다 대기 가스로 더럽고 답답하던 서울 하늘도 축복처럼 따사롭게 길 위의 우리들 모두를 품어 주고 있었다.
오후가 되기 전에 도착해 산행을 끝내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괜스레 마음이 바빴다. 뭐, 바쁘거나 말거나 새벽잠을 설친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정신없이 곯아떨어져 빈축을 샀지만 말이다. 운전하는 벗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큰소리는 땅땅 쳤지만, 미안한 일이긴 했지. 휴게소에 두 번 서고, 간단한 아침을 먹은 다음, 출발한 지 5시간이 조금 못 돼서 선암사에 도착했다.
선암사는 올 때마다 마음이 새롭다. 처음 갔을 때는 정갈한 짜임새와 시원한 눈맛 때문에 볼일 보는 시간이 즐거웠던 뒷간만 마음에 담아 왔는데, <지허 스님의 차>(김영사)를 읽은 뒤에는 스님들이 손수 가꾸신다는 자생 녹차밭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 영화 <동승>을 본 뒤에는 달마전에 있는 돌우물에만 한사코 눈이 갔다. 그러다 4번째에야 ‘선암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써서 만든 심검당의 문이 보이고, 치열한 수행 덕에 말간 얼굴로 사람들을 맞고 계신 스님들의 눈빛이 보이고,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흥도 보이고, 무엇보다 선암사를 품고 있는 넉넉한 조계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제야 나도 누군가에게 “나, 선암사를 보고 왔어” 하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려올 때부터 묵어 가리라 마음먹었던 목련나무집에 짐부터 풀었다.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집인데, 간판도 없이 그냥 ‘민박’이라고만 써 놓은 집이다. 누군가는 이 집을 두고 ‘선암사를 꼭 닮은 민박집’이라고도 했었지. 주인 할머니 인심이 유난해서 오히려 묵어 가는 손님이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마는 그런 집이다.
휴게소에서 먹은 밥이 소화가 덜 되기도 했고, 굴목이재 넘어가다가 보리밥집에서 밥 먹을 요량으로 그냥 가려고 하는데, 민박집 할머니는 밥을 안 먹고 가면 어쩌냐고, 금방 차려 줄 텡께 한 술이라도 뜨고 가라고 성화셨다. 씻는 곳도, 화장실도 불편한 민박집이었지만 그런 맛에 이 집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듯싶었다.
선암사 들어가는 길은 단풍 축제 때문에 소란하고 정신이 없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로 전국 모든 곳이 축제 터가 되어 버린 것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역을 지키고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겐 그런 축제도 작은 희망이 되어 준다 하니 뜨내기 구경꾼이 뭐라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축제 덕분에 향나무 염주를 내 손으로 만들어 팔목에 하나 감아 올 수 있었으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긴 했다.
스피커에서 빵빵 울려 대는 소음을 피해 얼른 선암사로 들어섰다. 붕괴 위험이 있다던 승선교는 말끔하게 새로 단장해 놓았는데, 돌마다 세월이 새겨 놓은 이끼며 풀뿌리들이 사라져 맛이 좀 떨어지더라. 그래도 어여쁜 무지개다리의 맛은 잃지 않아, 사람들은 그 앞에서 한껏 자세를 잡고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승선교를 지나 강선루를 지나니 운수암 스님들이 손수 만든 매실장아찌며 청국장을 팔고 계셨다. 여성잡지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지금은 무크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지은이는 유난히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야, 이거 진짜 맛있겠다. 그지?” 억지로 동의를 구하고는 사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을근이는 4시간 넘는 산행 내내 장아찌와 청국장을 배낭에 넣어 지고 다녀야 했다. 나중에는 춥다고 껴입고 간 우리 겉옷까지 산행하면서 다 벗어 그 배낭에 넣었는데도 착하기 짝이 없는 을근이 녀석은 군소리 한 번 없이 씩씩하게 걸었다.
렌즈 두 개를 넣어 가는 바람에 평소보다 두 배쯤 무거워진 카메라 가방을 메고 끙끙대는 나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그것까지 들겠다고 나서는 통에 말리느라 힘들었다. 학교에서도 그러고 있을 테니, 학교 사람들이 녀석을 좋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싶다.
선암사에서 영혼까지 정갈하게 해 줄 것 같은 맑은 물도 한 바가지씩 마셨고, 지은이는 대웅전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도 올렸고, 나는 해우소에서 볼일도 봤으니 이제 이번 여행의 참 목적지인 조계산에 들어갈 시간이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햇살도 적당히 따사롭고, 오가는 이들도 많지 않았으니, 산길 걷기에는 최적의 날이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옛길은 6.8km. 느적느적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한 길이다. 선암굴목이재를 넘어가기까지 오르막길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그 구간만 빼면 이리저리 해찰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에 적당한 길이다.
4월 중순에서 5월 사이가 가장 아름답다고 정평이 나 있는 곳이지만 노랗고 빨갛게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는 나무들과 벗하며 걷는 11월의 조계산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가다 서고, 섰다가는 앉고, 앉았다가는 또 푹신한 낙엽 더미에 등을 묻어 버리는 통에 우리의 산행은 더디면서도 아기자기 했다.
포근하고 사각거리는 낙엽길에 누워 바라본 가을 하늘, 그 하늘을 배경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그냥 이대로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 그러고 나뭇잎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걷기 힘들어서 그러는 거지, 너?” 하고 핀잔을 준다. 아니 뭐, 절대로 힘들어서 그러고 있었던 것만은 아닌데, 쩝.
우리가 걸어서 넘은 조계산 굴목이재는 바야흐로 가을 냄새가 완연했다. 좁은 길에 수북히 떨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걷는 동안 바람은 내내 사락사락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 걷는 오솔길 한켠 숲에서는 대여섯 마리의 꿩 가족도 만날 수 있었고, 낯선 손들을 경계하는 산새들 소리에 귀도 즐거웠다. 2시간 남짓 그렇게 눈과 귀가 호사를 하다 보니, 뱃속이 저 혼자 꼬르륵거리며 요동을 친다.
이쯤 되면 보리밥집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송광사 쪽에서 넘어오던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막걸리 한 잔에 적당히 불콰해진 얼굴로 우리를 비껴 지나간다. 보리밥집을 물었더니, 아저씨 대뜸 한다는 말씀, “바로 요 앞인데, 가더라도 막걸리는 먹지 마요. 우리처럼 된다니까.” 사람 좋게 웃으면서 지나가는 아저씨들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집에서 막걸리 한 잔 안 한다면 그건 죄악이지, 암.
조계산 옛길 등산로 가운데쯤에 자리한 이 보리밥집은 순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만큼 유명한 곳이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레방아로 불을 밝혔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산 중턱에 있어서 오가는 등산객들이 꼭 한 번은 들러 가게 되는 이 보리밥집 밥맛은 먹어 보지 않은 이들에겐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꿀맛 같던 산나물과 구수한 된장국을 산이 아니라 도심 어딘가에서 먹었더라면 그렇게 맛있게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밥맛의 절반쯤은 조계산이 빚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한 일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여겨지던 그 보리밥의 비법은 아마도 힘든 산행 뒤에 좋은 벗들과 들쩍한 막걸리 몇 잔 기울이며 나눈 달콤한 휴식 덕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집 아저씨는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집에서 한결같이 보리밥을 팔고 있다는데, 그 많은 사람들 해 먹일 쌀이며 반찬거리를 이고 지고 올라오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을 것 같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지은이, 어떻게 그 많은 짐을 옮기느냐 여쭈었더니 어지간한 나물은 밭에서 직접 기른 걸 쓰고 모자란 것은 아랫마을에서 경운기로 실어 나르고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고 하더란다. 마지막으로 구수한 숭늉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고 나니, 남은 2시간 산행이 가뿐하게 여겨졌다. 진짜 끝내주는 점심이었다.
보리밥집에서 송광사까지는 거의 나는 듯이 달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서 마음이 바쁘기도 했지만, 선암사 쪽에서 올라가는 송광굴목이재 오르막길은 선암굴목이재 오르막길보다는 가파르지 않아서 덜 힘들기도 했던 것. 그래도 저만치 송광사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하자 무지하게 반가웠다. 다리에 힘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으니까.
송광사에서도 불교 문화 축제 때문에 꽤나 시끄러웠는데 그런 공연보다는 송광사 등불 전시나, 녹죽장 김기찬님의 ‘기찬솜씨’ 가게에 가서 이쁘장한 빗이랑 장식용 솟대 따위를 구경한 것이 훨씬 즐거웠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깜찍하고 이쁜 빗 하나를 사서 나왔다.
송광사를 둘러보고 나오려니 사위는 어두워지고, 배도 고파지고 해서 택시를 타고 선암사 숙소로 옮겼다. 송광사에서 식당을 25년이나 하고 있다는 택시 기사 장대철 아저씨는 불일암에 계시는 법정 스님이 어디 움직이실 때마다 태워 드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레 해 주셨다. 5년인가 스님 모시면서 당신도 꽤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법정 스님 건강 걱정에, 순천에서 가 볼만한 이곳 저곳 소개에, 아저씨는 선암사 가는 내내 말을 끊지 않으셨다.
산행 뒤에 따뜻한 택시 안에 있으니 졸음이 마구 쏟아져서 눈은 제멋대로 감기는데, 뜨고 앉아 있느라 애를 먹었다. 목련나무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우리 끼니 걱정부터 하신다. 대충대충 씻자마자 동동주 한 동이에 파전에 밥 한 공기씩 뚝딱 해치우고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파김치처럼 늘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