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유임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사임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부시 대통령과 1기만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며 사임 이유를 밝혔지만,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16일자 신문에서 "파월은 지난 6개월 동안 부시와 새로운 외교안보팀 구성 문제를 논의했다"는 국무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국 파월이 떠나게 됐다"고 보도해 이와 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파월이 지난 4년간 초강경파가 득실거리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에서 '상대적인 온건론'을 주창해왔고 이에 따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강경파와 불화가 잦았다는 점에서, 그의 사임은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가운데 가장 이견이 심했던 부분이 대북정책이라는 점에서 파월의 사임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파월 떠난 미 행정부, 다른 말을 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파월이 떠난 부시 행정부 2기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부시가 새로운 외교안보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파월의 권고를 거부하고 그의 사임을 받아들인 것은 지난 4년간 자신의 대외정책이 옳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점에서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온건화될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외교안보문제에 문외한인 부시에게 네오콘과는 다른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에 있다. 특히 파월의 후임자로 유력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네오콘'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네오콘과 코드를 맞춰온 인사라는 점에서, 또한 라이스의 후임자로 네오콘의 핵심인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스티븐 헤들리 안보 부보좌관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에게 '공부'시켜줄 사람들은 1기 때보다 더욱 강성 인물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이는 외교안보정책의 실세인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 확대와 맞물려, 부시의 대외관과 이에 기초한 정책이 더욱 강경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이라크 문제는 물론이고 이란 핵문제, 중동평화협상, 북핵 문제에 대한 2기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강경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힘에 의한 점령'과 친미정권 수립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최근 유럽연합과 이란이 합의한 핵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도 '딴지'를 걸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점증하고 있는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친이스라엘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립' 심화될 수도
그러나 국제정세와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을 고려할 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국제적으로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석유 패권 장악과 중동을 친미-친이스라엘 질서로 대체하기 위해 선택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또한 EU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독일-영국-프랑스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성사시킨 이란 핵합의를 2기 부시 행정부가 되돌리려고 할 경우 이들 국가들의 반발도 커지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라파트 사망을 중동평화협상 재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여론 앞에서 2기 부시 행정부가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일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중동평화협상을 통해 만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시에 협력하지 않으면 미·영 관계도 흔들릴 수 있다.
즉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완화시키면서 동맹·우방국들을 설득하는데 거의 유일한 역할을 해온 파월의 사임이 미국 일방주의의 강화로 귀결된다면, 2기 부시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더욱더 고립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어떻게 될까
지난 4년간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 수뇌부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해온 파월의 사임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2기 부시 행정부의 인적 구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북한이 더욱 움츠러들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4차 6자회담을 앞둔 참가국들의 숨고르기가 길어질 수 있다.
관심의 초점은 '2기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내부적인 합의에 도달할 것인가'에 모아진다. 1기 부시 행정부 때에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없다"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을 정도로 내부적 이견이 심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1기 부시 행정부의 파벌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에 따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을 목표로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방지해야 한다는 '비확산파'이다. 파월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북한위협론 활용파'이다. 이들은 북한에 대해 '악의적인 무시'를 하면서 북한위협론을 근거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과 한미·미일동맹관계의 강화, 그리고 한국에 대한 무기수출의 확대를 추구해왔다.
부시 행정부 내의 이러한 기류는 강력한 국무장관 후보로 꼽히고 있는 라이스가 지난 2000년 <포린어페어>지 1/2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향후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과 협상을 하기보다는 이들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고 쓴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네오콘의 상당수가 선호하고 있는 '북한정권교체파'들이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있는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외교적·군사적 수단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이를 통해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관리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중요한 점은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해온 '비확산파'는 극히 소수이고 영향력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비확산파를 대변해온 파월이 사임함에 따라, 2기 부시 행정부는 한층 강경 기조의 대북정책에 대한 내부적 합의에 도달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2기 부시 행정부가 협상하는 척 하면서 '다른 음모'를 꿈꾼다면, 한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과의 마찰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북핵 해법'으로서 무력 사용은 물론이고 제재와 봉쇄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이와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부시와 가장 가까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역시 미국의 대북강경론은 자신이 임기 내에 실현하겠다는 북·일 수교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일 간의 협력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2기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비타협주의와 일방주의를 강화하면 할수록 아시아에서 미국이 고립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들이다.
보수파여, 진정한 국익을 생각하라
문제는 2기 부시 행정부가 대북강경기조를 버리지 않을 때 불가피하게 나타날 한·미 간의 갈등에 대한 국내 보수진영의 정치공세와 이에 따른 국론분열이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을 두고 보수진영이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한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에 있고, 6자회담 참가국들 가운데 상대적인 약소국에 속하는 한국에서의 국론분열은 대외정책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강경파들이 한국의 국론분열을 조장·활용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 기반의 강화와 언론의 건강하고 생산적인 보도는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진영이 '반노(反盧)'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국익'의 관점을 갖고 대외정책에 접근할 수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정부와 여당 역시 외환(外患)을 통합의 기회로 삼고 한나라당을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를 삼을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오늘날 한반도가 중대한 분수령에 서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증오의 정치'를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다. 진나라를 망하게 한 자는 오랑캐가 아니라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말이 우리 후대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