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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끈을 자르게 하며 마술을 확인시키는 모습
아이에게 끈을 자르게 하며 마술을 확인시키는 모습 ⓒ 안양자원봉사센터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크리스마스와 함께 산타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겨울에는 사랑의 산타로, 여름에는 ‘일삼세대’(할아버지와 손자)동화마당팀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찬란히 꽃피우는 노인들을 만나기 위해 안양시 종합 자원봉사센터를 찾았다.

온화한 할아버지들의 얼굴에서 정겨움이 물씬 풍긴다. 웃어른으로 예우 받기보다는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봉사자들의 마음이 석양에 물든 잔잔한 노을처럼 아름답다.

일삼세대 동화팀은 대다수가 전직 교사출신으로 이루어진 노인자원봉사 단체다. 노인들은 "맞벌이가 급증하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놀이방으로 몰리고, 가풍이나 예의범절이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나섰다"고 말한다.

홍순달(70세) 회장은 "옛날에는 한 지붕 아래 대가족이 알콩달콩 살면서, 어머니의 꾸중을 듣고 피신했던 할머니의 품안은 포근하고 편안한 쉼터였지요"라고 회상한다. 요즘 아이들은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는 젖이 아니라, 우유를 빨며 따뜻한 세상에서 단절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무릎에서 듣던 구수한 옛날이야기의 정서를 찾아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술같이 세상을 바꾸려는 이미 최고의 선생님들이었다.

전직 선생님들이지만 특별 강사를 초청해서 맹훈련을 받아야 아이들 앞에 설 수 있다. 아동심리학, 동요, 동화, 전통놀이까지 꼬박 하루 6시간씩 일주일 교육을 받았다. 마술은 20일 이상 훈련을 받았지만, 아이들 앞에 서기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다.

개별적으로 만만치 않은 가격의 마술도구를 구입하며 교육을 더 받기까지 한 열성은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힘겹게 배운 마술을 응용하여 밤낮으로 연구에 연구를 계속한다.

풍선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풍선 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 안양자원봉사센터
김주명(70세) 할아버지는 "개인적으로 3개월 정도 더 배우면서 힘겹게 노력한 결과, 부채마술. 끈 잇기 등 20여 가지 마술을 자유자재로 구사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손자 같은 귀여운 아이들과 어울릴 때가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요"라고 말한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 위해 동화책을 달달 외우고 암송하는 것은 기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열정적으로 탤런트처럼 꼼꼼히 연기 연습까지 하는 노인들이다.

홍 회장은 집에서도 수시로 유치원생인 손녀 앞에서 연습을 한다. "자~ 친구랑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듣고 마술도 좀 봐라." 손녀가 이해하면 다행이지만, 잘 모르면 다시 창작에 몰입하게 된다.

놀이방의 아침 시간은 그림을 그리거나 공부하는 시간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방문하는 날은 예외다. 매월 10개 놀이방을 선정해, 할아버지 두 분이 한 팀을 이뤄 한 장소에 2회 방문을 한다.

놀이방으로 찾아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 큰절하는 예의범절로 하루를 시작한다.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들이 이름을 부르면 (이름표를 보고)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을까 의아해 하는 아이들이다.

낯선 할아버지들을 따라서 "돼지는 꿀꿀/ 오리는 꽥꽥/ 송아지는 음머음머…" 재미있게 흉내를 내다보면 금세 신명이 난다.

할아버지 두 분이 스무 명 내외의 아이들을 감당하기는 벅차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마술이다. 그렇다고 마술은 아이들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은 결코 아니다. 마술을 통해서 창의력과 무안한 꿈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자~ 보세요. 종이를 이렇게 찢었습니다." 찢어진 조각조각을 꾹꾹 뭉쳐서 주물럭주물럭 주먹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한다.

구겨진 종이를 펼치며 "앗! 찢어진 것이 다 어디 갔지" 말짱한 종이가 좌중을 휘어잡는다. '우와~' 티 없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새록새록 빛나며 박수가 터져 나올 때면 할아버지의 인생도 마법처럼 피어오른다.

마술을 하는 김주명 할아버지
마술을 하는 김주명 할아버지 ⓒ 안양자원봉사센터
이번에는 '푸~후'하고 풍선을 불며 교실 전체에 마법을 걸었다."하낫. 두울. 셋! 잘 보세요. 풍선이 터지나 안 터지나. 할아버지 마술이거든요" 라며 바늘로 쿡 찔렀다. 풍선은 '펑'소리와 함께 터지며 실수연발이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고, 할아버지는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마술이 끝나자 "올라간 눈/ 내려온 눈/ 빙글빙글 돌려서/ 여우 눈. 올라간 손/ 내려온 손/ 빙글빙글 돌려서/ 무릎 손" 금세 술렁거리던 분위기가 차분해 진다. 손유회는 분위기 조성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IQ 성장에도 그만이다.

옛날이야기 시간, 등장인물이나 동물들을 막대 인형에 붙여 가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은 환상의 콤비이자 이미 성우였다. "어, 도둑이 들었나. 도둑이 왔나봐요. 어서 일어나요 일어나. 도둑을 잡아야죠", "도둑은 무슨?"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검은 눈동자가 새록새록 반짝거린다.

잊어져 가는 전통놀이 시간,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마주보고 앉았다. 짤막하고 앙증스런 친구 다리 사이사이에 다리를 쭉 뻗었다. 순서대로 다리를 오른 손으로 짚으며 노래 부르는 다리셈 놀이가 시작되었다.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다 잡아/ 나 한 첨 안 주네/ 우리 집에 와 봐라/ 밤 대추 주나봐라/ 다음에는 이모네 집으로, 자유자재로 이름만 바꾸며 이어지는 노랫말에는 직설적 표현보다 해학적인 지혜가 숨어 있다.

아이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여우야 여우야' 게임 역시, 우리문화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금방 친숙해지는 놀이다. "한 고개 넘으니 아이쿠 다리야/ 두 고개 넘으니 아이쿠 허리야/ 세 고개 넘으니 아이쿠 어깨야" 모두 신명이 난다.

술래를 곁에 두고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 멋쟁이/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술래인 여우가'죽었다'라는 한마디에 모든 동작이 그대로 멈췄다.

반복해서 노래 부르다가 '살았다' 외치며 여우는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는다. 잡힌 아이가 술래가 되는 왁자지껄한 놀이 속에서 할아버지와 아이들은 이미 하나로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회원들은 "봉사는 누굴 위한 것이 아니지요. 내가 즐겁지 않으면 못해요"라고 입을 모은다.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유치원교사로 동화구연가로 마술사로 새롭게 거듭나며 매사에 활력소가 넘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마무리를 하며"오늘, 즐거웠나요"하고 물었다. 아이들은 "네~ 아주 재미 있었어요" 복창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예정된 한 시간이 후딱 지나기 일쑤다.

금세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동화된 아이들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매달리며 가지 말라고 떼를 쓴다. 할아버지들은 일삼세대의 소중한 사랑이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일일이 아이들을 꼭 앉아준다.

안양시에는 부모들이 출근하며 낮 동안에 아이들을 맡기는 90여 개의 놀이방이 있다. 그 중에 60여 곳을 돌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훈훈한 동심의 마음 밭을 촉촉이 보듬으며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마술처럼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자원 봉사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숨결은, 자꾸 퍼내도 계속 샘 솟는 샘물 같은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시 사랑의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아이들 곁으로 가기 위해 금년에는 일삼세대 동화팀은 마무리된 상태다.

웃어른으로 예우 받기보다는 받은 것을 사회에 다시 환원시키며 교육에 몰두하는 모습은, 세상의 지킴이로써 존경 받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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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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