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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도북 출발 직전.
불수도북 출발 직전. ⓒ 유성호
이종기, 정영작, 최진수, 김진세, 이정화, 박종혁, 박준갑, 주권식 동문은 단단한 행장으로 성공적인 산행을 다짐하고 산을 오르려 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몇몇 동문이 면박을 받았다. 무슨 소풍 가듯이 배낭을 그리 크게 싸왔냐며 산행대장인 이정화 동문이 다그친다. 불수도북 산행의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는 바로 '가벼운 배낭'에 있다.

엄청난 체력 소모가 요구되기 때문에 고열량의 행동식과 물을 준비하되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불수도북에 도전한 한 동문은 몸무게 100kg에 배낭만 40kg은 족히 되도록 싸들고 왔다. 가뜩이나 산행 도전이 두려웠는데 면박까지 받으니 얼굴에는 두려움이 짙게 깔린다.

그러나 어쩌랴 길은 가야 하는데. 싸온 것을 버리진 못하고 불암산을 향해 출발했다. 주위는 완전히 어둠이 휘감고 있다. 헤드랜턴 불빛만이 산길에서 일렬로 춤을 추면서 이동한다. 불암산 매표소를 지나자 이날 오전부터 북한산과 도봉산을 종주하고 내려 온 여봉구, 김재영 동문이 기다리다 합류했다. 이로써 모두 10명이 불암산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길을 재촉했다.

불수도북의 첫번째 목표인 불암산 정상.
불수도북의 첫번째 목표인 불암산 정상. ⓒ 유성호
출발한 지 1시간 반만에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불암산은 작은 산이지만 정상 부근이 완전히 암릉 지대로 이루어져 바위 타는 재미가 쏠쏠해서 산악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러나 정상 부근이 좁고 어두운 터라 모두 모여 사진을 찍기는 위험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정상 확인 사진을 박았다.

불수도북은 성공 이후에 시간을 따지면서 등급을 따로 매긴다. 대략 20시간을 기점으로 안쪽으로 들어오면 제법 산을 탄다는 소리를 듣고 그 이후면 좀더 체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인지 일행은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서둘러 하산한 다음 수락산으로 향했다. 앞서 북한·도봉산을 오르고 중간에 합류했던 두 동문과 체력이 약한 한 동문, 이렇게 세 동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더 이상은 어렵겠다며 포기했다.

덕릉고개에 도착한 것은 밤 8시50분. 과거 길이 나지 않았으면 불암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을 길을 이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의지를 다시 다지고 심호흡을 길게 한 번씩 한다. 그리고 정각 9시에 수락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락산은 기괴한 모양의 암석들로 유명하다. 그러나 밤이라서 주변 경관은 포기해야 하고 오직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따라 조심스럽게 산을 즈려밟고 올라야 한다.

덕릉고개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흥국사라는 절을 만날 수 있다. 흥국사는 조선 선조가 1568년 중종의 아홉번째 아들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편액을 내린 절로 유명하다. 흥국사의 옆구리를 끼고 돌아 수종암을 거쳐 540봉우리에 올라 거친 숨을 내려 쉬자니 멀리 서울 북부의 야경이 찬란히 빛난다.

수락산 정상. 등뒤로 도시의 야경이 아련히 빛난다.
수락산 정상. 등뒤로 도시의 야경이 아련히 빛난다. ⓒ 유성호
물 한 잔, 초콜릿 한 조각을 나눠 먹고는 동문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하고는 다시 배낭을 들쳐 멘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재촉한다. 수락산을 타고 내려와야 따끈한 야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밤 11시10분 정상에 올랐다. 수락산을 정복하는 데는 2시간10분이 걸렸다. 야식 생각에 일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산을 서둘렀다. 509봉우리를 거쳐 동막골로 하산길을 잡았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회룡역 근처 '고스락 감자탕' 집이다. 이때 시간은 새벽 1시25분. 하산 길에 날짜가 바뀐 것이다.

감자탕 집에서 야식을 먹고 짬을 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감자탕 집에서 야식을 먹고 짬을 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쌀쌀해진 날씨 탓에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이 그리웠다.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뚝배기 해장국을 시켜 게눈 감추듯 먹고는 온돌의 유혹을 못이기고 잠시 가면을 취한다. 일부는 이미 체력이 바닥나 다음 산행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때 천사 같은 목소리를 하면서 여자 동문인 김정숙 동문이 컵 라면과 꿀물을 타서 산행 팀을 격려하기 위해 나왔다. 일행은 동문의 따뜻한 정성에 힘을 얻어 바닥난 체력을 수습해 다시 배낭 끈을 졸라맸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몸무게 100kg의 동문은 배낭의 무게에 못 이겨 결국 2개 산 종주에 만족하고 다음 산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또한 가장 막내인 40대 초반의 팔팔함을(?) 자랑하던 동문 역시 체력 고갈을 이유로 아쉽게도 주저앉았다. 1회 동문은 다행히 아직 체력이 남아 있다며 산행대장을 앞세워 도봉산으로 향했다. 불수도북에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사패능선에서 자운봉과 사패산 갈림길을 나타내는 이정목.
사패능선에서 자운봉과 사패산 갈림길을 나타내는 이정목. ⓒ 유성호
일행은 새벽 3시10분경 식당을 나와 도봉산 공략에 나섰고 4시반경에 자운봉과 사패산 갈림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패산 정상을 찍고 오면 완벽한 '불수도북사'를 완성할 수 있지만 첫번째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 포기하고 자운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산행대장을 맡은 이정화 동문은 이미 불수도북을 여덟 차례 종주한 바 있고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10시간대에 주파하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세번째 목표인 도봉산 정상.
세번째 목표인 도봉산 정상. ⓒ 유성호
든든한 산행대장은 일행이 포기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하면서 안전하게 인도해 오전 6시 40분경 일행 다섯 명은 도봉산 정상을 밟았다. 10명에서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일행은 신선대 계곡 우측을 이용해 우이암을 거쳐 하산했다. 하산길 우이암에서 바라 본 동녘 하늘로는 붉은 해가 '소 혀처럼' 구름 사이로 꿈틀대고 있었다.

우이암을 내려오다 만난 일출.
우이암을 내려오다 만난 일출. ⓒ 유성호
우이암 매표소를 빠져나와 우이동에 있는 설렁탕 집에 들어설 시각이 오전 8시 40분. 같은 산악회원이지만 사정이 있어 출발을 함께 하지 못한 장지태 동문이 해장국을 바리바리 싸와서 일행을 격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코스 곳곳마다 동문들의 따뜻한 격려가 일행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격려했던 1회 이종기 동문이 산행을 포기하고 만다.

북한산 위문에서 마지막 봉우리인 백운대를 오르기 전.
북한산 위문에서 마지막 봉우리인 백운대를 오르기 전. ⓒ 유성호
일행은 맏형 같은 선배의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오전 9시 30분 우이동을 출발해 도선사 매표소를 통해 불수도북의 마지막 봉우리인 북한산 백운대를 향했다. 마지막 코스가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일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해장국을 싸왔던 동문이 합류하면서 일행은 여전히 다섯 명이다. 이들은 위문을 통과하고 출발 2시간만인 11시 50분에 백운대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 불수도북은 끝나지 않았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올랐기 때문에 내려와야 모든 것이 종료되는 것이다. 잠깐의 감격을 여운으로 남겨둔 채 일행은 구기동 매표소에서 불수도북 산행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 시간은 오후 2시 25분. 총 20시간 25분 동안 4개 산, 약 45km 거리를 종주한 것이다. 이날 완주한 최진수, 박종혁, 이정화, 박준갑 동문은 서로 포옹하며 해냈다는 기쁨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불수도북을 종주한 자랑스러운 얼굴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불수도북을 종주한 자랑스러운 얼굴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 유성호
이들은 모두 40대 초중반의 나이로 2·30대도 섣불리 감행하지 못하는 불수도북을 해낸 것이다. 마지막 대남문 코스에서는 이향민 동문이 따끈한 쌍화차를 준비해 일행을 반기는 등 힘겨울 땐 언제나 동문들이 함께 한다는 것에 이번 도전자들은 큰 힘을 얻었다.

불수도북이 단지 도전의 의미가 아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는 인생의 축소판이란 사실을 이들은 가슴에 새기고 하산했을 것이다. 불암, 수락, 도봉, 북한은 그렇게 인간에게 간단없이 베풀기만 하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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