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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 재결성 뒤 정상영업에 들어간 신교하농협. 유근만 조합장은 "조합 재결성에 대해 전국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합 재결성 뒤 정상영업에 들어간 신교하농협. 유근만 조합장은 "조합 재결성에 대해 전국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개혁 농협 1호'. 지난 5월 조합을 해산하고 석달 뒤인 8월 조합 재결성 승인을 받은 경기도 파주 신교하농협을 흔히 이렇게 부른다.

이 곳이 '개혁 농협'이라는 과분한(?) 호칭을 받고 있는 이유는 조합을 재결성하면서 다른 지역 농협과 차별화된 정관을 만들어 실천했기 때문이다. 신교하농협은 이 정관에 따라 조합장 임기를 4년(초대 2년)으로 정하고 연임을 못하도록 했다. 또 전무이사 직급을 폐지하고 전문경영인인 상무이사를 둔 것, 직원 급여를 재조정한 것 등이 눈에 띄게 변화한 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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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하농협 재결성 뒤 전국 지역 조합 '들썩'

조합 해산을 결정한지 6개월, 조합을 재결성한지 3개월이 11월 현재 신교하농협이 농촌과 농협 조직에 끼친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오마이뉴스>가 그 현장을 직접 찾아가 봤다.

"광주, 전주, 대구, 진주... 전국 각지(농협)에서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느 지역이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죠. 각종 언론 매체에 '개혁 농협'이라고 보도되자 그 방법을 물으러 찾아온 겁니다."

11월 중순 찾아간 신교하농협에서 만난 유근만(64) 조합장은 조합 재결성 뒤 전국 각지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 조합장의 설명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한 지역 조합들이 신교하농협의 변화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교하농협의 해산과 재결성 사태로 전국의 지역 조합들이 들썩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신교하농협발(發)' 지역 농협 자체 개혁운동이 연속해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몇 십 년간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던 회원 조합의 조합원들이 스스로 구조 개혁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교하농협이 농협 개혁의 '싹'이 될 수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마냥 낙관적으로만 예측할 수는 없다. 신교하농협과 같은 모델을 저마다 특수성을 가진 지역 농협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정도 다르거니와, 조합의 해산과 재결성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간 엄청난 갈등이 불가피하다. 전 교하농협 직원들이 아직까지 신교하농협 앞에서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유 조합장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만약 다른 곳에서 조합의 해산과 재결성을 하려고 한다면, 이를 단호하게 말리고 싶다"고 전했다. 유 조합장은 또 "신교하농협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몇 년이 지나봐야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 조합장의 말처럼, 신교하농협의 변화는 전국 1337개 회원조합 중 단 한 곳에서 벌어진 '특별한 사건'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역 농협의 새로운 시도가 이미 시작됐다는 점이다.

회원 조합 개혁, '농민-노동자간 이해'가 전제 조건

이 같은 시도가 전국으로 번져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조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조합원인 농민들과 노동자인 농협 직원들과의 '상호 이해'다. 농민은 농협 직원들의 처지를, 농협 직원들은 농민들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지역 농협의 현실은 이들 서로간의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는 상태다. 농협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해 권익 보호에 나서려하면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농협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게 다반사다. '배부른' 농협 직원들이 무슨 노동조합이냐는 반발이다. 거꾸로 농민들이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하면 농협 직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왜 뺏으려느냐는게 직원들의 항변이다.

농협노조 관계자는 "농민과 농협직원들 사이에 불신이 만연해 있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라며 "심지어 전농 간부들조차 농협 직원들의 노동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봤다"고 지적했다.

전농 관계자도 "노동자를 동반자로 인식해야 할 농민회 간부들도 지역에 가서는 농협 직원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며 "이는 농협 직원들에 대해 수십년간 쌓여온 농촌 사회의 불신이 드러나는 것으로, 전농 차원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교하농협은 비록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화합에는 실패한 경우다. 노조와 농민회 관계자들은 지역 농협에서 농민과 농협 직원이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면 개혁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새농촌 새농협운동, 농협중앙회도 변할까

이처럼 지역 조합에서 개혁의 기운이 일고 있는 가운데, 농협중앙회도 나름대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9월 중순부터 '새농촌 새농협운동' 계획을 마련, TF팀을 구성해 33건의 실천과제 추진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 16일에는 그 동안 '비난'의 대상이 돼 온 조합장 연봉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안도 내놨다. 농협중앙회는 회원 조합장의 연봉을 5500만원 이상 넘을 수 없도록 하고, 경제사업의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전무이사의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고, 회원 조합 상무의 숫자도 2명까지만 둘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개선안이 장기적인 농협 개혁과 발전을 위한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비판 여론을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가 넘어야 할 고개는 아직 많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신·경 분리' 방안에 대해 농협중앙회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관건이다. 농업인과 전문가들은 시급한 신·경 분리가 없다면 농협 개혁은 '백년하청'일 뿐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반면 농협 내부에서는 여전히 신·경 분리에 회의적인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세칭 '개혁 농협'을 이끌고 있는 유근만 조합장조차 "지역 조합 입장에서는 신·경분리를 하면 안 되고, 이는 시골로 들어갈수록 더 그렇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8일,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 당시 농협 직원들의 가슴에는 '새농촌 새농협'이라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 리본이 희망의 깃발이 돼 농촌에 나부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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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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