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숙이 서평집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에서 '제목 좋다!'고 찬사를 보냈던 신경숙의 수필집 <자거라 네 슬픔아>. 개정판 수필집 <아름다운 그늘>을 빼면 이 책이 가장 최근에 나온 신경숙의 저서인 셈이다.
구본창의 사진이 함께 들어 있는 이 수필집에서 나는 신경숙의 생명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이 책에는 작가 어머니의 개 사랑 이야기가 담긴 '개밥 줘야 된다아-'와 작가의 고양이 사랑이 담긴 '발톱일랑 숨기고'가 들어 있다.
신경숙은 말하나마나 손꼽히는 인기 소설가다. 창작집 <풍금이 있던 자리>부터 시작해서 내놓은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래도록 머물며 장기독재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일보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21세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큼직큼직한 문학상을 한 살 터울로 잇달아 받았으니 말이다.
올해 초 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문화인 가운데 소설가로는 이외수와 신경숙이 1순위에 꼽힌 일이 있다. 서사를 중시하는 대하소설 작가보다 1972년과 1985년에 각각 독자 앞에 나타난 두 작가가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아마도 두 작가의 소설이 그만큼 특징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정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자거라, 네 슬픔아>에 수록되어 있는 '개밥 줘야 된다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화가 왔다. 시골의 어머니다. 내일 모레면 병원에 갈 일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되어 있는 어머니.
(중략) 무시(무우)밭이다. 서울에 가야 된 게 무시나 한 개 뽑아다가 느그 아버지 나 없는 동안 자시라고 청국장이나 끓여놓고 갈라고. 너한티 할 말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할라고 걸었다아.'
이것이 바로 386세대 어머니부터 그 이전의 시골 어머니 모습들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난 말은 아닐 것이다.
'무슨 말?
내가 내일 택배를 부칠 것잉게 집 비우지 말고 받어라.
(중략)결혼하고 여태 김치 한 번 담가본 적이 없다. 김치가 떨어질 만하면 어머니가 시골서 부쳐왔다. (중략) 어느 날 문득, 어머니 돌아가시면 김치는 누가 담가주나…… 빈 집에 앉아 있을 때처럼 마음이 물끄럼해졌다.'
나 역시 '어머니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때때로 할 때가 많다. 어머니가 털실로 떠주신 검정 스웨터를 입고 있을 때면 특히 그렇다.
'다음 날 도착한 택배 상자 속에서 나온 것들은 김치들만이 아니다.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들깨가루, 생강가루, 고춧잎 된장 속에 박은 것, 토하젓, 호박즙에 굴비 한 두름에, 집간장까지. 어찌나 꾹꾹 눌러 담고 단단하게 묶었는지 일일이 펼쳐보기가 힘이 들 지경이었다.
김치는 열어보지도 않은 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에 김치는 정말 맛있네, 어찌 이리 간이 딱 맞는데…… 배추도 너무 잘 골랐어.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게 어찌나 고소한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네.
그랬냐!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흐뭇함이 묻어 있다. 딸의 달콤한 칭찬에 아마 입술은 귀에 닿아 계셨을 것이다. 갑자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은근해지셨다.
토하젓은 너한테만 보냈거던.
응?
인자는 민물새우 구하기도 힘들구…… 어짰든 너한티만 보냈응게 다른 식구들한티는 말하지 말라잉. 서운하게 여길랑가 모릉게.'
아마 다른 자녀들한테도 다 이렇게 열성으로 챙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자각이 들자, 소설가 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인자 이 짓 좀 고만 하라니까……. 그러니까 몸이 그렇지. 엄마가 이런 거 안 보내준다고 서운해할 사람도 없구, 밥 못 먹을 사람도 없어요. 사 먹는 게 값도 싸게 먹혀. 제발 일 좀 그만 하고 쉬라니까. 좀 노세요, 놀아!'
같은 책에 수록된 '이 꽃을 어머니에게'를 보면 작가의 어머니가 고생하시는 모습이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어느 해 초파일 무렵에 시골의 어머니한테 갔더니 어머니 얼굴이 산만큼 부어 있었다. 그런 얼굴로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손과 발이 부어 누런 빵 같았다. 밤새 절을 하고 돌아와 앓고 있는 중에도 가뭄이 들어 작물들이 말라죽고 있는 밭에 물을 길어나르고 있는 중이었다.
저 고단한 여인, 책을 읽을 일도 음악을 들을 일도 없이 생애를 보내는 동안 어깨뼈가 닳아져 버린 여인.'
전형적인 시골 어머니의 모습이 빼곡이 담긴 '개밥 줘야 된다아-'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평생 일을 해오신 분이라 손을 놀릴 수가 없는 분. 닳아지고 텅 빈 채로 어머니의 몸은 조금만 그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쉬어가기로 하고 아버지와 함께 이 서울에 오시면 하루는 어찌 견디고는 이틀째가 될라치면 집에 가야겠다고 나선다. 가서 뭐 할라고? 물으면 개밥 줘야 된단다. 말 못하는 짐승을 굶기면 벌받는다이-하며 가버리신다.'
구수하면서 슬프다. 텔레비전이든 영화든 어떤 영상매체를 통해서도 우린 이런 어머니의 깊은 맛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래서 신경숙의 글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아닌가.
이번엔 고양이 차례. 신경숙은 '발톱일랑 숨기고'에다 처음 페르시안 고양이를 만났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아들과 함께 사는 후배네 집을 방문했다가 흰 페르시안 고양이를 보았다. 하얀 털실을 뭉쳐놓은 것 같은 조그만 새끼 고양이가 데구루루 굴러다녔다. (중략) 손에 닿는 흰털을 또 왜 그리 보드라운지 그만 뭔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신경숙은 그만 기르려는 후배에게서 페르시안 고양이를 떠맡게 된다. 신경숙의 남편 남진우 시인에 의해 붙여진 고양이의 이름은 루미(페르시안 시인 '잘랄 앗 딘 루미'를 딴 것). 신경숙은 고양이와 개에 대해서 이렇게 구분하였다.
'고양이라는 족속들은 개와는 완전 다르다. 그 첫째가 인간을 따르지 않는다. 개가 사람을 의지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을 의지한다. 개가 사람의 사랑을 원한다면 고양이는 공간의 아늑함을 원한다.'
그럴 것이다. 개는 대개 사람과 친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아무리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줘도 여간해서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페르시안 고양이 루미는 그 낯가림이 특히 더했던 모양이다.
'발을 씻겨주면 저를 죽이는 줄 알고 질겁하여 내 팔과 어깨를 할퀴었다. 목욕이라도 한번 시키려면 내 얼굴에 상처가 났다. 발톱을 깎아주면서 매번 루미야, 냐를 그렇게 못 믿겠냐, 중얼거리며 쳐다보면 루미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하는 듯 나를 외면하곤 했다.'
다행히 자기를 떠맡은 사람의 정성을 루미가 눈치챘음일까.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되자 내게도 조금 친밀감을 느끼는지 목욕을 시키고 수건으로 닦아준 뒤 드라이기로 털을 말릴 때면 예전과 달리 얌전해져 등을 구부리곤 했다. 발톱을 깎아줘도 가만히 있었다.'
어느 날 신경숙은 보들레르의 시 '고양이'를 루미에게 낭송해 주기도 했다.
'오너라, 내 예쁜 나비야, 사랑에 빠진 내 가슴 위로/발톱일랑 감추고/금속과 마노 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나를 푹 감기게 하렴.
내 손가락이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한가로이 어루만지며/내 손이 전기 일으키는 네 몸을
만져보며 즐거움에 취해들 때,
나는 마음속에서 내 아내를 본다. 그녀 눈매는/사랑스런 짐승, 네 눈처럼/그윽하고 차가와 투창처럼 꿰뚫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미묘한 기운, 위험한 향기/그녀 갈색 몸 주위에 감돈다.'
그러나 신경숙에게는 '너무 사랑해서 만져서 죽일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을 억누르고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자정 무렵에 저 아래에 사는 이에게 루미를 안겨주었다.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루미는 그이의 품속에서 하얗게 안겨 있었다. 루미는 소리 없이, 저만치 존재함으로써 나에게 관계 맺기에 있어서의 적당히 필요한 거리감을 일깨워준 짐승이다.
그랬으나 나는 돌아오는 밤길에 조금 울었다.'
'고양이 루미 사랑'을 그린 이 수필 속에는 이처럼 신경숙 문체의 백미(白眉)가 여러 군데 드러나 있다.
<자거라, 네 슬픔아> 속에는 개와 고양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새, 나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여러 군데 담겨 흐르고 있다.
<자거라, 네 슬픔아>를 보면서 '정중동(靜中動)', '생명'…… 이런 단어들을 생각했다. 구본창의 사진과 함께 이 밭에서 저 밭으로 넘어가듯 바쁘지 않게 펼쳐지는 신경숙 수필들…… 참 조용하고 좋다.
다음해면 작가 생활 2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소설가 신경숙. 짧은소설 < J이야기 > '작가약력'에다 '출판사, 잡지사, 방송국 등에서 일하느라 1년에 단편 두어 편씩 쓰고 지내다가 <풍금이 있던 자리>를 독자들이 많이 읽어준 덕분에 시간과 작업실을 갖게 되어 1993년 이후로는 작품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고 소박하게 적었던 소설가 신경숙.
신경숙의 가장 최근 소설집인 <종소리>가 나온 것이 2003년 3월이니까 어느덧 20개월이 흘렀다. 이럴 때 독자인 나는, '작가의 창작 세계에서 아주 잘 숙성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하며 천천히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