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나는 오늘 집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순간 거울에 비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깜짝 놀라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아버지 얼굴이 아닌 내 얼굴이 아닌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어릴 적부터 머릿속 깊이 각인돼 있던 아버지의 얼굴로 비친 것은 왜 일까?
사람의 얼굴, 특히 부부간의 얼굴, 부모와 자식 간의 얼굴은 닮는다지 않았던가.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부부도 자세히 보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일곱 살 된 아들 녀석과 집 밖에 나서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국화빵이라 할 정도다. 그러나 내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꼭 닮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여린 성격이나 평범하게 생긴 것이 영락없이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다.
나의 아버지는 최씨 중의 최씨라고 생각될 정도로 꼬장꼬장하다. 어릴 적부터 생각한 거지만 아버지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이다. 굶어 죽을지언정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할 줄 모르고 아닌 것은 죽어도 아니라고 말하는 양반이다.
내가 머리가 클 만큼 컸을 때에도 잘못하면 장작개비를 들고 뛰쳐나오시는 분이라서 소심한 나에게는 참 무서운 분이셨다. 반대로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평생을 함께 사시느라 속병을 얻으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닮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자식들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고, 마누라에게도 다정한 남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아버지와 닮아가는 것을 피하려 했다.
그렇게 만년 꼬장꼬장할 것 같던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거동조차 불편하실 정도로 아프셔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계신다. 얼굴은 주름이 생겨 쪼글쪼글해졌고 기름기도 없어 푸석푸석하다. 숨이 차서 목욕을 하는 것도 힘들어 하시기 때문에 살갗에서 비듬이 떨어지기도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예전의 그 꼬장꼬장한 아버지가 그리워졌었다. 다시 장작개비 들고 쫓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예전의 아버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추석 때 병문안을 갔는데 아버지의 얼굴이, 내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니를 빼 놓아 합죽이 같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27~28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얼굴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어쩜 저렇게 닮았을까? 전엔 왜 그런 생각이 안 났지?
그런데 거꾸로 오늘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의 얼굴에서 문득 내가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애써 닮지 않으려 했음에도 세월이 나를 아버지처럼 만들었나보다.
나는 생활 속에서 이미 아내에게 "아버지 닮았다"는 얘길 간혹 들었다. 고집이 세고 자기가 옳다고 하면 끝까지 버티고, 잘못하고도 마누라에게는 절대 먼저 잘못했다고 안하고 돈쓰는 것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것까지….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는 용돈 하나 주는 것까지 일일이 용돈기입장을 쓰게 하셨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안 먹고 안 쓰며 적금통장을 수십 개씩 만들어 그걸 부어 가느라 노심초사 하셨다. 그러나 나는 쓸 때는 써야 한다며 마누라와 애들 데리고 외식도 다니고 사회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아내에게 가계부 좀 쓰라고 하면서 싸운 적도 있었고 애들 셋에게 설거지나 신발 정리, 거실청소 등을 해서 용돈을 스스로 벌어 쓰도록 만들어 놓고 그것도 용돈기입장 만들어 검사를 받도록 교육시키는 걸 보면 말이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송곳 꽂을 땅 하나 없는 상태에서 20여년을 강원도 영월과 충남 보령 탄광에서 광부로 살아오면서도 자식들이 잘못할 때에는 엄하게 나무라셨고 뒤돌아서서 자식 몰래 눈물을 훔치던 분이셨다. 비록 지금은 광산에서 얻은 진폐증으로 숨조차 마음대로 편하게 쉬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버지의 그 가르침이 알게 모르게 내 삶의 지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아버지의 얼굴을 조금씩 닮아가는 나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내 아들과 딸들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 못생긴 아빠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닮는 것을 좋아할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도록 더욱 분발해야겠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