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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유품 전시할 '배호의 집' 생긴다

11월 7일. 29세 요절 가수 배호의 33주년 기일이다. 오전 8시 30분. 날이 참 맑다.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온통 파랗게 물들어 있다.

인천 모래내고개에서 부평까지 택시로 달려 오전 9시 정각에 '배호를기념하는전국모임(이하 배기모)' 부평지회 사람들이 마련한 15인승 밴에 동승했다.

다시 한시간여를 달려 양주시 장흥면에 접어든 뒤, 안락한 야산의 좁은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신세계공원묘지의 배호 묘소에 도착하자, 예쁜 까치 한마리가 날아와 묘소 앞 소나무에 앉는다. 반가워서인지 궁금해서인지 묘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괜히 카메라를 들이댔나, 사냥꾼의 총인 줄 알았는지 훌쩍 날아가 버린다.

반가운 듯 묘소 앞 소나무 맨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사냥꾼 총인지 알았는지 날아가 버렸다
반가운 듯 묘소 앞 소나무 맨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사냥꾼 총인지 알았는지 날아가 버렸다 ⓒ 김선영
칠순이 내일 모레인 나이에도 탑골공원에서 배호 노래를 부르며 위문 공연을 열고 있는 신걸수씨는 캠코더로 직접 녹음하며 동영상을 찍느라 바쁘다. 젊은 시절에 배호와 함께 사진 찍은 적은 없지만, 배호 노래를 너무 좋아해 녹음실에다 수십만원 들여 만든 '배호와 신걸수'의 합성 사진을 걸어 놓았을 정도.

배호 <두메산골>(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 노래비
배호 <두메산골>(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 노래비 ⓒ 김선영
강릉 주문진 아들바위의 파도 노래비 건립에 애쓴 강릉지부장 이영하씨는 즉석에서 풀밭 자연 사진전을 열었다. 현재 강릉민속예술단 연출 지도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드럼 연주자 활동을 했다. 때문에 밤무대에서 드럼을 치는 배호의 모습을 여러 차례 찾아가 살피기도 했다.

"하지만 드럼채를 공중으로 돌려 던졌다 잡아서 두들기는 배호의 전매특허 기술을 흉내낼 수는 없었죠. 그때는 남인수씨도 꼿꼿이 서서 노래할 만큼 제스추어가 엄격히 금기 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배호는 신인 시절부터 이미 파격의 길을 걷고 있었던 셈이다.

KBS <세상의 아침>과 MBC <화제집중>에서 나와 촬영하느라 바쁘다. 쭉 빼 입은 신사복에 중절모와 검은 안경 차림을 한 배호파 가수들이 여럿 인터뷰에 응한다. 1998년 호랑이 해에 호랑이 동양화로 인기를 끌었던 이종철씨는 이날도 자기보다 세배는 큰 배호 초상화를 챙겨 와 풀 언덕에 전시해 놓았다.

'여자 배호'란 별명의 가수 조영순씨가 배호의 '안녕'을 추모곡으로 부르고 있다
'여자 배호'란 별명의 가수 조영순씨가 배호의 '안녕'을 추모곡으로 부르고 있다 ⓒ 송영태
지역 인사와 배기모 회원 150여명('배호의 집' 현판식엔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린 시각은 낮 12시 정각. 서울의 64세 시인 이수정씨, 배호를 친오라버니 모시듯 하는 부산의 시인 배해수씨, 강릉의 이영하씨는 정성껏 준비해 온 추모시를 읽었다. 배호 모창가수 배오씨가 '오늘은 고백한다'를, 배효씨가 '누가 울어'를, '여자 배호'라는 별명이 붙은 가수 조영순씨가 '안녕'을 추모가로 부르는 동안 배기모 고문 홍순철씨는 색소폰 연주를 했다.

양주시 장흥면에 설치된 '배호의 집' 이정표
양주시 장흥면에 설치된 '배호의 집' 이정표 ⓒ 송영태
헌화를 마친 뒤, 다시 밴을 타고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 배호의 집이 들어설 일영유원지 입구 소재의 부부농원에 도착했다. 어느덧 점심 때라 배기모 회원들은 보쌈 등의 무공해 자연식 뷔페와 토속 막걸리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나도 배추 보쌈과 된장국으로 밥 한그릇 뚝딱 비우고서 국내 연예부 기자 1호로 유명한 정홍택 상명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배호 매니저였던 전우(작고, '누가 울어' 등 작사)씨와 더불어 배호를 친동생처럼 아꼈던 그는, "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하고 가슴 아파했다.

"검정 테 안경이 좋지 않으니 금테 한번 써 봐라 해도 다시 검정 테 안경을 쓸 정도로 고집이 셌어요."

"배호는 스캔들이 없는 깨끗한 가수로 알려져 있는데요."

"(지방 공연 때 연예인들의 숙소인) 여관 찾아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배호가 안 좋아했어요. 한 여자만 달랐죠. 그 얘기 알죠?"

"예, 배호님이 시계를 선물해 줬다고 하는……."

"노래 그만 해라, 결혼하고 쉬라고 말했죠. 휴양 가 있어야 하는데 안 아프다고 속였어요. 조금만 (노래)해서 못 버는 때니까, 혹사해야 벌 수 있는 때니까."

"처음엔 기교적으로 부르다가 아픈 몸에 힘이 드니까 절규하듯 불렀는데, 그게 오히려 팬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고 정교수는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미국에 주재하는 바람에 쉬라고 좀 더 말리지 못했던 걸 안타까워했다.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공기 좋고 물 맑은 300평 공간에 배호의 집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많은 팬들이 전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배호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 교수는, "배호의 노래가 한국인이 부르기 쉬운 곡조이며 모창하기 좋은 창법"이라는 점과 "울고 싶을 때 부르고 싶은 슬픔이 노래마다 배여 있는 점"을 들었다.

제1회 '강릉 배호 파도 가요제'에서 '배호상'을 받았던 역술가 추석민씨가 김광빈옹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제1회 '강릉 배호 파도 가요제'에서 '배호상'을 받았던 역술가 추석민씨가 김광빈옹 내외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김선영
물론 비슷하게 흉내는 내더라도 배호의 마력적인 목소리와 최저음에서 갑자기 지붕을 뚫듯 치솟아 오르는 가창력을 따라갈 수는 없을 터.

잠시 후 정자 이마에 걸린 '배호의 집' 현판이 제막되고, 20m나 되는 배호 노래 215곡의 붓글씨 제목을 서예가 천유진씨가 '배호의 집' 관리인인 박경남·김옥순 부부(부부농원 대표)에게 건넸다.

'배호의 집' 현판을 제막하는 광경. 배호의 외숙부이며 스승인 김광빈옹, 이 지역 젊은 국회의원과 가수 배일호씨 모습도 보인다
'배호의 집' 현판을 제막하는 광경. 배호의 외숙부이며 스승인 김광빈옹, 이 지역 젊은 국회의원과 가수 배일호씨 모습도 보인다 ⓒ 송영태
부산의 서예가 천유진씨가 '배호의 집' 설립 부지를 내놓은 박경남씨와 함께 붓글씨로 쓴 배호 노래 제목을 펼쳐보이고 있다
부산의 서예가 천유진씨가 '배호의 집' 설립 부지를 내놓은 박경남씨와 함께 붓글씨로 쓴 배호 노래 제목을 펼쳐보이고 있다 ⓒ 송영태
이어서 축하무대 순서. "배호 선배님 노래를 모창하는 동안에 노래 실력이 늘었다"고 가수 지망생 시절을 회고한 배일호씨는 그치지 않는 "앵콜!"에 배호 노래 여러 곡과 자신의 신곡 '정말로 정말로'로 답례했다. 그리고 국숙자, 추석민, 석기영, 김청운 등 각 지역의 배호파 가수들이 배호 노래 실력을 뽐냈다.

'배호의 집' 현판이 걸린 정자 앞에서 '자신이 배호 선배님의 영향을 받아 인기가수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 담긴 인사말을 하는 가수 배일호씨
'배호의 집' 현판이 걸린 정자 앞에서 '자신이 배호 선배님의 영향을 받아 인기가수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 담긴 인사말을 하는 가수 배일호씨 ⓒ 송영태
유형재(59·경상대학교 경영대 겸임교수) 배기모 중앙회장은 내년 초의 '배호 평전' 출간과 2005년 내 '배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는 '배호 부활 운동'의 걸음 걸음을 알렸다. 또 배호의 스승이고 외숙부인 83세의 원로작곡가 김광빈옹과 안마미 여사 부부는 '배호의 집' 현판식 행사 광경을 내내 건강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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