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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 '러브 하우스' 코너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 '러브 하우스' 코너 ⓒ iMBC
최근의 변화

이런 프로그램들은 요즘에는 변화 방향에 대한 단순한 정보의 제공보다는 시청자의 사연을 받아서 시청자를 직접 출연, 변화시켜주는 형태로 대부분 변하고 있다.

또한 소재나 영역에서도 기존에는 단순히 못 만나는 사람을 만나게 하거나 경제, 주거 문제 등에 치우쳤지만 이제는 음식, 패션, 인테리어, 미용, 건강, 연애, 대인 관계 등 일상 부분 모든 부분으로 확대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최근에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웰빙 관련한 소재나 상품들을 집중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왜 이런 프로그램이 선호될까-긍정적인 점들

방송사의 경우 단순한 정보의 제공이 아니라 시청자의 진솔한 사연의 안타까운 문제를 풀어주므로 현실감과 재미, 감동을 돋우게 되어 시청자의 관심과 시청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더구나 단지 고민을 상담해주거나 방향 제시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의 생활이나 환경을 직접 변화시켜 시청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단순한 정보 제공보다는 많은 제작비가 들지만 시청률을 이끌어 내는데 효과적이다.

시청자의 경우 텔레비전을 통해 실제 생활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또 방송 참여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방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설령 참여는 하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고 말하는 시청자들이 있다.

그리고 방송문화의 공익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청자가 방송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양방향 방송 문화 형성에 긍정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장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경우도 있고 바꾸어 주면서 정작 자신들은 바뀌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그럼 모두 좋은 것일까?-문제 해결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들

이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코칭할 때가 되었다.

첫째, 이전부터 사연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주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라기보다는 방송사에 사연을 보내 단번에 현실 여건을 바꾸려는 막연한 '대박·당첨 심리'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노력이 아니라 대박 때문에 생긴 결과는 대개 유지 못한다.

방송사의 개입 뒤 그러한 변화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있어 왔다.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없고,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불행과 고통의 경연장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러브하우스>나 <사랑의 리퀘스트>는 사연의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고생이 심할수록 방송에 채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사람들이 한 번 더 보기 때문이다. 거꾸로 웬만한 어려운 상황이나 처지는 내밀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고통이 심할수록 방송 가치가 높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셋째, 감동의 선별과 과장이 이루어진다. 고통이나 고생 외에도 감동을 줄만한 요소가 많을수록 방송용으로 적합해진다. 곧 극적인 구성요소가 많아질수록 방송에 채택이 되는데 이렇다 보니 시청자들은 자신의 사연을 최대한 포장하거나 심지어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으로 꾸미기도 한다. 또한 제작팀에서 이러한 극적인 부분, 감동적인 부분을 포장하고 카메라는 이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 감정을 짜내기도 한다.

SBS TV <해결, 돈이 보인다> 한 장면
SBS TV <해결, 돈이 보인다> 한 장면 ⓒ SBS
넷째,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거나 성공에 대한 집착만을 도드라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해결 돈이 보인다> 같은 프로의 경우 과거 MBC ‘신장개업’ 꼭지와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시청자의 대박의 꿈, 인생 역전이 버무려져 있다. 그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그 내용에서도 문제가 있다.

처음에는 손님이 많으므로 매상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첫날의 매상만을 보여주어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만 사연을 보내면 대박이 터진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손님을 끌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를 집중적으로 터득하게 하는데 기술만 있고 사람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빠졌다. 예를 들면 밥을 굶어 본 사람의 심정을 아는 따뜻한 밥집 할머니 같은 마음은 없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본이어야 돈이 의미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섯째, 각종 의학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각 의학 정보들이 정확한지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의 많은 정보들은 상충되기도 하고 중복되기도 해서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의학정보는 때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많은 프로그램에서는 한 사람의 전문가만을 출연시켜 그 전문가의 말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의학적인 논의는 여러 가지 학설이 대립할 수 있고 새로운 사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 명의 전문가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 소지가 크다.

심지어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전문 지식 외에 한 전문가를 출연시키면서 '얼짱' 스타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한다. 스타 전문가는 아무래도 프로그램 시청률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음식에 관한 정보의 경우 같은 식품이라고 하더라도 체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식품도 어떠한 사람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무시하고 어느 식품이 좋다, 나쁘다라고 일방적으로 말하기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방송을 믿고 잘못되었을 경우 책임은 시청자에게만 지워진다.

따라서 의학 지식이나 건강 정보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중구난방인 전문가 출연과 방송 구성이 아니라 방송사별로 전문가 모임을 만들어 항상 종합적인 논의 속에 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고 이러한 단점들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섯째, 최근 웰빙 관련 상품이나 소재들이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지만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도 없고 부담스러운 음식들이나 소재를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최근의 경제적인 불황과 내수 침체는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들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윤택한 '웰빙'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는 어떠한 상품이나 소재, 음식을 먹어야만 웰빙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더구나 노숙자나 극빈층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서 방송에서 이러한 상층 수준의 웰빙 상품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을 너무 간과하게 만든다.

SBS TV <체인징 유>
SBS TV <체인징 유> ⓒ SBS
일곱째, 미용이나 패션, 인테리어를 바꾸어 주는 “체인징 유” 같은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그 해당자 자체를 바꾸어주는 것인데 지나치게 외모, 외연,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한 케이블 텔레비전의 성형 시술 정도는 아니지만 일종의 외모주의 루키즘의 또 다른 변형이다.

특히 부부, 배우자나 연인의 변화를 방송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그것이 본인의 내부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 고유한 개성이 있는 것이고 이를 어떻게 개발한 것인지에 대해서보다는 진행자나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견해대로 바꾸어 준다. 즉 사람의 멋에 대한 획일화 현상도 일어난다.

또한 이전과 비교해 프로그램이 바꿔준 것이 이전보다 낫다는 결론으로 맺어진다. 이전보다는 이후의 모습이 무조건 낫다는 획일화된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사연을 보낸 사람들은 고맙다는 찬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집안을 바꾸어주는 경우 관련 소재 산업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서 영상 속에서 화려한 변화 정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실용성보다는 감각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상 속에서 아름답게 보여야 관련 상품이 잘 팔리는 것이기 때문인지 의문스럽게 한다.

무엇보다 그 집에 살 사람들과 교감하기보다는 내용을 모르게 고치고는 깜짝 놀래주기 식의 개조가 아직도 이뤄진다.

여덟째, 이러한 각종 웰빙, 외모-형식 바꾸어 주기 프로그램의 경우 지나치게 도시 중심적이다.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산골에 사는 이, 농촌에 사는 이들도 많다. 또한 황금 시간대 방송인데 젊은층의 시각이나 가치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얼마나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문제 해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방송미디어의 본질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다. 이를 댈러스 스마이더(Dallas Smythe)의 “수용자 상품론”이라는 미디어 이론으로 말할 수 있다. 시청자는 상품소비와 밀접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방송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1969년 미국 방송계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시청률이 1위였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은 소득이 낮은 계층, 노인, 농촌지역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상품 구매력이 낮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광고주들은 구매력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스폰서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광고주들 성화 때문에 결국 1위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이다.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도시 거주자와 젊은층은 많은 상품을 소비하는 구매력 있는 이들이다. 광고주뿐만 아니라 협찬사에서도 이들에게 호소력 있는 소재를 다루지 않으면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코칭이나 솔루션 프로그램 역시 시청률과 광고 때문에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진정한 코칭이나 솔루션 프로그램은 아닌 것이 많다.

문제 해결 프로그램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분명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명분 뒤에 알게 모르게 단점들을 합리화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는 물론 보통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방송사에는 이러한 일을 아무런 책임감이나 부담감 없이 웃음 속에서 하고 있다.

방송이 시청자들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는 있다. 방송이 인생의 상담역은 할 수 있지만 인생 해결사는 될 수 없다. 시청자의 문제 해결과 공익성이라는 이름의 개입이 또 다른 문제들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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