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돌이켜보면 신혼이라고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특히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부부라면 더욱 그렇다. 이재하씨 부부도 결혼과 함께 시아버지가 대장암을 선고받았고 친형 보증을 섰다 빚까지 지게 되었다. 한 달 한 달 갚아가 이제 다음 달이면 청산한다고 좋아했는데… 그들 앞에는 더 큰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홉 달만에 태어나 보름간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유진이는 피검사 결과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중성구) 수치가 낮다는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6개월간 지켜보자고 했지만 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졌다.
배꼽탈장으로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길 3개월, 겨우 낫자 이번에는 머리가 포도상구균에 감염돼 7군데나 혹처럼 튀어나와 제대로 눕히지도 못했다. 그러길 5개월, 이제 다 나아가는데 이번엔 심한 감기로 숨도 제대로 못 쉬어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전북대병원에서 받은 최종 병명은 바로 선천성 무과립구증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백혈구는 과립상태에 따라 무과립구(단구, 림프구)와 과립구(호중구, 호산구, 호염기구)로 나뉜다. 이 중 호중구는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하여, 병원체가 들어오는 길목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 호중구의 수치가 점점 줄어드는 병이 바로 유진이가 앓고 있는 선천성 무과립구증이다. 그래서 유진이는 미세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도 쉽게 감염되며, 작은 상처도 아무는 데만 몇 달 걸리는 것이다.
몸 상태가 좋을 때면 엄마 손을 끌고 한창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는 유진이. 하지만 문 밖으로 한 번 나갈 때마다 병을 하나씩 얻어오기에 유진이에게 외출은 사치다. 요즘은 심한 고열과 감기증세로 그나마 나가자고 엄마를 조를 힘도 없는 유진이다.
전북대병원에서는 "치료방법은 골수의식밖에 없지만 꼭 받을 필요는 없고 아이가 크면서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그 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그러기엔 유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4살 이전에 죽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받은 첫 선고였다. 그리고 바로 입원하라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진이의 경우 호중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구 수치가 그리 낮지 않다고 했다.
장기입원을 하려면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유진이의 경우 골수이식과 치료비로 7천만 원 정도 고액이 들기 때문에 친척들도 보증 서기를 꺼려했다. 이재하씨 부부는 자신들은 젊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헤쳐나가리라 수십 번 다짐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병원에 입원조차 시킬 수 없는 매서운 현실에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상태다.
8개월 유진이의 몸무게는 겨우 6kg. 백일된 아기보다 가볍다. 한창 기어 다니고 일어서며 걸음마를 시작할 시기. 그 작은 입술로 엄마 아빠 하며 품안으로 파고들 시기에 유진이는 고열에 시달려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다.
그저 더 이상 아프지만 않았으면, 그래서 더 춥기 전에 너른 마당에 나가 파란 하늘만이라도 맘껏 볼 수 있었으면…. 유진이 엄마 아빠가 바라는 너무도 소박한 꿈이다.
| | 인연은 하늘에서 맺어준다 | | | 인터뷰 뒤안길 | | | |
| | | ▲ 유진이네는 폐가나 다름없는 시골 빈집을 수리해 무상임대로 살고 있다. 마당 오른쪽에 조금은 허름한 듯한 구옥이 보인다. | | 유진이네 집은 원래 폐가나 다름없었다. 깨끗이 청소하고 손수 고쳐 살만한 집을 만들고, 난방비를 줄이려고 연탄보일러를 들여놓았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해 가장 싸게 부르는 곳에서 연탄을 주문했다.
연탄을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트럭에 앉아있는 아저씨에게 물 한 컵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해 갖다드렸는데 그 아저씨 낯빛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그 아저씨는 얼마 전 간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바로 고석봉씨였다.
고석봉씨는 <오마이뉴스>(2004.7.5)에 사연이 알려지며 많은 네티즌과 각계의 도움으로 지난 7월 15일 간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현재 몸이 회복하고 있다.
유진이의 사연을 들은 고석봉씨 부부가 이해석 목사(희귀·난치질환자 후원회장)의 연락처를 주며 정 힘들면 찾아가 보라고 했던 것.
유진이 부모는 그 연락처를 받긴 했지만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고 부모인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유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젊고 기특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원조차 시킬 수 없어 깊숙이 넣어놨던 연락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고.
유진이 부모는 고석봉씨 부부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해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