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담배소송'의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한 원고측 변호인단의 '재판부 기피신청'과 '법관 징계 신청' 문제를 둘러싸고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담배소송' 사건 그 자체도 큰 관심거리지만, 최근 재판부가 감정서 '요지서'를 작성해 배포하면서 불거진 재판부 기피신청 및 법관 징계신청 문제는 그 동안 '성역'으로 간주되던 법원을 향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건으로 법조계에서는 그 처리 결과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재조 및 재야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이번 사건이 원칙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공개적으로 문제삼을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 문제 처리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와관련 손지호 대법원 공보관은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재판부에 대한 기피문제에 대해서는 독립된 사건으로 다른 재판부(민사합의 13부)에 배당돼서 검토 중이고 법관징계신청에 대해서도 법률에 따라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징계 문제는 해당 법원장이 필요한 경우 징계위원회를 열고 문제가 되는지를 판단할 문제로 (아직까지는) 대법원이 관여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담배소송 관련) 감정서에 대한 요지서를 작성해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으나 그것으로 인해 법관에 대한 징계까지 이뤄질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해당 부서에서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만 있다"고 전했다.
또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부가 취재의 편의를 위해 요지서를 선의로 제공한 것은 틀림없다. 편파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고의성은 없는 것 같다"면서 "내년 2월 인사를 앞둔 재판장이 원고측 변호인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다보니 더 문제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변호사들 "재판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법원의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약 법원이 '유야무야(有耶無耶)' 이번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면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일단 감정서와 요지서 문제와 관련해 그 자체만 보더라도 재판부가 굳이 요지서를 작성해야만 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더구나 작성된 요지서 내용이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재판에 있어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를 통해 법관의 기본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 또 그런 식으로 재판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법원을 신뢰하고 재판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법원 내에서는 이번 사안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데 이런 잘못된 일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변호사의 경우 "이번 일은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법원의 신뢰에 큰 손실을 입힌 것"이라며 "판결로써 말해야할 재판부가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요지서'를 낸 것은 재판부의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어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의 경우 이번 사안을 어떻게 대응할지 여부에 대해 이사회 차원에서 긴밀히 논의 중이며, 법원에 대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 간부 "감정서는 하나의 '증거'인데 그것을 공개한 것은 납득이 안된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 검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 "재판부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감정서를 공개했다고 했는데, 감정서와 요지서의 내용이 편파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단순히 판단해 봤을 때 '감정서'는 담배소송 절차에서 하나의 '증거'일 뿐"이라며 "재판부는 감정서를 증거로 채택할지 여부만을 공개된 재판에서 판단해 밝히면 되는 데, 그 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재판부가 나서서 그 증거의 내용을 공개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며 "과거 국민이 매우 궁금해하던 중요사건에서도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된 문건이나 감정서를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재판부는 하나의 증거에 지나지 않은 감정서를 채택하지 하지 않으면 그만 일 수도 있었는데도 공개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재판 결과를 예측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서 "이번 문제를 놓고 법원이 쉽게 넘기려고 한다면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고 또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검찰청의 모 부장검사도 "담배소송과 관련된 감정서와 요지서 문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아서 잘 몰랐었는데 그냥 넘겨서는 안될 문제인 것 같다"며 "만약에 재판부가 증거에 대해서 채택하기도 전에, 또 채택하고 나서 일일이 공개하고 친절하게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해준다면 누가 그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생각을 하겠나"고 개탄했다.
| | '법관(재판부) 기피신청' 및 '법관징계신청'이란 | | | | '법관(재판부) 기피신청'은 재판을 받는 당사자(원고 또는 피고)가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될 경우 다른 법관(재판부)이 재판을 맡도록 해당 법원에 요청하는 제도로 재판 당사자가 해당 재판부에 기피신청을 하고 이에 대한 의견서를 3일내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재판부는 신청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거나, 규정에 어긋나게 되면 '각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 신청이유가 명백하지 않고 소송을 지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이유없다'는 기각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 해당 재판부가 신청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담당 사건이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각하나 기각 결정을 내려, 이에 신청인이 불복하면 '즉시 항고'를 하게 되면, 해당 법원은 다른 재판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기피신청'을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이때 기피를 당한 재판부에서도 의견을 제출해야 하며, 의견제출 기한은 없이 조속히 제출토록 돼있다.
다른 재판부에서도 사건이 기각되면 신청인은 고등법원에 '즉시항고'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절차가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관 기피신청'을 재판부나 법원이 받아들일 경우 법관의 편파 판결 우려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법관징계신청'은 사법부의 공정성과 신뢰를 손상시키고 법관의 품위와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킨 행위를 한 해당 법관에 대한 징계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이번 담배소송 관련된 법관징계신청은 법관윤리강령 제4조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에 따라 청원됐다.)
법원은 법관징계신청을 받게 되면 해당 법원장이 법관의 징계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경우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징계위원회회는 대법관 4명과 고등법원장 2명, 지방법원장 1명이 참가하게 돼있다. 징계의 수위는 최고 정직까지 가능하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