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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살이 오른 도루묵(구리 유통시장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도루묵(구리 유통시장에서) ⓒ 송영한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듣고 자란 '도루묵'에 관한 설화이다. 그러나 선조의 피난길은 한양에서 의주행궁까지 서해안을 따라 이어졌는데 비해 '도루묵'은 우리 나라 동해, 일본, 캄차카, 사할린, 알라스카 등 북태평양 해역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경 이 설화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서해 연안에 고향을 둔 필자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도루묵이란 고기는 먹어 본 적이 없다.

도루묵의 학명과 어원

도루묵은 농어목(Order Perciformes) 도루묵과(Family Trichodontidae)에 속하는 물고기로, 도루묵이, 도루매이, 은어라고, 함경남도에서는 도루매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Sailfin sandfish'로 불리며 일본에서는'하타하타(Hatahata)'라 한다.

어원은 설화와 달리 '가시가 많은 고기'라 해서 붙여졌고 한다. 가시가 많아서 '메;棘+기;棘'→멕→묵'의 이음동의어 합성과 모음(아래아) 변이로 처음에는 '메기'로 불리다 후에 등에는 얼룩얼룩한 호랑이 무늬가 있어 '도루;虎班+메;棘+기;棘'로 명명된 것으로 우리 말로는 '호문(虎文) 가시고기'가 정확한 표현이다. 일본 명인 '하타하타'도 바늘(hari)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니 가시가 많은 고기임은 분명하다.

실제로 도루묵은 사진에서 보듯 위턱보다 아래턱이 발달되어 합죽이 모양으로 입이 튀어나오고, 양턱에는 작으나 날카로운 2~3줄의 이빨이 있으며 아가미뚜껑 중앙의 가장자리에는 5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이상 도루묵의 학명과 어원을 살피며 "도로 묵이라 하라"는 말이 허언임을 반증하였다. 하지만 도루묵의 입장에서 보면 설화로 생긴 도루묵에 대한 선입견, 즉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이 가장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도루묵 요리를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빠지지 않고 배길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도루묵은 좋은 먹을 거리로 어떤 덕목을 지녔을까?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도루묵 찌개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도루묵 찌개 ⓒ 송영한
첫째 도루묵은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없다. 비린내가 없는 생선의 특성은 맛이 담백하다. 대부분의 담백한 생선들이 기름기가 너무 없어 살이 약간 푸석푸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도루묵은 EPA와 DHA가 듬뿍 함유되어 있는 불포화 지방이 적당히 포함되어 있어 살이 푸석푸석하지 않고 윤기가 흐른다.

둘째 가시가 많기는 하지만 도루묵은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뺀 가시는 그냥 씹어 먹어도 될 만큼 아주 연하다. 생선요리의 진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 고소한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뭐니 뭐니 해도 도루묵을 말하면서 도루묵의 알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루묵은 완전한 성어가 되어도 26cm쯤 밖에 안 되는 고기이나 그 알은 상당히 씨알이 굵다. 제 몸 보다 몇 배 더 큰 대구나 명태의 알도 도루묵의 알에 비할 수는 없다. 특히 명란은 젓갈로 만들어 먹으면 입 안에서 알이 터지 듯 오돌오돌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알을 익히면 목이 멜 정도로 푸석푸석해서 식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도루묵 알은 날 것은 물론 익혔을 때도 산초열매 같은 알이 입 안에서 쫀득거리면서도 꼬드득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치 갓 볶은 깨를 씹는 것 같은 고소한 그 맛은 천하일미라 하겠다. 이 도루묵 알은 원폭피해자들에게 특효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었다고 한다.

도루묵의 산란기는 11월∼12월 사이, 알을 밴 암컷을 '알 도루묵' 수컷을 '수 도루묵'이라 부르는데, 암컷의 알에 못지 않게 수컷의 곤지(精巢) 맛 또한 일품이다.

자 이제부터 슬슬 '도루묵 요리' 예찬을 펼쳐보자

보졸레누보와 도루묵 조림이 잘 어울릴까?
보졸레누보와 도루묵 조림이 잘 어울릴까? ⓒ 송영한
먼저 술꾼들의 해장으로 그만인 '도루묵 찌개'를 꼽을 수 있다. 냄비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깔고 도루묵을 앉힌 후 가는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다진 양파, 액젓을 섞어 만든 매운맛 양념을 풀어 끓인 찌개는 시원하면서도 살과 알과 곤지를 건져 먹는 맛과 함께 담백한 국물 맛이 끝내 준다. 또한 냄비 바닥에 깔린 양념이 배인 조린 무를 먹는 맛은 완전 덤이다.

다만 도루묵 찌개를 만들면서 주의할 일은 물을 적게 붓는 일이다. 도루묵은 물기를 조금만 가해도 먹을 수 있는 생선이라서 함경도에서는 '도루메기는 겨드랑이에 꼈다 먹어도 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도루묵 찌개는 별도로 육수를 끓여 조리하지 않아도 고기와 바닥에 깐 가을 무에서 나오는 제 국물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이 나오는 것이다.

도루묵 구이 또한 술꾼들의 안주로 그만이다. 참나무 숯불에 석쇠를 얹혀놓고 통통한 놈들 위에 굵은 소금을 흩뿌려 구울라 치면 매캐한 참나무 향에 그을린 알 도루묵이 먼저 톡톡거리며 그 알을 몸 밖으로 밀어내고 이에 질세라 수컷도 유백색 곤지를 내뿜는다.

알도 알이지만 약간 느끼한 맛의 곤지 또한 소주 한 잔과 어찌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먼저 삐져나온 알과 곤지를 먹고 나서 몸통에 고추장을 한 번 바른 다음 살짝 한 번 더 구우면 뼈를 발라내기도 아까운 도루묵 구이가 완성된다. 구이에 있어 주의 할 일은 굽기 전에 소금 간을 약간해야 살이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루묵 조림은 그야말로 밥 도둑이다. 조림용으로는 약간 꾸덕꾸덕(半乾燥) 말린 것을 쓴다. 무를 두텁게 바닥에 깔고 도루묵을 앉히고 갖은 양념을 한 간장을 끼얹어 연한 불로 졸인다. 물은 거의 붓지 않아도 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햅쌀밥에 도루묵 조림 한 점을 얹혀 볼이 메어지도록 한 번 먹어 볼까나?

마지막으로 도루묵 식해를 만들어 보자. 시집와서 아내가 가장 먹고 싶어 하던 것이 이 도루묵 식해였다. 아내는 나와 달리 동해안에 인접한 곳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 맛을 어려서부터 알고 있다. 식해는 김치, 청국장 등 장류와 같은 발효 식품이다. 우리가 음료로 마시는 식혜(甘酒)와는 다르다. 이는 주로 이북과 동해연안 지방에서 주로 먹는 발효음식이다.

도루묵 식해는 먼저 꾸덕꾸덕 말린 도루묵을 먹기 좋게 자른 후 엄지손가락 크기로 잘라 소금물에 절였다가 꼭 짠 무와 되게 지은 조밥을 액젓과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밀봉한 후 발효된 다음 먹는다.

밥 반찬으로도 그만이지만, 배추 속 쌈에 삶은 돼지고기와 함께 싸 먹으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없어져도 모른다. 거기에 탁배기 한 잔은 물론 기본이고….

이북에서는 가자미, 명태 등도 식해로 담아 먹는데 도루묵 식해가 이에 비해 뛰어난 것은 예의 그 알이 씹히는 맛 때문일 게다. 같이 넣어 삭힌 조밥이 알인지, 알이 조밥인지 모를 정도다. 마치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하는 것과 같다면 너무 형이상학적인 표현일까?

다시 찾아온 도루묵과 왕서방들의 농간

올해는 다행히 그동안 잡히지 않던 도루묵이 풍어를 이루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속초에서는 어민들이 지난 17일 열린 '동명성황제'에도 불참하고 유자망 어선을 몰아 도루묵 잡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이렇게 애써 잡은 도루묵의 산지 위탁가는 한 두름(20마리)에 6000∼7000원에 불과한데, 심지어 같은 강원도 도시지역에서는 2만원에 육박한다 하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라는 속담처럼 중간 상인들의 농간이 여간 아닌 모양이다.

힘들여 고기를 잡은 어부들을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주말을 통해 직접 여행을 다녀오거나 현지 수협을 통해 직거래를 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듯하다.

보졸레누보와 도루묵찌개

엊그제 아끼는 후배가 "형! 올해 나온 '보졸레누보'야. 형수랑 분위기내라고…" 하며 와인 한 병을 손에 쥐어 주었다. 덜렁덜렁 와인 한 병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니,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아내는 마침 도루묵 찌개를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위 간 요리 아니면 최소한 안심스테이크 정도는 돼야 어울릴 것 같은 보졸레누보와 도루묵 찌개. 그 모양새가 어쩐지 어색한 것 같지만 어울리지 않으면 또 어떤가? 도루묵의 명예회복(伸寃)을 위해서 보졸레누보가 들러리 좀 서고 이로써 또 하나의 퓨전식단이 탄생하는 것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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