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비에 그 자식'이란 말이 있다. 좀 비하하는 표정이 스며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자식이 어버이의 핏줄이라는 말뿐만이 아니라 어버이가 하는 행동을 꼭 닮기 마련이라는 뜻이 더 크게 담겨 있다. 그 말을 좀더 깊이 음미해 보면 그만큼 부모의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몹쓸 문화인 원조교제를 휴대폰으로 이용하는 철없는 여학생들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대학입시 수험장에서 부정행위까지 하고 있는 세상이다. 과학 문명을 너도나도 앞 다투어 차지하려고 애쓰지만 정신문화는 철저히 외면하는 데서 오는 인격 파괴 현상이다. 이럴 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성공한 사람에겐 특별한 부모가 있다>! 한때 유행 제목이 되다시피 했던 '~에는 ~가 있다' 흉내 내기 책이 또 한 권 나왔군 생각했다가, "아니구나!"하고 이마를 쳤다. 읽어나가다가 나는 느닷없이 만족하여 미친 사람처럼 "히히히" 웃기도 하고, 가슴에 물기가 "퐁퐁" 솟기도 했다. 추락할 가능성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틀림없는 성공인 10인의 부모 이야기에서 감동을 자주 받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부모 이야기. 고백하건대, 나는 장영희 교수의 칼럼이 그분의 사진과 더불어 이따금 일간지에 나올 때 "잘 생긴 교수님이다"란 생각을 하였을 뿐, 그분이 양다리와 오른쪽 팔이 마비되고 사지 중에 왼쪽 팔만 멀쩡한 1급 지체 장애인인 줄 철저히 몰랐었다.
고(故) 장왕록 전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생전에 부인 이길자씨와 함께 셋째인 장영희 교수의 초등학교 입학 문제 때문에 무척 고심하였다고 한다.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느냐, 재활원 부속의 특수학교에 보내느냐의 기로에서 결국 연세대 재활원의 특수학교에 맡기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딸이 지속적으로 재활교육을 받으면서 공부하고, 다른 아이들의 따돌림이나 놀림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때의 상황을 <성공한 사람에겐 특별한 부모가 있다>의 '아름다운 그녀, 장영희' 편에 보면 이렇게 그려놓았다.
장영희 교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특수학교를 찾아갔다. 그러고는 '닥터 로스'라고 불리는 미국인 의사에게서 건강 진단을 받았다.
(중략)
"방에 들어서는 순간 휠체어에 타거나 목발을 짚은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저에게 쏠렸어요. 어머니는 저를 휠체어에 앉히셨죠. 어머니가 제 무릎에 손수건에 싼 삶은 달걀을 놓으시는 동안 저는 아버지를 쳐다봤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제 눈길을 피하시는 거예요."
특수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가족 면회가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일 년에 몇 번만 허용됐다. 장영희 교수는 울기 시작했고, 옆에서 이를 지켜본 부모는 차마 아이를 특수학교에 남겨놓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 태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영희 교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아까 닥터 로스 구두 봤어?"
"아니, 왜?"
"구두가 얼마나 큰지 물에 띄우면 내가 탈 수 있는 보트만 해."
"여보, 우리 영희는 문학 공부를 시켜야겠어. 이런 아이는 특수학교 말고 일반학교에 보내 여러 아이들과 함께.(이하생략)"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다. 장왕록 교수의 이 판단이 없었으면 오늘날의 장영희 교수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영희 교수 드라마의 시작일 뿐이다.
"공부보다 학교 가는 게 더 큰 문제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어머니가 저를 업어서 데려다 주셨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화장실에 데려다 주기 위해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에 오셔야 했기 때문이죠. 그때 신경성 요뇨증 같은 게 있었던지, 어머니가 오시면 가고 싶지 않던 화장실도 어머니가 가시기만 하면 갑자기 급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엄마는 틈만 나면 학교로 뛰어오셨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썼다는 일기 '엄마의 눈물' 인용문은 마침내 내 눈에서 눈물이 조금 나오게 하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의 연탄재 부수는 소리에 잠이 깼다.(중략)
학교 갈 때, 엄마가 학교까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깔아놓은 연탄재 때문에 흰 눈 위에 갈색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위로 걸으니 별로 미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올 때는 내리막길인 데다, 눈이 얼어붙는 바람에 너무 미끄러워 엄마가 나를 업고 와야 했다. 내가 너무 무거웠는지 집에 닿았을 때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고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땀 흘리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엄마의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이 눈물같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중략) 엄마 20년만 기다려요. 소아마비 누워서 떡 먹기로 고치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내가 엄마 업어 줄게요."
이밖에도 장영희 교수가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놀리거나 장영희 교수의 걸음걸이를 흉내 낸 이야기, 타는 게 느리다며 서지 않는 택시를 잡으려고 꽁꽁 얼어붙은 모녀 눈사람이 되어 서너 시간씩 서 있는 이야기, 간신히 택시를 잡았어도 골목까지 가자고 한다고 운전사에게 구박받던 이야기 등이 읽는 이의 마음을 간절하게 울려준다.
'아름다운 그녀, 장영희'의 말미에는 장영희 교수가 생각하는 교육관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 가운데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하고 내가 무릎을 탁 친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아이들에게 독서를 많이 권했으면 해요. 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머리나 마음이 텅 빈 사람은 말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인 하재식씨가 쓴 이 책에는 앞에 예를 든 장영희 교수, 3년 8개월간의 환경부장관 재임 기간 동안 최장수 장관, 역대 최장수 여성 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운 김명자 17대 국회의원, <상도>의 소설가 최인호 등 모두 10명의 성공한 사람 부모 이야기가 소중하게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