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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자신이 침해당하지 않으면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언론을 통해서 간간이 접하는 어느 기관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문제도 관계자 외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남의 일일 뿐이다. 하물며 살인이란 죄명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은 더욱 관심 밖이다.
어느 사회든 살인죄라는 죄명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되면 대체로 가족마저 외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도소 내에서의 생활환경도 마찬가지다. 교도관들 역시 살인죄로 수감 중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부모가 있고 가족이 있다. 부산인권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내용은 이렇다.
그는 부산 화명동에 사는 67세 된 노인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살인죄로 15년형을 선고받고 6년째 복역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해 왔다. 나이가 많아 아들을 돕는 것이 힘에 부쳐 보였지만, 그는 지금도 아파트 경비 일을 하면서 정신지체인 딸을 돌보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건은 6년 전 양복점을 하던 자신의 가게 앞에서 발생했다. 가게 앞에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 시비가 붙어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그 결과 자수한 아들은 살인혐의로 구속되었고 1심 재판부는 아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눈앞이 캄캄해진다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2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후 그는 부산, 청송, 진주, 마산, 부산, 광주교도소로 옮겨 다니는 아들의 옥바라지를 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전화로는 안 되겠는지 사무실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들이 수감됐던 ○○교도소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다. 면회하러 갔던 그는 아들에게서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아들은 ○○교도소 보안과 조사실에서 수갑과 쇠사슬에 묶여 교도관들에게 머리와 가슴을 수십 차례 차이고 구타당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들이 잘못했으면 규정에 따라 조치를 취하지 왜 교도관들이 집단으로 폭행하느냐'며 거세게 항의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폭행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고 법대로 하라는 말뿐이었다.
그 사건 이후 아들은 곧바로 다른 교도소로 보내졌고 지금은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한 달에 두 번 면회할 기회가 있지만 자주 가지도 못하고, 갈 때마다 아들의 호소가 이어지니 괴롭기만 했다. 그러나 그로서도 돈이 없으니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할 수도 없고, 하소연 할 데도 없어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
게다가 아들이 살인죄로 복역 중이다 보니 어디다 대놓고 말하기도 어려웠단다. 폭행 사건의 목격자였던 동료 재소자들은 이미 돌아선 뒤였다. 그렇지만 아버지 김씨는 면회를 갈 때마다 아들을 걱정하며 아들이 교도소에서 겪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다가 부산인권센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인권단체들은 노동자들이나 학생들만 도와주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부산 인권센터를 찾은 그가 차분한 어조로 그간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비닐봉지에 담아온 여러 통의 편지를 내놓았다. 그리고 아들의 15년 징역형에 대한 도움보다는 교도소에서 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아들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겪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지 모를 아들이 교도관들에게 이유 없이 폭행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인죄를 지었어도 때리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처럼 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싸운 한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과 그 과정에서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 아들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정신지체 장애인인 딸자식과 아파트 경비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넉넉지 못한 생활 속에서도 남이 뭐라 하던 아들을 위해 뭔가 하려는 그의 애틋한 마음에서는 숙연함이 느껴진다. 누구 하나 면회 가지 않는 아들을 위해 오늘도 아버지는 아들을 걱정하는 편지를 쓸 것이다. 그에게는 '교도소 수용자 인권'은 어렵고 복잡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죄를 지어 교도소에 갇혀 이미 법적 처벌을 받고 있는 이에게 또 다시 집단구타나 폭행을 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인권이라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권을 외치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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