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역사적으로 성적소수자는 숱한 박해를 받아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고 있다. 사진은 성적소수자의 삶을 다룬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 한 장면
역사적으로 성적소수자는 숱한 박해를 받아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고 있다. 사진은 성적소수자의 삶을 다룬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 한 장면 ⓒ 자료사진
동성애란 단어는 엄밀히 말해 인권 용어가 아니다. 유엔에서는 보통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또는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이라고 한다. 성적 지향은 자신의 성적(性的) 또는 감정적 욕망을 느끼고 표출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성 정체성은 한 특정 성에 대한 깊은 내면적 소속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및 인권 침해가 행해져 왔다는 데 있다. 이렇게 차별받는 집단을 성적소수자(sexual minority)라고 부른다.

최근 동성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역사적으로 성적소수자는 숱한 박해를 받아왔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차별에 대한 절망이나 항의로 생명을 포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www.lgbt.or.kr 참조).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인권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대처하려는 시도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2003년 봄 제네바,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55년만에 성적 소수자의 인권문제가 유엔 인권위에 정식으로 제기되었다. 브라질 정부가 제출한 성적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관한 결의안은 캐나다와 유럽 국가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슬람 국가와 바티칸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논의는커녕 안건 상정조차 못한 채 다음 해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올해도 강한 압력으로 인해 브라질 정부는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의 논리는 동성애가 종교적 교리에 위배되고 각국의 문화적 전통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결의안은 성적 지향을 구실로 한 인권 침해를 막고 성적소수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였지만 반대자는 성적 지향 자체를 특정 지역과 문화의 도덕과 종교윤리의 잣대로 판단하였다. 1990년대 초반 유행했던 인권의 '보편성 - 특수성' 논쟁이 성 정체성을 둘러싸고 다시 등장한 셈이다.

그러나 유엔 자유권조약위원회(HRC)는 1994년에 이미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ICCPR) 2조와 26조의 '성(性)'에 따른 차별금지 조항을 근거로 성적 지향은 모든 차별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고, 이와 관련한 인권침해에 대해 여러 번 관심을 표명해왔다. 그리고 고문, 비사법적 처형, 인권옹호자 문제를 다루는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과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분과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구금·고문·처형당하는 것은 분명한 인권 침해임을 지적하였다.

성적소수자의 인권문제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갈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민주주의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효과적인 제도로 알고 있지만 다양한 소수자 집단에게 민주주의는 때로 인권 침해의 구실을 제공한다. 성 정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다수자인 이성애자 중심의 제도이다. 역설적으로 국가는 다수인 이성애자의 이름으로 소수자의 인권 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제도화된 인종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한 직후인 1996년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에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 인권 선진국 또는 문명국가라고 은근히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서구의 어떤 나라보다도 앞선 용감하고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호주제 폐지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사회는 아직도 남녀의 성 자체에 의한 차별 문제로 씨름중이다. 성적소수자의 인권운동은 편견과 무지와의 싸움으로 비유된다. 국가 권력의 무감각과 무책임은 이런 편견과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더디게 하고 있다. 따라서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은 보수적인 사회와 관료적인 국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국제 인권운동에서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 침해를 또 다른 인종 차별로 간주하기도 한다. 인류는 20세기 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됨으로써 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제도화된 인종차별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날 온갖 종류의 차별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며 새로운 종류의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성과 관련된 차별 철폐는 21세기 인류 최대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66년 채택된 유엔의 인종차별금지협약은 "인종차별에 근거한 어떠한 우수 인종 학설도 과학적으로 허위이며 도덕적으로 규탄 받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부당하고 위험하며 또한 어느 곳에서든 이론상으로나 실제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전문에서 강조하고 있다.

천부인권설에 따르면 인간 존엄성의 표현인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적 투쟁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권은 무지와 편견과의 싸움을 통해 발견하고 향유하는 것이다. 인권 후진국에서 커밍아웃(coming out,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두려움과의 싸움이지만 인권선진국에서는 모두의 축하를 받아야 할 사건이다. 타인(이성이든 동성이든)을 사랑한다는 것은 죄가 아니라 축복이다. 오히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이야말로 죄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