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을 철폐하라."
"국보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7대 국회의 국가보안법 처리 여부가 난항을 겪고있는 가운데 국가보안법 철폐를 촉구하는 시위가 4일 오후 2시(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렸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 공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베를린에 거주하는 교민, 유학생, 독일인을 비롯해 프랑크푸르트, 보훔, 마인츠 등 독일 곳곳, 멀리 네덜란드에서 참여한 참가자 등 총 60여명이 모여, 국가보안법 철폐를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행사를 진행한 최인수(베를린 거주 유학생)씨는 서두 발언에서 이날이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정확히 56년 3일째가 되는 날이라고 설명하며 이날 행사를, 서서히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국보법의 종지부를 찍는 기회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행사 초반부, 박수진(베를린 거주 유학생)씨가 국가보안법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 후 마이크를 잡은 민주노동당 유럽지구당 사무국장 장광열씨는 앰네스티 국제위원회가 국가보안법과 관련, 한국의 주요 정당에 보낸 공개서한을 소개하며 국가보안법 철폐의 정당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장 국장은 국가보안법의 여러 조항들이 비폭력적 정치활동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의사 표현, 결사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한국정부가 인준한 국제인권법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인권단체 등이 이미 수차례 국가보안법의 전면 개정 또는 폐지를 촉구했음에도 불구,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비판하며 인권탄압국의 오명을 씻기 위해서 하루 빨리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70년대 이후 해외에서 고국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후, 입국이 불허되었던 몇몇 인사들은 국보법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히며 시대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여전히 '건재'한 국보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종한(베를린 세종학교 교장) 선생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을 비롯, 매년 수만명이 남북한을 오고가는 현재의 상황을 국가보안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반문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국보법의 문제점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지난해 민주인사 고국방문 대상자에 포함되었으나 고국방문을 거부한 바 있는 이영준(한민련 유럽본부) 선생은 국가보안법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역사청산 문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통해 한국사회를 상식 위에 다시 세우고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해 37년만에 고국을 방문했다가 고초를 겪었던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는 "국가보안법은 21세기에는 도저히 존재해서는 안될 법"이라고 강조하며 "17대 국회가 반드시 국보법 철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진 민노당 유럽지구당 위원장 오복자씨의 시국에 대한 견해 표명 후, 행사참가자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동포 성명서를 낭독했고 행사 마지막 순서로 지난 56년간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국보법을 상징하는 박을 터뜨렸다.
이날 행사에는 베를린 거주 교민 2세 등으로 구성된 풍물놀이패가 참여, 차가운 날씨 속에서 진행된 행사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 |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되어야 합니다! | | |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 공동위원회 성명서 전문 | | | | 최근 한국의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논의는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이른바 ‘국가 안보’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저항에 놀라, ‘완전폐지’가 아닌 ‘대체 입법’ 또는 ‘보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와는 사실상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국가안보’가 문제라면, 형법상의 간첩죄도 있고, 군사기밀 보호법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보안법의 대체나 보완이 아니라, 바로 ‘완전한 폐지’입니다. 이는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이며, 대한민국이 세계 안에서 부끄럽지 않은 민주국가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에 관한 것입니다.
1948년 12월1일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의 첫번째 문제점은, 제1조와 제2조에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평화적 통일의 원칙과는 근본적으로 어긋납니다. 그리고 바로 이 규정 때문에 통일을 위한 민간 차원의 모든 노력이 지난 50여년간 국가보안법 상의 잠입, 탈출, 회합, 통신, 고무 및 찬양 등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와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을 요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난 50여년 간 체포되거나 투옥되어 고문을 받았고 심지어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국가보안법이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경계선를 넘나드는 교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두번째 문제점으로는, 국가보안법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상, 양심, 표현 및 학문의 자유와 같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UN에 보고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겨우 1년 만에 약 120,000명의 민간인과 약 9,000명의 군인이 구속되고 처벌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20세가 넘은 100명의 성인 중 1명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처음 2개월 동안 정치 활동을 하는 120개의 정당과 사회기관이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해체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국가보안법은 독재 정권 하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적 표현과 행동을 모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철옹성 같았던 군사 독재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계속해서 구속자를 낳았습니다. 1991년 이후 지난 2002년까지 3047명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100여명의 구속자가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양심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은 결코 보장될 수 없습니다.
반가운 사실은, 지난 2004년 9월 5일에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은 구시대의 유물이므로 당장 폐기하여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주장과는 정반대로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서 스스로를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사회 구성원들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그 밑바탕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과는 정확히 위배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시급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마치 한국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떠드는 자들에게 여기 모인 우리는 힘주어 외칩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요, 민주시민에 대한 모욕이다.”라고 말입니다. 다수 국민의 행복이 보장되는 정상적인 사회, 인권이 존중받는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리고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시대착오적 국가보안법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유럽 공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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