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일주일간 강행한 국회본관 앞 단식농성에서 가장 짧은 말을 한 정치인은 누굴까?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권 의원의 손을 꼭 잡은 뒤 "압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
가장 부지런히 농성장을 찾은 정치인은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천 원내대표는 거의 매일 가장 먼저 농성장을 찾아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라는 말을 던지고 갔다고 한다.
권 의원 홈페이지(www.ghil.net) 칼럼란에는 이같은 농성 뒷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눈길을 끈다. 이 칼럼에 따르면, 국회 본관 앞에 농성장을 설치한 덕분에 권 의원은 거의 모든 의원들로부터 '아침 문안인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권 의원 자신이나 농성장 사진을 찍는 보좌관이 방문한 의원들의 얼굴을 몰라 곤혹스러웠다는 후문이다.
'릴레이 단식'으로 오인받은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일화도 흥미롭다. 이 의원은 농성장에 오자마자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논평을 내라고 전화를 걸었는데 그 사이에 권 의원이 화장실에 가자 농성장에 혼자 남은 것. 이 때문에 이 의원은 농성장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릴레이단식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고 한다.
다음은 권영길 의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칼럼 전문.
허성관의 썰렁개그와 기만적 사과
농성 이틀째는 아침부터 허성관 행자부장관의 썰렁개그로 시작했다. 농성장을 방문한 허 장관이 단식을 빗대 '다이어트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한 것. 단지 농담이었지만, 그래도 듣는 입장에선 무척 썰렁한 농담이 아닐 수 없었다. 농담이 너무 썰렁해서 우리는 속으로 노무현 정부를 참여정부가 아니라 '썰렁정부'로 규정할까 생각했다.
당원, 지지자의 방문도 이어졌다. 이용길 충남도당 위원장을 비롯해 아침에는 서울시당 당원들이 대거 왔다갔다. 박창완 위원장은 각종 겨울용 등산장비 일체를 가져왔다. 그 중에는 벙거지 모자도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하는 국회의원, 장관들과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그냥 외면하고 가기는 부담스러운 위치였다. 그 바람에 '정말 자리를 잘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해찬 총리는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출퇴근길에 계속 권 의원을 만나면서 "여기 지날 때마다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근태 장관은 아무 말도 없이 권영길 의원의 손을 꽉 잡더니 잠시 후 "압니다!"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농성 중에 옆에서 들은 말들 중에 가장 많은 여운과 가장 많은 함축을 담고 있는 말 같았지만 정확히 뭘 안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고가는 국회의원이 너무 많다보니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홈페이지에 사진과 설명을 올리고 있는 신재영 보좌관은 고민이 심했다.
국회수첩을 보고 얼굴을 대조해 보기도 했지만 워낙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아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우리만 모르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한번은 모의원과 권영길 의원이 10분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단독 대화를 나누고 갔다. 우리가 이름을 알아볼 요량으로 그 의원이 지나간 뒤에 권 의원에게 물어봤다.
"의원님. 저 분 이름이……?"
"어… (지역구가) 충청도 어디래…. (찾아 봐.)"
국회의원이 300명에 달하다보니 의원들끼리 이름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한 듯 했다. 결국 고민 끝에 누군가 "채증한 국회의원 사진을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에 의뢰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밤 10시쯤 평온하던 농성장에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허성관 장관이 기자들을 대거 동행하고 나타난 것이다. 허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담요 속에 권 의원과 함께 발을 넣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침에는 썰렁개그를 하고, 밤에는 언론용 사과를 한 셈이다.
권 의원은 일단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의 내용과 형식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허성관 장관이 언론플레이를 하려고 농성팀도 모르는 사이에 기자들한테만 사과성명과 방문계획을 알려주고 기습 사과방문을 한 거였다.
문제는 언론이었다. 연합뉴스에는 사진과 함께 허 장관이 사과했다는 사실만 간략히 나오는 바람에 잘못하면 언론에는 정부가 사과한 걸로 나오고 우리는 속 좁게도 사과를 안 받아들인 채 정치투쟁에만 골몰하는 집단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고민이 오고갔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허장관의 사과를 왕무시 하기로 했다. 그 동안 이 정부가 우리를 무시한 것에 대해 우리도 왕무시로 대응한 것이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조를 짰다. 권영길 의원과 텐트에서 함께 자는 동침조로 내가 결정되었다. 그런데 내가 막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일부에서 강력한 태클이 들어왔다. 이유는 발 냄새가 너무 심하다는 거였다.
나는 과거에 발 냄새 때문에 각종 분회모임 등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었다. 잘못하면 진보정당의 자존심을 건 이번 농성 투쟁이 발 냄새 때문에 무산될 위험이 생긴 거였다. 나는 재빨리 발을 씻고 왔다.
얼결에 발을 씻고, 헝겊으로 만든 집에 누워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우리 말고 의회 밖에서 농성중인 많은 사람들도 생각이 났다. 우리가 농성을 시작하기 전에 집창촌 여성종사원들이 20일 넘게 단식 중이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타워크레인에 들어간 동지들도 생각났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내일 아침에는 더 세게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는 경향신문 제목을 보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혹 떼려다가 혹 붙인 허장관"
권영길의 농성정치
여전히 아침부터 수많은 국회의원들, 장관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농성장에 들려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간다.
한 국회의원은 지나가면서 "아침 문안인사 드립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어느덧 권영길은 모든 국회의원들이 매일 아침 만나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부지런하다. 거의 매일 제일 먼저 오는 것 같다. 그는 권 의원에게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라는 말을 던지고 갔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권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는데 워낙 인사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옆에 있던 한 보좌관은 "권 의원이 너무 앉았다 일어났다 해서 관절염 걸릴까 걱정이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부담때문에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386의원들 중에는 권영길 의원 때문에 정문으로 드나들기 부담스러워 뒷문으로 다니고 있다고 사석에서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공무원 노조 국회본부 관계자들도 들렸다. 그들은 "저희들 때문에…"라고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권영길 의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기죽으면 안돼!"
오후에는 김문수 의원이 들렸다. 권영길과 김문수, 두 사람의 대화는 옆에서 보기에 동문서답 같았다. 김문수 의원이 먼저 달려오며 말했다. "형님! 이 명당 자리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영길 의원이 대뜸 말했다. "빨리 입당해!"
김문수 의원은 권의원 말에는 아랑곳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남북관계 발전 기본법도 처리해야 하는데….”
“빨리 입당하라니까. 민주노동당 집권하기 전에.”
“이 총리가 사과 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빨리 입당해.”
이재오 의원도 왔다. 이재오 의원은 오자마자 한나라당이 권 의원 농성에 통 관심이 없다며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전화를 했다.
"아니 대변인실 ! 이런 걸 가지고 논평을 내야지 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재오 의원이 약간 오바하고 있는 사이에 권 의원이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결과적으로 농성장에는 이재오 의원이 혼자 앉아있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이재오 의원이 단식중인 걸로 오해하기 십상인 장면이었다. 실제로 일부 보좌관들이 지나가면서"혹시 이재오 의원이 릴레이 단식하는 겁니까"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재오 의원은 "릴레이단식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국방문제에 관한 강경파로 유명한 송영선 의원도 왔다. 송 의원은 "색깔은 다르지만 존경합니다. 사석에서 오빠라고 부릅니다"라는 말을 하고 갔다. 이규택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얘기해야겠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김무성 의원도 왔었는데 때마침 옆에 있던 심상정 의원을 가리키며 "우리 심 의원 상임위 빠지면 안 됩니다"라고 권 의원에게 강조했다. 일찌감치 농성이 민주노동당 전체로 확대되는걸 경계한 셈.
가만 보니 어느덧 국회 현관 앞, 권영길 의원의 농성장이 또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거점이 되고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농성장 위로 국회의원, 장관부터 노동자, 사회운동가, 당원들이 지나가면서 각종 정보와 의사소통이 모이고 있었다. 농성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과 권 의원의 건강을 걱정하는 근심도 쌓이고 있었다.
바로 이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국회 모든 상임위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신문을 보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모든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 공간에서 만큼은 모두가 동지였다. 하루속히 어둡고 고통스런 시간이 끝나길 바라는 공통의 염원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뜨거운 연대가 싹트고 있었다.
권영길의 농성이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지지기반과 정보와 소통과 희망이 모두 집중되는 고도의 정치적 근거지가 형성된 것이다. 가히 '권영길의 농성정치'라고 부를 만 했다. 농성 3일째, 다시 또 깊은 밤이 찾아왔을 때 권영길 의원은 어느덧 '국회 밖의 국회의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발을 씻었다. 국회의원과 함께 자는 동침조 편성 과정에서 수석보좌관이 코를 많이 곤다는 이유로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