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을 닮아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은 자연을 닮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는 뜻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 왔으며 그 속에서 경험을 쌓고 질서를 발견하면서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물을 건조하였다. 따라서 건축 공간 속에는 자연의 법칙과 질서가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다.
자연의 질서를 연약한 우리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벽에 동이 트고 한낮을 지나 노을진 저녁이 찾아온다. 그 속에서 봄은 소리 없이 가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다가오고 어느새 겨울이 와 저물면 또 다시 봄이 찾아드는 순환의 연속이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가 마치 음악의 리듬처럼 건축물에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인간에게 절대적 가치인 빛과 물은 자연의 가장 원초적인 본질이다. 빛은 인간은 물론 자연을 동시에 종속시킨다. 건축에 있어서 빛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채광이나 차광을 목적으로 처마의 깊이로 빛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지혜를 선조들은 벌써부터 터득하였다. 빛에 의해 건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똑같은 형태와 공간이 빛의 양과 방향성에 따라 다른 질감과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물은 그 주변의 환경에 철저히 순응한다. 빗물이 떨어져 개울을 따라 시냇물을 이루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면서 수직적인 역동성(낙수)과 수평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물은 또한 인간에게 생명감과 생동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인간은 물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건축물과 조화롭게 활용하여야 하는지를 잘 터득하고 있었는데 특히 호수에 건물이 비쳐질 때 수면 위아래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 극적인 신비감을 연출하는 안목이 뛰어났다.
우리 선조들은 굴뚝을 '연가(煙家)'라고 불렀다. '연기 나는 집'이라는 뜻인데 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만큼 굴뚝을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굴뚝의 원활한 기능뿐만 아니라 외부형태 및 장식에도 여간 정성을 들이지 않았는데 이는 오래된 우리 온돌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궁궐은 물론이고 반가에서도 대부분 크고 작은 후원을 두었으며 후원에서 썩 물러나 담장과 이웃하여 정겹게 연가를 세웠던 것이다. 굴뚝을 세울 때에도 주택의 규모와 구조에 따라 두세 개를 각기 다른 형태로 세웠을 뿐만 아니라 길상문이나 장생물(長生物)을 새겨 넣어 속세를 떠나 하늘로 오르는 연기를 신성시하여 그 속에 인간의 수복(壽福)을 담고자 갈망했던 것은 아닐까?
"동산이 담을 넘어 들어와 후원이 되고, 후원이 담을 넘어 번져 가면 산이 되고 만다. 담장은 자연 생긴 대로 쉬엄쉬엄 언덕을 넘어가고 담장 안의 나무들은 담 너머로 먼산을 바라본다. 후원과 담장을 천연스럽게 경계짓는 것이 담장이며 이 담장의 표정에는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혜곡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
담장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두어 놓기도 한다. 담장 안에 있으면 안도감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궁궐 안에서는, 특히 여성이 사는 공간은 마음대로 밖으로 드나들 수 없었기 때문에 늘 안에서 바라보는 것이 담장이었다. 만일 담장이 똑같은 색과 모양으로 둘러쳐져 있다면 마음 속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담장에 그림과 글자를 풍성하게 그려 넣고 각종 꽃문양을 심심지 않게 베풀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나마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는 재치를 한껏 부렸다.
우리나라 궁궐 담장은 일본이나 중국의 것처럼 그다지 높을 것도 없고 낮을 것도 없어 돌담 사이로 인간미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