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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쌀개방 협상 중단과 국민투표 실시 촉구 2004전국농민대회'.
지난달 13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쌀개방 협상 중단과 국민투표 실시 촉구 2004전국농민대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올 연말 서울 도심은 농민들의 함성으로 뒤덮일 듯하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타결된 쌀 관세화 유예 기한 10년이 끝나는 12월 31일전까지 미국·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쌀 협상을 끝내야 한다며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쌀 관세화 의무가 발생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농민들의 투쟁력도 급속히 결집되고 있다. 쌀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이어질 관세화에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농민들의 감정 역시 점차 격앙되는 상황이다. 전농 등 농민단체는 전국 각지에서 결집되는 힘을 모아 연말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연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의무수입물량 8%·쌀 관세화 유예 10년, 그 후에는?

현재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것.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조금씩 새나오는 쌀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한 예측은 농민들의 감정을 조금씩 건드리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부는 주요 쌀수입국가인 미국·중국과 어느 정도 협상의 진전을 이뤄냈다. 정부가 두 국가와 의견 접근을 본 내용은 ▲현재 4%인 쌀 의무수입물량을 8%로 높이고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을 다시 10년 연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가외'로 요구하는 내용도 있다. 중국은 학교급식 등에 중국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점, 즉 가공용으로만 유통되는 쌀을 급식용으로 쓸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쌀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광우병 때문에 수입 금지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제한 조치를 풀어달라는 것 등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처럼 겉으로는 정부가 '쌀 관세화 유예'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농민들은 드러나지 않은 정부의 속마음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 현재 농림부 등 정부 일각에서는 쌀 관세화 유예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고 다른 조건을 수락하면서까지 관세화 유예를 고집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농민단체들이 우려하는 것도 자칫 정부가 이 같은 계산을 해 '쌀 관세화'로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알려진 것처럼 쌀협상 결과 '관세화 유예 10년 연장' 결론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농민들의 반발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알려진 협상 내용에는 10년 더 관세화 유예를 한 후 어떻게 될지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최대한 10년을 벌어놓는다 하더라도 그 후에는 전면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예년과 분위기가 다르다", 20일 '트럭 1만대' 대규모 차량시위

이같은 농민들의 우려와 반발은 이미 집단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일 전농 소속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농기계 반납시위'를 벌였다. 경남과 경북, 전남, 전북, 경기, 강원, 충남지역 70여곳 시군구의 농민들이 무려 3000여대의 트렉터와 경운기를 이끌고 관할 관청으로 몰려들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민이 연행되고 경찰과 대치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도 전개됐다.

전농 관계자는 "이날 시위의 의미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농기계를 반납한다는 뜻"이라며 "쌀협상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파업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지난 8일에는 문경식 전농 의장 등 농민단체 대표 7명이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여기에 국회의원들도 힘을 보태는 상황이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 76명은 9일 오전 정부의 쌀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협상 상대국의 요구내용을 받아들일 경우 한국농업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며 "쌀 협상을 내년까지 연장해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국회와 협상 상대국에 지체없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농의 요구도 이와 유사하다. 우선 현재 진행중인 협상을 중단하고, 쌀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협상해야 한다는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또 협상 과정을 세세히 밝히고, 필요하다면 '국민투표'와 같은 국민적 합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은 집단 행동을 통해 투쟁력을 모으는 중이다. 지난 7일 경북 영주에서 열린 농기계 반납 시위.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은 집단 행동을 통해 투쟁력을 모으는 중이다. 지난 7일 경북 영주에서 열린 농기계 반납 시위. ⓒ 전농 제공
한편 전농은 이 같은 각계의 힘을 모아 오는 20일 서울 도심에서 트럭 1만대를 몰고 와 대규모 차량 시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물론 매년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서울에서는 농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전농 관계자는 "농기계 반납 시위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처럼 성황을 이룬 것은 몇 년내 처음"이라며 "그 만큼 농민들의 감정이 격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오는 20일 농민대회는 여의도로 예정돼 있지만, 전농은 종로나 광화문 등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의 집회도 고려중이다. 20일 오후가 되면, 분노한 농심(農心)이 자칫 청와대를 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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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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