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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능선따라 600m 성벽을 따라서
해안가 능선따라 600m 성벽을 따라서 ⓒ 김강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날 때, 나는 늘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떠올린다. 유명한 관광지로 통하는 길은 넓고 반듯하여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만, 때묻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길은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길에서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의 핸들 위에 지도 한 장을 펼쳐든 나는 서귀포시 예래동 삼거리에서 머뭇거렸다. 서귀포에 숨어 있는 70경을 찾기 위해서 관광지도는 내가 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가야 할 목적지는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돌로 성벽을 쌓아놓은 환해장성. 세 갈래 길에서 바라본 서귀포의 풍경은 돌담 위로 얼굴을 내미는 노란 감귤이 만추를 그려낸다. 계절은 겨울의 한가운데 와 있는데도 서귀포는 아직 가을이 한창이다.

환해장성에서 바라본 예래동의 바닷가
환해장성에서 바라본 예래동의 바닷가 ⓒ 김강임
예래동의 마을 끝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는 풍경의 수려함과 성난 파도를 연상하는 겨울바다의 특별함은 결코 아니었다. 해안선을 따라 돌로 성벽을 쌓아 놓은 곳, 돌 하나 하나에 새겨진 경계선의 의미. 마치 제주돌담을 쌓아놓은 것처럼 꼬불꼬불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노라면 왜구의 침입에 저항한 항쟁의 역사가 겨울바람을 몰고 온다.

제주의 바다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바다를 청정의 바다와 낭만의 바다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왜구의 침입으로 수난을 당했던 바다로 얘기한다면 아마 의아해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다를 통해 끊임없이 외부의 침략을 받아왔듯이 제주도 역시 바다를 통해 끊임없는 수난을 겪어왔다. 그래서 제주도의 해안선을 따라 돌다보면 해안선 주변에 성벽을 쌓아 외부의 침입을 막아왔던 환해장성을 자주 볼 수 있다. 역사의 흔적은 약자들의 한이 서려 있다.

언뜻보면 제주돌담 같지만...
언뜻보면 제주돌담 같지만... ⓒ 김강임
예래동의 환해장성 역시 왜구의 침입에 저항한 약자의 흔적이 준 산물이다. 환해장성은 언뜻 보기에는 술렁술렁 쌓아 올린 제주돌담 같지만 제주인의 자주정신이 깃들여 있기에 그 돌담이 주는 의미는 더욱 크다.

환해장성은 고려 원종 11년에 여몽 연합군에 의해 전멸된 후부터 조선시대 후까지 600년 동안 탐라에 주둔한 군사들이 보수·증축하면서 유지해 왔다. 예래동의 해안가를 따라 쌓아올린 환해장성은 600 구간에 성의 규모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자연재해로 파손되어 아쉬움이 많았다. 더욱이 역사의 흔적을 소개해 줄 만한 것을 찾아 볼 수 없어 여행객들은 예래동의 해안가를 몇 번이고 왔다갔다해야만 간신히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제주인의 자주정신 살아있어
제주인의 자주정신 살아있어 ⓒ 김강임
환해장성의 기단 상태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바닷바람과 지난 여름 태풍으로 성벽이 허물어지고 파손되어 성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것 같아 무엇보다도 마음이 무거웠다.

환해장성은 비록 노란 숲 속에 난 길은 아니지만, 성벽을 쌓아 길을 막고 자신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수려한 해안가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 능선의 아름다움을 따라 이어진 역사방어유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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